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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거문고는 우리 민족의 것… 선비 필수교양 악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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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명인 조대석-연주 명인 정대석씨

동아일보

정대석 전 서울대 교수(오른쪽)는 “조대석 명인이 제작한 거문고는 혼이 느껴지는 단아한 악기”라고 말했다. 옆에 선 조대석 민속국악사 대표가 환하게 미소지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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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는 우리 민족만의 것이고, 선비의 악기죠. 집집마다, 학교마다 거문고 소리가 울리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거문고 연주의 명인과 제작의 명인. 이름도 같은 70세 동갑내기 두 사람이 마주앉았다. 국악기를 제작하는 조대석 민속국악사 대표와 거문고 연주가 겸 작곡가인 정대석 전 서울대 국악과 교수. 서울 강남구 민속국악사에서 만난 두 사람은 42년 전인 1978년 처음 만난 때를 회상했다.

“조 대표가 자기가 제작한 거문고를 가져와서 봐달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손볼 점들이 눈에 띄어서 이런저런 조언을 했죠. 자신도 국악 연주(가야금)를 배운 분이라 바로 소리가 달라지곤 했어요.”(정 전 교수)

조 대표는 당숙 조정삼 명인으로부터 거문고를 비롯한 국악기 제작을 배웠다. 열세 살 때 악기 제작에 입문했고 24세 때 독립했다. 청년 거문고 명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정 전 교수를 찾아간 것이 그 4년 뒤였다. 솜씨를 인정받으면서 7남매 중 세 동생에게도 악기 제작을 전했다. 막내 조준석 명인은 충북도 무형문화재로 충북 영동에서 난계국악기 제작촌을 이끌고 있다. 두 동생은 각각 경기 용인과 충북 청주에서 국악기 제작으로 솜씨를 뽐내고 있다.

정 전 교수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음대에 가지 못했지만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과 KBS국악관현악단 창단 수석을 거쳐 2007년 서울대 국악과 교수로 임용되며 화제가 됐다. 거문고 협주곡 ‘수리재’ 등 여러 사랑받는 작품을 쓴 작곡가로도 인정받고 있다. 조 대표는 “젊을 때부터 정 선생 연주를 들으면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2014년부터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및 학생부 최고등위 수상자에게 1000만 원 상당의 거문고 1대씩을 부상으로 수여하고 있다. 제15회 동아국악콩쿠르 거문고 1위 수상자이면서 이 콩쿠르에 심사위원과 자문위원 등으로 기여해온 정 전 교수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올해 콩쿠르는 6월 8일∼7월 1일 서울 중앙대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다.

“동아국악콩쿠르가 있는 한 계속해서 악기를 수여하려 합니다. 제가 만든 악기가 재능 있는 미래 명인들의 손에서 사랑받고 소리를 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까요.”(조 대표)

정 전 교수는 “가야금 아쟁 해금은 다른 나라 악기들과 공통점이나 교류의 역사가 있지만 괘(현을 거는 고정 받침)가 있고 술대로 치는 거문고는 우리만의 독특한 악기”라고 했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좌서우금(左書右琴·왼쪽에 책을, 오른쪽에 거문고를 놓다)이라는 말처럼 거문고는 예로부터 선비의 필수 교양이었죠. 이 악기의 깊은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 바랍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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