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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폴인인사이트] 세계적 미술관 된 흉물 발전소, 기적 만든건 발레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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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인 에디터의 추천

버려진 화력 발전소는 어떻게 시민의 사랑을 받는 현대 미술관으로 거듭났을까요. 2000년 문을 연 런던 테이트 모던은 도시 재생의 가장 훌륭한 사례로 꼽힙니다. 런던대 문화경제학과 김정후 교수는 "테이트 모던을 살린 건 훌륭한 건축이 아니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다양한 문화 행사"라고 말합니다. 폴인의 스토리북 〈변하는 도시, 성공하는 공간 트렌드〉 중 첫번째 스토리에서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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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후 런던대 문화경제학과 교수는 테이트 모던 외에도 빌바오, 리버풀 등의 도시 재생 사례를 소개했다. 자세한 내용은 <폴인스토리 : 변하는 도시, 성공하는 공간 트렌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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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있는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을 다녀오신 분 계신가요? 여러분이 잘 아는 테이트 모던이지만 저는 테이트 모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테이트 모던은 2000년에 문을 열었어요. 1981년에 문을 닫은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개조해서 만들었죠. 템스강에 관광객을 유치하는 게 목적이었고, 문을 열 때 밀레니얼 브리지라는 다리를 지어 미술관과 연결했습니다.

이 지도에선 런던의 공공시설을 까맣게 색칠했어요. 템스 강을 중심으로 공공시설들이 있습니다. 대영 박물관, 타워 브리지가 있고. 세인트폴 대성당, 밀레니얼 브리지, 테이트 모던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등이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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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공공시설은 템스강을 중심으로 대부분 강북에 집중돼 있다. 런던이 도시 불균형 발전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사진 김정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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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러분, 검은 점들 위치를 보세요. 주로 어디에 있나요? 강변에 있죠?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강변 중에서도 위쪽인 강북이죠. 테이트 모던과 몇 개를 제외하면 공공시설이 강남에 거의 없어요.

런던은 철저하게 강북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배우고 싶어 하는, 그토록 벤치마킹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는 런던은 그렇게 건강하게 발전한 도시는 아닙니다. 아마 지구 상에서 가장 불균형하고 가장 일그러지게 발전한 도시를 꼽으라면 런던이 1등일 거예요.

어떻게 한 도시에 공공성을 가지고 있는 시설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강북에만 있나요. 그래서 런던의 정치인, 도시학자, 건축가들이 늘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강북과 강남의 불균형을 해결하냐는 것이었어요. 항상 실패했었죠.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BBC에서 했어요. 강북 지역의 거리에서 지나가는 노인들에게 질문합니다. “할머니 혹시 강남에 가보신 적 있으세요?” 질문이 이해되세요? 아니, 졸다가 버스를 잘못 타 강남까지 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답이 더 걸작입니다. 노인들은 이렇게 대답해요. “왜요? 거기를 왜 가요?”

강남은 강북에 사는 사람들이 갈 필요가 없는 곳이었어요. 가면 안 되는 곳이에요. 위험하고 볼 것도 없고요. 사람들이 아예 안 간다는 얘기죠. 얼마나 불균형이 심한 겁니까.

말씀드린대로 테이트 모던의 전신은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n)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배우고 싶어하는 도시 런던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환경을 싹 무시한 아주 비환경적인 도시였어요. 몇십 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발전소와 제철소 등 산업 시설들이 먼지를 뿜어낸 거죠. 템스 강에 있던 주요 산업 시설들은 도시 전체에 오염을 일으키는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뱅크 사이드 화력발전소는 문을 닫게 됩니다. 문을 닫은 화력발전소를 어떻게 할 지 당연히 고민이 됐죠. 왜냐하면 화력발전소였던 건물이라 크잖아요. 그랬던 이 발전소를 스위스 건축가 헤르초크(Herzog)와 드 뫼롱(de Meuron)이 이렇게 바꿉니다.

테이트모던에 대해 강연할 때 저는 꼭 숙제를 내요. “테이트 모던의 성공 요인이 무엇인지 구글이나 다음,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보세요. 영어를 잘하시면 영어로 찾아보셔도 좋고요.

제가 최근에 한국말로 찾아보니 75만 개의 자료가 뜨더라고요. 영어로 찾으니 18만 개 정도가 있어요. 그러니까 한 90만~100만 개 정도의 자료가 있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자료를 보면 다 똑같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템스 강에 버려졌던 화력발전소를 국제 공모전을 통해 무명의 스위스 건축가인 헤르초크와 드 뫼롱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상부의 일부만을 바꿔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했다.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산업유산 재활용 사례로 인지되며 성공했고, 이 일대 전체가 살아났다.”

이건 허무맹랑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관심가져야 하는 것은 스위스 건축가의 헤르초크와 드 뫼롱이 아니에요. 저는 그들이 이 버려진 화력발전소를 어떻게 개조했고 어떻게 원형을 보존했고 무엇을 바꿨는지, 당연히 건축적으로 디자인적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건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그로 인해 주변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돈으로 이뤄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에요.

