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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미술의 세계

겨울 강변에서 열리는 야외 작품전, 양평 두물머리서 '바깥미술전'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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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술가들의 모임 ‘바깥미술회’가 40년째 한 겨울 자연 속에 마련하는 야외 작품전인 ‘바깥미술전’이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두물머리생태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이 만나는 강변에서의 야외 미술전은 관람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안긴다. 사진은 정지연 작가의 설치작품 ‘두물머리의 생명의 나무’. 도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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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속살을 드러내는 겨울 찬 바람속 강변에서 열리는 미술작품 전시회 ‘바깥미술전’을 아시나요.

‘바깥미술전’은 미술가 모임인 ‘바깥미술회’가 해마다 1월말~2월초 자연을 전시장으로 삼아 개최하는 야외 미술전이다. 첫 전시가 1981년 1월 경기 가평군 대성리 강변에서의 ‘겨울-대성리 31인전’이니 올해로 40회째다. 군사독재의 엄혹함 속에서 추운 강변으로 뛰쳐나와 자유롭게 예술혼을 불사른 첫 전시부터 지금까지 작가들은 자연·사람과 함께하는 ‘생태적 미술’‘공동체적 열린미술’을 지향하고 있다.

올해 ‘바깥미술전’이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서면 두물머리 생태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왼쪽 남한강, 오른쪽 북한강의 두 물이 합쳐(양수)지는 두물머리 야외 전시장은 빼어난 풍광으로 영화·드라마 촬영지이자 이름난 수도권 시민들의 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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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미술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최운영 작가의 설치작품 ‘떨어졌다’. 북한강과 어우러진 물고기 형상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생물들의 상생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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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의 땅, 대지를 상상하다’란 주제의 전시회에는 신진부터 원로까지 바깥미술회원, 초대작가 등 16명이 참여했다. 백진현 박봉기 유재흥 김보라 정지연 정혜령 정하응 하전남 김태현 김성헌 곽광분 이보람 임충재 김용민 최운영 김홍빈이다. 두물머리 공원 곳곳에 설치된 작품들은 여느 해처럼 전시장 주변에서 구한 자연 재료들로 빚어졌다. 나무, 흙, 돌멩이, 환삼덩굴, 갈대와 온갖 풀들, 심지어 버려진 각종 쓰레기….

전시작들은 물론 장소특정적 작품들이다. 작가와 더불어 두물머리의 바람, 햇빛, 하늘, 풍경도 작품 완성의 주요 요소다. 작품들은 하나같이 인간중심적이고 발전논리에 치우쳐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이 시대 문명에 반성을 촉구한다. 상생공존의 순환을 통해 지속가능한 세상을 꿈꾸는 작가들의 소리없는 외침이 투영된 작품들은 관람객의 오감을 자극하며 지구 생태계 보존, 개인적 삶에 대한 조용한 성찰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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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풀과 나무에 최소한의 손길을 더해 환타지적 풍경을 선사하는 정하응 작가의 ‘낯설게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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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미술전이 막을 올린 지난 8일 두물머리 생태공원을 찾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공식적으로 알리지도 않았지만, 작가와 지역 주민을 비롯해 정동균 양평군수,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 등 50여명이 알음알음 모였다. 작품들은 특별한 관람순서 없이 공원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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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통나무로 나무가 품고 있던 본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백진현 작가의 ‘선명(鮮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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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두물머리 나루터 쪽에서 걷기 시작하면 먼저 백진현의 작품 ‘선명(鮮明)’이 관람객을 맞는다. 버려진 통나무들을 정성스레 다듬어 세워놓은 작품이다. 나무가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본래의 아름다움, 나무의 온기까지 눈으로 보고 손으로도 만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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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동물이 남한강에서 나오고 있는 듯한 박봉기 작가의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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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기의 ‘호흡’은 비늘을 가진 상상의 동물이다. 수많은 목판 비늘로 구성된 작품은 강물에서 땅으로 올라 올수록 형상이 두드러져 마치 강에서 나오는 생명체로 다가온다. 작가는 “생명체의 비늘은 몸을 보호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며 과연 “두물머리의 비늘은, 내 마음의 비늘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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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고목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유재흥 작가의 ‘나무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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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흥은 강변의 큰 고목에 갖가지 색의 실로 크고 작은 돌, 나뭇가지 등을 매달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자연오브제들이 작품명 ‘나무는 말하고 있다’처럼 말을 건네는 듯하다. 가만히 보면 색실들은 땅에서 나와 나뭇가지로 연결돼 어쩌면 자연오브제들은 허공에 매달린게 아니라 뿌리에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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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남한강 변에서 명상에 잠길 수 있게 한 김보라 작가의 ‘구멍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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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는 고목에 귀를 기울인 유재흥과 달리 강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작품 ‘구멍난 강’은 천들이 강변 나무와 땅, 풀을 하나로 통하게 한다. 나뭇가지들이 들러붙은 천들이 바람에 몸을 싣자 저 넓은 강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재흥·김보라의 작품은 바람, 햇빛을 온전히 즐기며 늙은 고목, 깊은 강의 웅숭깊은 이야기를 듣게 한다.

