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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코로나 확산 대응 '원격의료' 허용 첫날… 병원마다 "한다, 안한다" 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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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 정부 지침대로 대구⋅경북 대상 시행
대다수 대학병원은 ‘아직 논의중’… "일손도 모자라는데"
원격의료 앱 등 인프라 없이 급조한 정부, 기득권 반발 의협

정부가 우한 코로나(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원격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한 첫날인 24일 각 병원별로 입장이 달라 혼선이 초래되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병원들만 정부 방침에 따라 원격진료를 준비중이지만 대한의사협회가 연이어 반발 성명을 낸 가운데 대다수 병원은 아직 시행 여부조차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원격의료를 불법화한 탓에 전용 스마트폰 앱 등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실효성도 의문시되고 있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중앙사고수습본부가 한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기로 하면서 이날부터 모든 의료기관은 전화 상담·처방을 할 수 있게 됐다. 진료비는 대면 진료할 때와 똑같다. 계좌이체 등의 방식으로 송금하면 된다. 처방전은 팩스 또는 이메일 등으로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에 전송하도록 했다. 약사도 전화로 복약 지도를 할 수 있다.

의약품 수령 방식은 환자와 약사가 협의해 결정한다. 보건복지부는 "의사와 환자가 합의하면 택배 배송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원하고 의사·약사가 동의하면 병원·약국을 방문하지 않고도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에서 이미 상용화된 원격의료 서비스를 전격 허용하기로 한 셈이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때도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지만 그때는 강북삼성병원등 일부 병원에 국한했었고, 이번에는 모든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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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의료진이 12일 음압병실에서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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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등 일부 병원들은 특히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넘쳐나고 있는 대구·경북지역에 한해 원격진료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수많은 의심환자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현지 의료기관의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 전화상담, 원격처방 등 정부가 제안한 지침을 우선 따른 뒤 가용 가능한 자원을 통해 원격의료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오는 25일부터 우선 대구·경북 지역을 한정해서 원격진료를 진행할 예정이며, 향후 상황에 따라 이를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정부 지침에 따르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아직 시행 초기이기 때문에 경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가장 의욕적으로 원격의료 서비스를 준비해온 병원 중 하나다. 앞서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한 언론사에 기고한 글에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국민건강 향상과 필수의료의 안정적 보장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고 의료계 역시 이에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병원장은 "국내 1, 2차 의료기관 수준은 세계적이며 이러한 양질의 의료를 필요한 국민에게 적시적소에 제공할 수 있는 미래의료 플랫폼 구축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기왕에 우리가 이룩해 놓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와 전자통신기술이 우리 국민들의 편안하고 건강한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접목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삼성서울병원도 정부 지침을 최대한 따르기로 했다. 의료 수요가 모자란 대구·경북 지역에 전화진료, 원격처방 서비스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대구·경북 지역에 한해서만 이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지, 전국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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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으로 이송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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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대다수의 병원은 아직 시행 여부조차도 결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해 연세대학교 의료원, 고려대학교의료원, 경희대병원 등 상당수 대학병원들은 "아직 논의 중인 상황"이라는 답변만 하고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이는 앞서 대한의사협회가 중수본의 원격의료 한시적 허용에 대해 반발하고 나선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의사협회는 지난 21일 입장문에서 "유선을 이용한 상담과 처방은 의사와 환자 사이 대면진료의 원칙을 훼손하는 사실상의 원격의료로, 현행법상 위법의 소지가 있다"며 "또 현재와 같은 코로나19 지역사회감염 확산 상황에서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분명히 한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23일에도 전화 상담·처방을 전면 거부하겠다는 성명을 냈다.

의료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대구 지역의 경우 확진자가 무더기로 늘어나면서 음압병실 등 격리병동 수용능력이 현저한 한계를 보일 것"이라며 "일반환자도 2,3차 감염 우려로 병원에 가기를 꺼리고 실제 의료진이나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가 감염자와 접촉하면 문제가 된다. 원격의료를 활용하면 병원 내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회에 원격의료를 임시방편이 아닌 제도로 정착시켜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원격의료가 일상화된 일부 선진국들에 비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릴만한 플랫폼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졸속 추진은 오히려 의료 현장의 혼란만 가중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의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 앱 등 원격의료 전용 플랫폼이 있어야 정확한 건강 정보를 의사에게 알릴 수 있는데, 전화로만 알리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며 "또 환자들이 진료차 전화를 해도 응대할 병원 인력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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