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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독서 데이터 10년치 쌓으니 뭘 읽고 싶어하는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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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RIDI(리디) 입구에는 `RIch Imagination Deep Insight`라고 적혀 있다. 배기식 대표는 "사람들에게 통찰을 주는 게 리디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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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도, 폭설이 와도, 미세먼지가 심해도 우산장수처럼 웃는 서점이 있다. 그들의 시간을 책을 읽는 데 묶어둘 수 있어서다. 2009년 11월 리디북스닷컴을 공개한 지 10년 만에 국내 전자책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키워낸 배기식 리디 대표(41)를 20일 서울 테헤란로의 사옥에서 만났다.

배 대표는 "이제는 책의 의미가 재정의되는 시대가 됐다. 독자들의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책이든, 아티클이든, 애니메이션이든 모두 성격이 같다. 우리는 더 이상 전자책 회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전자책을 팔던 이들은 2018년 무제한 월정액제 구독 모델 '리디셀렉트'를 출시하며 대대적 변신에 나섰다. 같은 해 정보기술(IT) 뉴스 미디어인 '아웃스탠딩'을 인수했고, 작년에는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 '라프텔'을 인수했다.

작년 12월에는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뉴스 등의 주요 번역 기사와 김웅, 이다해 등 필진의 글을 제공하는 '리디아티클'도 출시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서점이라 부를 순 없다. 책과 아티클(월 9900원), 애니메이션(월 9900원), 뉴스(월 6900원)까지 삼각 편대를 앞세운 '구독 콘텐츠 회사'로의 변신이다.

배 대표는 "전자책을 10년째 팔다 보니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콘텐츠를 유료로 소비하는 패턴이 점점 오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점에서는 종이책을 팔아도 누가 이 책을 사고, 어디까지 읽는지 알 방법이 없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독자들이 사고 읽은 데이터가 다 쌓여 있다. 보유 도서 300만권 중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간 독서량이 10권 안팎인 보통 독자들에게 검증된 좋은 책을 골라주자고 자신 있게 선보인 게 '리디셀렉트'였다"고 설명했다.

서점이 단돈 6500원(현재 9900원)에 무제한으로 책을 읽도록 하는 '미친 짓'은 이런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월 10권을 사서 보는 독자가 아닌 월 1권을 읽는 독자를 새롭게 포섭하는 전략. 그는 "리디셀렉트는 고객의 유지율이 높다. 두 번째 결제까지만 이뤄지면 90%가 독자로 남는다. 고객들에게 그만큼 가치를 주고 있다. 1년 반 만에 자리 잡았다"고 했다.

세 번째 단말기인 리디페이퍼도 작년 출시했다. 하드웨어를 직접 연구개발에 출시하는 건 비용이 많이 드는 투자다. 그럼에도 배 대표는 "단말기는 실보다 득이 많다"며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는 독자보다 단말기로 읽는 독자들의 콘텐츠 매출이 세 배 이상 많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공격적 확장에 힘입어 2019년 매출은 전년 대비 45% 성장한 1150억원을 기록했다. 그는 "사업이란 게 1~2년 하고 접는 게 아닌데 지금 당장 10만명, 20만명을 늘리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쓴 사람이 계속 쓰는 게 제일 중요하더라. 인력이나 마케팅을 많이 늘리진 못했는데 고객을 놓치지 않아 여기까지 왔다. 초기에도 경쟁사가 많았는데 결국 살아남은 건 우리"라고 했다.

전자책 시장의 무제한 구독 모델을 두고, 출판계에서는 갑론을박도 있다. 콘텐츠를 헐값에 넘기는 이 모델을 '타다'처럼 규제해야 한다는 도서정가제 강화의 목소리다. 이에 대해 배 대표는 "출판 시장을 10여 년 지켜 보니 규제가 생기는 것도 이해가 가고, 과거 전통에 대한 존중이 없을 순 없다. 특정 이해관계자 입장이 아니라, 전체 시장이 커지도록 충실히 따르자는 입장"이라고 조심스레 답했다.

기업공개(IPO)에 대한 관심도 무르익고 있다. 리디를 차세대 유니콘(1조원 이상 기업가치)으로 꼽는 투자자들도 많다. 배 대표는 "준비 작업은 하고 있는데 시기적으로 확정된 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콘텐츠를 판다는 건 결국 '습관'과 '시간'을 포획하는 싸움이다. 전자책 시장이 크게 성장세를 보이는 건 디지털로 읽는 습관이 있는 세대가 주류가 되고 있어서다. 배 대표는 "종이책을 주로 읽던 사람도 한 번만 전자책을 이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계속 쓰게 된다. 싸고, 빠르고, 편하다. 돌아갈 수가 없어진다"면서 "리디셀렉트는 30·40대가 많이 이용하고, 가벼운 웹툰·웹소설은 20대가 많이 본다. 미래에는 디테일한 서비스가 잘될 거다. 각각의 세대와 문화 속에서 메이저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넷플릭스와 유튜브라는 거대한 경쟁자와 어떻게 맞설 전략인지 물었다. "그들뿐 아니라 술도 경쟁자다. 우리에게 긍정적인 건 일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이 아니라도 야근이 적어지고 유연하게 시간관리를 하고 회식도 덜하지 않나. 혼자 있는 시간이 늘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우리에겐 다 기회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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