정지연은 공원 가운데 탁 트인 공간을 찾았다. 그리곤 주변에 버려진 수백개의 나뭇가지들을 모아 땅에서 두 줄기로 엮어내 저 높은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만나게 했다. 커다란 둥근 원이 탄생했다. 작품 ‘두물머리의 생명의 나무’는 원이 지닌 상징성과 더불어 남한강·북한강 두 강이 만나 새로운 생명을 품어내듯 자연과 인간의 생명성을 되새기게 한다. 하나되는 연인의 사랑으로도 읽혀져 이날 작품 앞에선 남녀 커플이 하트를 만들며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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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령 작가의 ‘아주 작은 것에 대하여’는 마치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는 듯한 조형작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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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한 켠엔 콩같기도, 누에고치같기도 한 형상이 갈대들 위에 올려져 있다. 정혜령의 ‘아주 작은 것에 대하여’다. 나뭇가지 등으로 엮어진 작품은 갈대꽃들과 어우러져 강바람, 하늘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품고, 또 소통시킨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이어서 이리저리 돌아가며 감상할 만하다.

정하응의 ‘낯설게 바라보기’는 두물머리 풍경을 다시 보게한다. 강변에 어지럽게 얽혀있던 환삼덩굴, 나뭇가지, 잡풀들을 영화 <가위손>의 주인공처럼 최소한의 손길로 다듬어 환타지 영화속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땅과 강물의 경계에 자리한 작품은 독특한 조형미와 더불어 강과 땅을 연결시키는 듯, 이 세계와 저 세계를 가르는 듯 기묘한 풍경의 낯섦으로 관람객의 감각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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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전남 작가가 작품 ‘오늘 나는 하늘을 본다’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관람객들은 작가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환삼덩굴과 한지로 만든 침대와 침대보, 한지의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체험형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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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전남의 ‘오늘 나는 하늘을 본다’는 관람객 체험 작품이다. 작가가 산책로에서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강으로 향하면 한지로 만든 둥근 공들이 꽂힌 나뭇가지들이 둥근 공간을 만든다. 공간 속엔 환삼덩굴로 만든 침대, 한지의 침대보·베개까지 있으니 ‘두물머리 방’이다. 생각보다 훨씬 푹신하고 따듯한 방 속 덩굴침대에 누워 하늘을 본다. 바람과 강, 하늘과 내가 하나가 된다. 재일동포 출신의 작가는 지난 8일 개막식에서 저 먼 옛날 샤먼처럼 자연과 인간을 위한 성스러운 제의적 퍼포먼스를 펼쳐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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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등으로 본래의 하늘 빛을 잃어가는 지구 생태계를 표현한 김태현 작가의 ‘스카이 그레이(Sky g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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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의 ‘스카이 그레이(Sky gray)’와 김성헌의 ‘순환의 지구’는 파괴되는 지구 생태계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스카이 그레이’는 미세먼지 등으로 제 빛을 잃어가는 하늘을 회색빛 방충망으로 공중에 매달아 표현하고, 이 흐린 하늘이 뒤쪽 환삼덩굴들로 만든 둥근 형상의 태양을 가리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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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욕망 배설물인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지구를 형상화한 김성헌 작가의 ‘순환의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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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의 지구’는 공원의 풀과 덩굴들로 커다란 지구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주변에 버려진 비닐 등 온갖 쓰레기들을 모아 꽂거나 매달아 상처입은 지구를 보여준다. 쓰레기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 자연과의 공존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 인간중심주의의 상징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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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자연 재료들과 도자 작품을 엮어낸 곽광분 작가의 ‘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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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인 곽광분의 ‘쾌’는 도자기와 현장의 풀로 둥근 구슬모양을 만들어 하나로 꿰 강변 풀숲에 세운 작품이다. 