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 범행에 분노한 시민들 머리채 잡아
재판 중에도 방청석서 "사형 시켜라" 고성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유정(37)의 1심 선고 공판이 20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지난해 8월 12일 시작된 재판은 지난 10일 고유정 측 마지막 변론까지 총 12차례 진행됐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고유정이 유산(流産) 경험 등으로 인한 잘못된 망상과 피해의식 속에서 의붓아들을 참혹하게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전 남편 역시 이혼과 양육 과정에서 생긴 불만으로 계획적 살해한 것으로 봤다. 반면 고유정은 최후 변론에서 "하늘이 알고 땅이 알 텐데. 검찰 공소장 내용은 소설에서도 보지 못할 어불성설"이라며 의붓아들 살해와 계획범행 등을 모두 부인했다.
그동안 이 사건 재판 과정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그 결정적 장면들을 정리해봤다.
지난해 8월12일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유정이 제주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고 나와 호송차에 오르기 전 한 시민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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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커튼’에 숨던 고유정...머리채 잡히기도
작년 8월12일, 고유정이 첫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10시 제주지법 201호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고유정의 얼굴이 공개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앞선 6월5일 경찰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고유정의 얼굴, 실명,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유정은 이른바 ‘머리카락 커튼’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법정에 들어섰다.
고유정은 피고인 신문 과정과 변호인이 전남편 살해 혐의에 대해 진술을 하는 동안에만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자신의 변호인이 "피해자의 변태적인 관계 요구에 고씨는 사회생활을 하는 전 남편을 배려했다"고 밝히는 대목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재판이 끝난 뒤 호송차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고유정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주위에서는 "사형해라" "혀 깨물고 죽어라" 등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결국 화가 난 한 시민이 고유정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고씨는 머리채가 잡힌 채로 10m가량 끌려간 뒤에야 호송차에 오를 수 있었다.
고유정의 두 번째 정식 재판일인 작년 9월2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4층 대회의실에서 고유정 재판 방청권 추첨이 진행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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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개원 이후 처음으로 방청권 경쟁
고유정 재판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제주지법은 개원 이래 처음으로 방청권을 선착순으로 나눠주거나, 추첨하기도 했다. 첫 재판 때는 방청석 34개를 두고 150여 명의 시민이 몰렸다. 선착순으로 방청석을 배정하면서, 방청 기회를 놓친 시민들이 항의하기도 했다. 결국 제주지법은 10명을 추가로 입석 방청할 수 있도록 했다.
2차 공판부터는 추첨을 통해 방청권이 배부됐다. 재판이 열리는 제주지법 201호 법정의 좌석은 모두 67석이다. 이 중 언론인‧유가족 지정석을 제외한 좌석을 대상으로 방청권 추첨을 했다. 제주지법은 재판이 열리는 당일, 법원 4층 대회의실에서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응모권을 접수하고 추첨을 진행했다.
2차 공판에선 방청권 경쟁률이 1대 1.6, 3차 공판에선 1대 1.02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20일 열린 4차 공판에서는 처음으로 미달이 나왔다. 총 51석을 추첨하는데 42명이 신청해 모두 방청할 수 있었다. 경쟁률은 1대 0.82였다.
제주지법은 20일 열리는 고유정 사건 1심 선고공판에도 방청객이 많이 몰릴 것을 대비해 방청권을 추첨할 예정이다. 방청권 추첨 대상은 좌석 34석, 입석 15석 등 총 49석이다.
그래픽=이민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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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 범행"고유정에 방청석 ‘야유’...사형구형엔 ‘박수’
방청 경쟁률이 치열했던 만큼, 방청객들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첫 공판 때 고유정 측 변호인은 "수박을 씻고 있는 피고인의 뒤에서 (피해자인 전 남편 강씨가) 다가와 갑작스럽게 피고인을 만지기 시작했다"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다. 방청석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변호인이 에로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등의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다.
