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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아파도 지면 안돼 사랑할 이들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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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시, 유노키 사미로 그림, 박종진 옮김/여유당·1만4000원

가족에게 걱정 끼치지 않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결핵을 진단받은 지 3년, 세상을 뜨기 2년 전인 1931년. 일본의 동화 작가 미야자와 겐지(1896~1933)가 이루지 못한 소망을 담아 쓴 시 ‘비에도 지지 않고’가 그림책으로 나왔다. 앞서 야마무라 코지의 그림으로 그림책공작소가 낸 것도 있지만 이번엔 염색공예가 유노키 사미로(98)의 활달하고 경쾌한 그림체와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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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는 자신이 바라는 삶을 짧고도 울림 깊은 시 한편으로 압축했다. 비에도, 바람에도, 눈에도, 한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 소나무숲 그늘 아래 작은 억새지붕에서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먹으며 사는 단출한 일상. 독실한 불교도로서 자비행을 실천했던 그는 말한다.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짊어지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다툼이나/ 소송 있으면/ 쓸데없는 일이니/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든 때에는/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에는 안절부절 걷”길 원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사람들에게/ 멍청이라 불리며/ 칭찬도 받지 않고/ 힘들게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가업인 전당포를 가난한 사람들 등쳐 먹는 일이라 부끄럽게 여겼던 겐지는 18살에 <법화경>을 접한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처님의 뜻을 알리기 위해 동화와 시를 썼다고 한다. 희생과 실천의 다짐이 녹아 있는 까닭이다. 아이들이 이 시의 아득한 깊이를 모두 이해하진 못할지라도, 어른들이 요구하는 경쟁과 성공의 세계와는 또 다른 새로운 삶의 차원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6살 이상부터 모든 어른까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그림 여유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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