질감·색감 등이 다른 조형물들이 서로 어긋나기도 어우러지며 색다른 풍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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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들로 상처입은 자연생태계를 상징하는 나무를 감싸안아 위로 하는 듯한 이보람 작가의 ‘결-理’(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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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은 자연으로 상징되는 강변 나무들에서 상처의 통증을, 또는 헤어짐의 아픔을 느낀 것일까. 작품 ‘결-理’(리)는 떨어져 서 있는 두 나무의 고통을 치유하듯 갈대들로 세심하게 감싸준다. 두 나무가 갈대품에서 하나가 돼 상처와 아픔을 서로 보듬는다. 남한강·북한강이 한 몸이 된 두물머리처럼 하나가 된 연리지(連理枝)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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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하지 않은 인간의 개발지상주의는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재앙을 낳고 있다. 이기적 인간중심주의에 비수같은 경고장을 던지는 임충재 작가의 ‘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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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무분별한 자원착취와 개발은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를 깨뜨렸고 기후변화, 천재지변같은 자연 재앙이 수시로 벌어지는 게 이 시대다. 임충재는 나뭇잎 모양의 철 조각품을 땅에 내리 꽂아놓았다. 작품명 ‘비수’처럼. 자연의 색을 닮고 벌레가 파먹은 구멍도 표현돼 편안하게 느껴져야 할 조각들인데 자연이 인류에게 전하는 날카로운 경고장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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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얼음, 고드름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김용민 작가의 ‘승빙(乘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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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눈과 얼음, 고드름을 쉽게 보기 힘들다. 이젠 사라진 것일까. 김용민은 강가에 솟아오르게 세운 작품 ‘승빙(乘氷)’을 통해 사라지고 있는 눈과 얼음을 추모하는 듯하다. 통나무를 깎아낸 흔적들에서 작품이 눈과 얼음의 위령탑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간절한 마음이 드러난다. 임충재와 김용민의 작품은 재료나 형식, 구성 등 모두 다르지만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최운영의 ‘떨어졌다’는 갈대와 환삼덩굴, 갖가지 풀을 모아 만든 거대한 물고기다. 하늘에서 떨어진 듯 물고기의 머리는 땅에 박히고 꼬리지느러미는 공중에 떠 있다. 작품의 유려한 선, 몸체를 이룬 풀의 색감·질감이 옆의 강물·숲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형미를 선보이지만 한편으로 왠지 낯설다. 타들어가는 목마름으로 강물을 애타게 찾아가는 이 시대 물고기의 몸부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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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에서 두더지가 만든 둔덕의 고운 흙, 먼지들을 모아 텍스트 작업을 한 김홍빈 작가의 ‘두물머리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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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빈의 ‘두물머리 러브레터’는 텍스트 작업이다. 산책로에 세워진 안내판 뒷면에 작가는 꼼꼼하게 글자들을 썼다. ‘건강이 최고’ ‘특별분양’ ‘우리가족 파이팅’ ‘친환경 물티슈’…. 두물머리에 버려진 쓰레기들에 인쇄된 글자를 뽑아내 애써 채집한 먼지와 두더지가 만든 둔덕의 고운 흙으로 쓴 것이다. 텍스트는 곧 희미해 지겠지만 작가는 기꺼이 지금 여기 두물머리의 자연과 우리들의 삶을 마치 탁본하듯 텍스트화했다.

바깥미술전은 화이트큐브가 아니라 그야말로 겨울 바깥이어서 관람객에게 독특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또 자연 재료의 특성상 작품들은 자연 속에서 시나브로 사라지게 된다. 공식전시는 14일까지지만 작품들은 봄 바람, 여름의 뜨거움 속에서도 또다른 모습으로 남아 관람객을 맞는다. 생성과 소멸의 자연스러운 순환까지도 작가들은 예민한 감각과 뜨거운 예술혼으로 작품에 담아낸 것이다. 글·사진/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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