지난해 9월 2일 열린 2차 공판 때도 고유정 측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 대부분을 배척했다. 현장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방청석에선 "고유정은 솔직해져라" "사형시켜라" "영원히 없어져야 한다" 등의 외침이 쏟아져 나왔다.
야유가 끊이지 않았던 방청석에서 박수가 나온 순간이 있다. 지난 달 20일 열린 고유정의 결심 공판에서 검찰이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때다. 검찰이 고유정에게 사형을 구형하자마자 방청하던 시민들이 박수를 쳤다.
고유정 선고 공판 예정된 제주지법 201호 법정 내부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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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직접 2시간 동안 심문…범행 설명 중 검사, 울먹이기도
재판이 이어지면서 판사와 검사의 말과 행동에도 관심이 쏠렸다.
지난 10일 열린 고유정 사건 12차 공판 때 판사가 직접 고유정을 심문했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 재판장인 정봉기 부장판사는 고유정에게 "피고인, 현남편과 두차례 유산 겪으며 불화가 생겼고 그럼에도 현남편이 친자식만 예뻐하고 그래서 복수심 때문에 살해계획을 세운 것 아닙니까?" "중간에 깨더라도 범행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려고 (의붓아들을)침대 아래쪽으로 끌어당겨서 가슴 뒤편과 뒤통수 눌려서 살해한거 아닌가요?" 등을 물었다. 하지만 고유정은 재판부 질문에 "그건 아니다"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담당 검사는 눈물을 참기도 했다. 지난달 20일 열린 고유정 사건 11차 공판에서 검찰은 그동안 제시된 증거와 범행 동기를 다시 한번 설명했다. 당시 이환우 검사는 지난해 5월 25일 제주도의 한 놀이공원에서 전 남편 강모(36)씨가 아들을 만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를 공개했다. 고유정은 같은날 저녁 강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검사는 CCTV 영상을 보며 "(강씨가) 훌쩍 커버린 아들의 모습이 낯설었는지, 언제 저렇게 커버렸나 하는 후회와 자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검사는 의붓아들 살해 혐의를 설명하며 "(살해당한) 침대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웠는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두 사람의 사연을 소개하며 목이 메이는지 두어 차례 말을 멈추고 눈물을 삼키는 듯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이 검사는 고유정이 "저 검사님과는 대화를 못하겠다. 너무 무서워서"라고 말했던 인물이다.
고유정 사건 1심 선고는 오는 20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쟤 죽여버릴까?" "물감 놀이하고 왔어"…범행 전후 고유정 말말말
재판 과정에서 고유정의 진술이나 증거로 제시된 통화내용 등도 화제가 됐다. 고유정은 12차 공판에서 의붓아들 살해 혐의를 추궁하는 재판부에 대해 "판사님과 저의 뇌를 바꾸고 싶을 만큼 답답하다"고 했다.
또 고유정은 지난해 11월 18일 재판에서 범행 당일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검사의 질문에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며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지난 1월 6일 10차 공판에서는 고유정이 현 남편 홍모(38)씨와 주고받은 통화내용과 문자메시지가 공개됐다. 고유정은 의붓아들 홍군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해 2월 22일 남편과 통화하던 중 "음… 내가 쟤(홍군)를 죽여버랄까?"라며 극단적 발언을 했다.
지난해 11월 4일 6차 공판에서 검찰이 공개한 통화내용에 따르면 고유정은 지난해 5월25일 전 남편을 살해한 직후로 추정되는 오전 9시50분쯤 아들에게 "엄마 물감 놀이하고 왔어"라고 설명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검찰은 고유정이 범행을 ‘물감 놀이’로 표현한 것이라고 봤다.
또 범행 직후인 오후 10시50분쯤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던 아들이 펜션 주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고유정에게 바꿔줬고, 그는 아들에게 "먼저 자고 있어요. 엄마 청소하고 올게용~"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등의 태연함을 보였다. 검찰은 고유정이 범행 후 피해자를 욕실로 옮긴 뒤 흔적을 지우고 있었을 시각으로 추정했다.
[권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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