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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펭수의 고향 남극에는 펭귄만 살고 있는 게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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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극지 해양생물 전문가 김상희·김사흥 박사

한겨레

“펭수의 고향 남극에는 펭귄만 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특히 빙하 아래 해저에는 지구가 생성된 이래 극한 환경에서도 견뎌온 희귀 생물들이 살고 있어요. 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남극은 돌아서면 또 가고 싶은 매혹적인 땅이죠.”(김상희 박사)

“남극 해저탐사에서 가장 큰 위험은 물론 수온이죠. 낮은 곳은 영하 2도(-1.97정도)까지 내려가니까요. 건식잠수복이 새기라도 하면 체온이 급히 내려가서 위험할 수도 있죠. 또 물범은 바다 속에서 마주치면 몸에 소름이 돋죠. 특히 표범물범은 공격적이고 사람을 해친 적도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해양생물들이 이곳에만 있으니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거죠.”(김사흥 박사)

최근 출간된 <사소하지만 중요한 남극 바닷속 무척추동물-킹조지섬 편>(지오북 펴냄)의 공동저자인 김상희(50)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과 김사흥(54) 인더씨 대표는 지난주 인터뷰에서 ‘극한직업’이라 할 수 있는 극지 해양생물 탐사를 자원해 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극지연구소 기획 시리즈 두번째 출간

‘남극생물학자의 연구노트’ 공동저자

‘남극 바닷속 무척추동물-킹조지섬’


“진화의 비밀 간직한 생태계 보물들”

“펭귄 등 동물들 살게 하는 먹이보고”

“온난화·외래종 유입 등 생존위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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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88년 남극 킹조지섬에 세종과학기지를 세웠고, 이듬해 89년 세계 23번째로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 지위를 얻어 극지 연구 30년이 넘었다. 이 책은 극지연구소에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리고자 기획시리즈로 펴내고 있는 ‘남극생물학자의 연구노트’의 하나다. 지난해 초 나온 첫번째 <사소하지만 중요한 남극동물의 사생활>(김정훈 지음)이 펭귄이나 고래 같은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동물 이야기였다면, 두번째인 이 책은 “남극을 대표하는 동물들에 가려져 있는 무척추동물의 세계를 처음으로 알릴 목적”으로 기획됐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생물다양성 연구 분야에서 후발주자에 속해요. 하지만 남극에서만큼은 뒤지지 않는 수준을 자랑하죠. 미국, 중국 등 강대국들의 위세에 밀려 상대적으로 열악한 기지 조건 속에서도 두 분처럼 열정 넘치는 연구자들이 다양한 신종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저온 적응 물질을 찾아내는 성과를 거두고 있거든요.”

자연생태분야 출판 전문가이자 그 자신 극한식물 연구가인 황영심 지오북 대표가 두번째 책으로 두 김 박사의 연구노트를 선택한 이유다.

실제로 극지연구소 극지생명과학연구팀은 그동안 신종 무척추동물(요각류 4종, 섬모충류 7종) 11종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고, 수많은 신종 후보종(완보동물 1종, 다모류 다수, 요각류 다수)을 확보해 국제 학계에 보고했다. 우리 연구팀이 발견한 신종 생물에는 ‘세종엔시스’, ‘장보고엔시스’가 붙어 있기도 하다.

김 책임연구원은 국내 첫 쇄빙선이자 이동연구소인 아라온호가 활동을 시작한 2009년부터 월동대원으로 선발돼 지금껏 해마다 한두차례씩 남극과 북극을 오가며 탐사를 해왔다.

“남극은 북극과 달리, 순환류에 의한 고립지역이어서 극한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신종이나 고유종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어요. 자칫 이름조차 얻지 못한 채 사라질 생물들의 존재(유전정보 등)와 생태적 가치를 알리는 게 과학자로서 당연한 사명이자 한편으로 행운에 가까운 기회죠.”

워낙 여성연구가들이 드문 해양생물학 분야의 초창기 세대에 속하는 그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하나 소개했다. “2016년쯤 뉴질랜드의 스캇기지에 갔을 때 영하 30도 혹한 속에 텐트 비박을 해야 했는데, 화장실이 한참 거리에 떨어져 있어서 고역이었죠. 비상상황에 대비한 휴대용 변기는 남성용만 있었거든요.”

김 책임연구원은 “어릴 적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던 기억 탓에 물에 대해 원초적인 공포가 있지만 늘 동경해온 해양탐사의 꿈을 이뤄 즐겁다”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극지 탐사의 의지를 다졌다.

김 대표는 2015년부터 극지연구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그는 수중탐사와 종다양성 분석 전문가로 지금까지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를 비롯해 뉴질랜드 케이프 에반스(EVANS), 미국 케이프 아미타지(ARMITAGE), 이탈리아 주켈리(JUCCELLI) 기지, 독일 곤드와나(GONDWANA) 기지 등 남극의 구석구석을 누벼왔다. 특히 그는 잠수복과 산소통에 의지한 채 차디찬 물 속에서 지형과 생물의 이름을 기록하는 ‘신공’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흰색 아크릴판의 표면 광택을 사포로 벗겨내고 ‘비(B)연필’로 쓰면 물 속에서도 절대 지워지지 않아요. 2000년께부터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보다 성공했어요. 수중탐사자들은 대부분 간단히 몇글자 정도 통신용으로 메모를 하지만, 저처럼 연구 목적일 때는 깨알같이 자세하게 기록을 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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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생명과학부 대학원 동창인 두 박사의 환상적인 호흡 덕분에 이번 책에는 남극 바닷속 암반의 생김새와 경사도를 비롯해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최저 수심 50m까지 수심별로 다양한 무척추동물의 생태계를 세밀화처럼 그려 보여줄 수 있었다. 해면(해면동물), 연산호(자포동물), 빗해파리(유질동물), 이끼벌레(태형동물), 끈벌레(유형동물), 고둥류 및 조개류(연체동물), 조개사돈(완족동물), 갯지렁이(환형동물), 바다거미류 및 옆새우류(절지동물), 성게류 및 불가사리류(극피동물), 멍게류(척삭동물) 등을 실제 사진과 만화를 곁들여 소개해 청소년 교재용으로 안성맞춤이다.

“남극 해양생태계에서 무척추동물들이 없으면 먹이사슬의 균형을 기대할 수 없어요. 하나하나 진화의 비밀을 간직한 보물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지구온난화로 만년설과 빙하가 녹는 현상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이고, 크릴새우잡이 어선들과 대규모 관광유람선 등 인간에 의한 훼손과 외래종 유입 같은 오염도 심각해지고 있어요.”

이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과 생태계 교란의 이중고 앞에 놓인 남극 생물들의 위기를 조금이라도 늦출 방법을 찾는 것도 연구자로서 큰 과제라고 자임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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