테이트 모던의 이 공간 많이 가보셨습니까? 테이트 모던 전체 면적의 대략 한 60~61%나 되는 공간입니다. 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간이 비어 있었는데 왜 비어 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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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은 절반 이상의 공간을 그냥 비워놓았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시민들이 강연이나 바자회를 열기도 하는 '살아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사진 김정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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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뛰어놀고 뒹굴거리고 있습니다. 여기를 놀이터로 만들었어요. 현대미술관이잖아요. 그런데 동네 아이들이 와서 놀아요. 스크린을 내려 강연을 하기도 하고 바자회를 열기도 합니다. 테이트 모던에서 벌어진 일련의 행위를 정리해보면 한 300가지가 돼요. 동네 회관이 아니에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미술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플래시몹을 하기도 하고 공연도 합니다. 미끄럼틀을 설치하기도 했어요. 갤러리 5층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올 수 있는데 이것 자체가 설치 조각입니다.

테이트 모던 주변에 진도 6.5의 강진이 오면 건물이 어떻게 깨질까를 큐레이터들이 지질학자들과 연구해서 실제로 바닥을 깨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체험하기 어려운 것들을 작품을 통해 체험하게 해줍니다.

그럼 테이트 모던 밖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테이트 모던과 연결된 밀레니얼 브리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이 다리로 보이세요, 거리로 보이세요? 템스 강을 건너는 다리 맞습니다. 다리인데 거리처럼 보이지 않나요? 밀레니엄 브리지를 제작할 때 개념은 ‘다리를 디자인하되 여기를 건너는 시민들이 거리로 인식하게 하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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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은 버려진 발전소를 재생해 템스강 주변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은 대표적 도시재생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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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와 거리의 차이는 뭔가요? 다리는 건너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거리는 다릅니다. 가다가 멈춰서 쉴 수도 있고 얘기할 수도 있고 커피 마실 수도 있어요. 즉, 이들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다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1~2번씩 다리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스케줄을 미리 공개를 하고 있어요. 그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다리 위에서 영국 국립 발레단이 발레를 공연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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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연결된 밀레니얼 브리지에서 영국 국립 발레단이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고 있다. [사진 김정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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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립 발레단에서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는 팀이에요. 이 팀은 보통 알버트 홀 같은 공연장에서 공연하는데 중간 자리가 30만원 쯤 합니다. 비싼 자리는 70만원, 100만원까지 합니다. 보기도 어렵고 비쌉니다. 그런 국립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팀이 발레를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왜 여기서 발레를 하고 있는 걸까요? 누가 시켰을까요? 런던 시에서 요청한 겁니다. 이들이 공연을 하면 이 주변에 몇 명이 모일까요? 몇 십만 명이 모입니다.

뮤지컬 빌리 엘리엇 아시죠? 빌리 엘리엇 팀도 정기적으로 이곳에 와서 연습을 해요. 문화를 끌어들이는 것이죠. 예술을 끌어들이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런던에서 강남은 가장 못 사는 지역입니다. 가장 잘 사는 지역과 가장 못 사는 지역이 불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끊겨 있었습니다. 강북에 사는 노인들이 “여기에 왜 가?”라고 할 정도로 위험하고 볼 것이 없는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해요.

테이트 모던을 만든 다음에 전시품을 전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왜 그렇게 많은 이벤트를 만들까요? 왜 밀레니얼 브리지에서 발레단과 빌리 엘리엇 팀이 연습을 할까요? 그러지 않으면 영국 사람들, 런던 사람들 누구도 여기를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불균형 문제를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그것을 해결한 것이 바로 테이트 모던과 밀레니얼 브리지입니다.

제일 못 사는 지역과 제일 잘 사는 지역을 묶지 않으면 언제나 이곳은 못 사는 지역, 사람이 가지 않는 지역이에요. 도시를 성장하게 하는 것에서 철저하게 소외돼 성장이 멈춘 지역이었어요. 이것 자체가 우리가 말하는 낭만적인 재생이야기와는 가깝지 않아요.

테이트 모던 주변이 활성화되면서 그 다음에는 아래쪽의 사우스뱅크, 위쪽의 버로우 마켓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런던 시는 1994년에 어떤 꿈을 꾸었느냐 하면 미술관 만들고 다리를 놔 이곳을 연결시킨 다음에 이 힘으로 주변을 살려나간다는 계획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이 지역은 다 살아났습니다.

테이트 모던은 확장을 했고 작년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통상적으로 강변에 있는 테이트 모던을 확장하려면 어느 방향으로 확장하는 게 가장 쉬울까요? 보통 위, 아래 아니면 옆이겠죠? 그런데 테이트 모던은 뒤로 확장을 합니다.

테이트 모던이 확장되고 그 다음 뒤쪽으로 상가, 주상복합, 오피스텔 등 다양한 건물들이 들어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테이트 모던을 기획하기 전 단계인 1994년에 철저하게 계획했던 것입니다. 도시를 어떻게 개발해 어떻게 합리적인 방식으로 확장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입니다.

테이트 모던 뒤편은 불과 2007~2008년에 불빛조차 없었던 곳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변했습니다. 25년이 걸렸어요. 1994년부터 지금까지 진행되며 테이트 모던 뒤 쪽이 전부 바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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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내용은 폴인스토리북 〈변하는 도시, 성공하는 공간 트렌드〉 첫번째 챕터의 20% 가량입니다. 폴인이 전하는 도시와 공간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께는 〈폴인스터디 : 라이프스타일의 미래, 로컬에서 찾다〉를 추천합니다. 도시와 로컬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를 폴인 웹사이트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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