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의원은 지난 24~26일 치러진 민주당 1차 경선에서 현역 재선 신경민 의원을 꺾고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는 영광을 안았다.
그가 도전장을 내미는 서울 영등포구을은 24년 전 그에게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안긴 곳이기도 하다.
1964년생인 그는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국학생연합(전학련) 의장을 지내는 등 198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1987년에는 당시 야권 단일화를 촉구하며 15일간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1980년대 말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92년 낙선 이후 199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을 받아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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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2년 만인 2002년 중도사퇴 이후 그의 정치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그는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늘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중심에 서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탓일까.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를 떠나 국민통합21로 당적을 옮기고 정몽준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정 후보가 대선 전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자 김 전 의원은 다시 민주당으로 복당했다. 이후로 그에겐 '철새정치인' '김민새'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2008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며 날개없는 추락을 경험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 2014년 창당한 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했지만 역시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2016년 10월 민주당이 더불어민주당에 흡수 합병되면서 당시 더불어민주당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추미애 당대표 시절 민주연구원장을 거쳤고 지난해 12월에는 재혼 소식을 알려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는 당시 "야인생활이 쉽지 않았다"며 "혼자되어 깊이 무너져 있었던 시간, 제 자신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선에서 승리한 김 전 의원은 26일 입장문을 통해 "20년 만에 정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험한 세상공부를 마치고 온 아들에게 첫 창문을 열어주신 영등포의 시민과 당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20년간 험하고 고독했던 광야의 시간. 국민과 하늘이 가장 무섭고 감사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이어 "국민의 고통과 함께 하고 국민과 함께 문제를 풀어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각오로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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