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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기자수첩] 故 신격호 명예회장과 기업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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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정주영(현대), 이병철(삼성), 구인회(LG), 최종현(SK), 김우중(대우) 등 창업 1세대 기업가들이 대부분 퇴장했다.

신 명예회장은 일제강점기에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에 건너가 껌사업을 시작해 어렵게 성공했다. 기업보국의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로 사업을 넓혀 재계 5위의 롯데 왕국을 완성시켰다. 별세를 계기로 재조명된 신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지금 갈 곳 잃은 한국 경제에 절실해 보인다.

롯데가 자산 115조원에 달하는 그룹이 된 원동력은 신 명예회장의 남다른 상상력과 불도저같은 추진력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관광산업이 전혀 개발되지 않았던 1973년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금액을 투자해 롯데호텔을 지었다. 1984년 허허벌판이던 잠실에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사업을 추진했다. 2010년에는 아파트를 짓는 게 수익에 좋다는 의견을 물리치고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를 지었다.

임원진은 엉뚱한 신 명예회장의 도전에 매번 사업성을 우려했지만, 그는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 입국을 이뤄야 한다"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남들 눈에는 무모해 보이는 그의 모험은 모두 성공했다.

요즘에는 이런 기업가 정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과 기업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반기업 정서’가 과도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만든 각종 규제도 불확실성을 키우며 기업가 정신을 약화시키고 있다. 한국에서는 기업의 대표이사가 되는 순간 수백가지 이유로 자칫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그래서 한국은 ‘기업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다.

롯데도 최근 한일 경제갈등 직후 ‘일본기업’ 꼬리표가 붙어 불매운동의 타깃이 됐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번 돈의 2.5배를 한국에 투자했다. 신 명예회장은 당초 철강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정부가 철강업을 국유화하기로 하면서 꿈을 접었다. 대신 그는 롯데가 후지제철 도움으로 세운 제철소 사업 계획과 설계 도면을 정부에 흔쾌히 넘겼다.

신 명예회장의 빈소에는 고인이 1978년 정부로부터 받은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놓여있었다. 그가 기업보국 이념을 한국에서 크게 실천한 것에 대한 훈장이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영결식에서 "아버지는 타지에서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고, 성공을 거뒀어도 고국을 더 기억하셨다"며 "우리나라를 많이 사랑하셨다"고 했다.

비록 신 명예회장이 말년에 불투명한 기업 승계와 지배구조 문제로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그가 전설적인 기업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를 비롯한 창업 1세대 기업가들이 국가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자유롭게 도전하고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후진적 규제들을 걷어내고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기업가 정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경제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안상희 기자(hu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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