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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가는 갤러리스트 정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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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미술기행-36] 그냥 툭 질문을 던졌다. 버릇이기도 하고 오만함일 수도 있다. 질문은 이랬다. "거제도가 변방이 아니라 세계 조선 산업의 메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어떨까요?" "가령, 대형 배가 진수할 때는 조선 회사 고객인 선주사 측에서 여성 VIP가 진수식 이벤트에 참관하러 오는데 그들을 대상으로…."

"조선소 노르웨이 프로젝트팀 행사에 맞추어 노르웨이 작가 오세 베리트 세케이 울탕 초대 전시를 성사시켰고, 노르웨이 선사 선주를 전시장에 초청할 수 있었어요. 솔드 아웃됐어요!"

매일경제

오세베리트세케이울탕 작품 Untitled #7, 2017, 100x80(cm), Hanji and ink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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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비즈니스를 실제 적용하고 있어 놀라웠다. 거제도는 세계 2·3위 조선소인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있으며, 거제도 관문인 통영에는 세계 6·7위 조선소가 터를 잡고 있다.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은 비교적 소품들이고 한지에 수묵 기법을 접목하였다. 작가가 거제에서 작업실을 마련한 후 작업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판매 작품 수와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작가 섭외, 전시, 판매 전 과정에 걸친 갤러리의 기획·마케팅 능력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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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브르노(Bruno)의 라이브 드로잉 공연 장면 Handmade Fair 2014


40년 만에 거제도 땅에 발을 디뎠다. 대전에서 통영행 고속도로에 올라 타 함양, 산청, 진주 아래 통영을 거쳤다. 부산에서 거제로 들어오는 방법도 있다.

난 한때 갤러리스트였다. '야, 이 화상아!'와 같은 발음인 화상(畵;商)은 말 그대로 '그림 파는 상인'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작가는 작가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작가가 다른 작가 작품 앞에서 '음, 좋네요!' 이 말 외에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이걸 왜 이렇게 그렸나요?'라고 물으면 다른 작가는 '왜 이따위로 그렸나?'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마찬가지다. 여전히 화상이라는 의식이 강하기에 화상(갤러리스트)과 만나는 것 자체를 피한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작가들이 내 전력을 몰라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정홍연 갤러리거제 대표는 문화를 사랑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컬렉터이면서 경남 지역 독립 영화계를 이끌어 왔다. 그녀의 본격적인 인생 반전은 둘째 아이가 대학 들어가면서다. 가족에게 미리 다짐을 받아 놓은 대로 자기 소임을 다한 정 대표는 일본으로 건너가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하면서 예술문화정책 과정(큐레이터, 디렉터)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까지 총 6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부에 매진했다.

일본 미술 대학 커리큘럼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독일 칼스루에 조형대학 등과 마찬가지로 미술과 건축이 같은 대학 내에 교과 과정으로 편성되어 있다. 한국에서 건축은 공과대학에 속해 있다. 홍익대는 1970년대 후반만 해도 건축학과가 미술대학에 속해 있었다.

자율적인 토론 수업과 학내 미술관, 박물관 보직 교수들의 전시기획력 수준이 높다. 캠퍼스 전체가 문화예술의 장으로 바뀌는 축제를 학생들 스스로 코디네이팅하고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예술가로서 역량을 체득한다. 도서관은 아시아 최대의 희귀본 예술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일본은 미술관, 박물관의 첨단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현장을 다니면서 직접 워크숍에 참여하고 살아 있는 공부를 하였습니다."

2008년부터 경남 지역에서 독립영화제와 미술 전시 기획자로 활동했다. 지역의 척박한 문화 토양에서 고군분투하는 후배 연극인들을 지원하면서 이들이 배우로 참여하는 단편 영화의 장(場), '경남 독립영화제'를 이끄는 경남영화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독립영화'에 대한 몰이해로 많은 곤경을 겪었다. '독립'이 마치 주류를 배척하는 뜻으로 오해를 받아 한때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곤 했다. 한국 사회는 미국 할리우드의 성장이 독립영화에 대한 끝없는 투자의 결과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경남이 독립영화에서만큼은 영화의 도시 부산을 앞선다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독립영화에서 출발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을 휩쓸자 불과 며칠 사이에 경상남도 관계 공무원들이 그동안 도외시하던 도내 영화인들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해 지역 향토 축제인 '거제 섬꽃 축제'에서는 지역 작가 중심의 그룹전 '섬꽃아트쇼'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에콜 데 보자르 드 마르세유 출신 작가 브루노(Bruno)의 라이브 드로잉 공연 소개는 축제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었다. 본인 컬렉션 중에는 일본 작품들이 많다. 갤러리거제가 일본 작가 전시를 자주 연 결과다. 일본 작가들은 정 대표와 인연으로 작업과 전시를 위해 한국을 오간다. 갤러리거제는 2017년 5월 개관전 이래 30여 회 전시를 기록하고 있다. 불과 3년여밖에 되지 않은 지방 소도시의 신생 갤러리로서는 놀라운 업력이다.

연극 제작 지원자, 그림 컬렉터로 시작한 정홍연의 도내 문화 예술 사랑이 지방도시의 민간 문화 정책 기획·재무 설계자 역할을 넘어서야 할 듯 보인다. 나는 정 대표에게 통영과 거제를 중심으로 국제 장르 영화제와 국제아트페어 개최를 시작해 볼 것을 권했다.

[심정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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