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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 미술의 세계

“불교와 현대미술 ‘아름다운 동행’ 젊은 작가 발굴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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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강화도 전등사 주지 승석 스님

한겨레

“인연의 시작은 나로부터 비롯됐지만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는 내 몫이 아니겠죠?” 지난 2017년 10월 강화도 전등사의 정족산사고 장사각에서 10년째 열린 ‘현대미술 중견작가전’을 보러 갔을 때 회주 장윤 스님은 ‘예언처럼’ 후진들에게 답을 넘겼다. 그로부터 3년째인 지난 23일 다시 찾은 전등사에서는 새로운 미술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4년째 주지를 맡고 있는 승석 스님이 화답을 한 것이다.

“회주 스님의 혜안과 의지 덕분에 1700년 전통의 고찰인 전등사가 첨단 현대미술까지 품은 문화의 전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죠. 그 맥을 이어 중견 작가들만이 아니라 참신한 감각과 열정을 지닌 40살 미만의 청년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고자 지난해부터 전시 공모전을 시작했어요.”

승석 스님은 전등사 경내의 신행공간이자 다목적 복합공간인 무설전의 서운갤러리 안팎에서 열리고 있는 도예가 정은혜 작가의 <우리사이의 동물들> 전시로 일행을 이끌었다.

‘서운갤러리 청년작가 지원’ 공모

지난해 ‘40살 미만’ 2명 선정 시작

1차 한경희 이어 정은혜 작가 전시

올 2차 67명 중 김하림·한지민 뽑혀


‘현대미술 중견작가전’ 13년째 지원

“참신한 감각·열정 새 바람 기대”


한겨레

지난 15일 개막해 3개월간 열리는 정 작가의 전시는 지난해 10월 ‘제1회 서운갤러리 청년작가 지원 공모’에서 선정된 수상자 2명 가운데 두번째 기획전이다. 우리 일상에 친숙한 동물들을 의인화해 다양한 표정과 동작으로 구워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2006년 서울과학기술대에 이어 2009년 국민대 대학원 도예학과를 나온 정 작가는 석사 논문으로 동물학대 문제를 다루면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조형으로 구현해왔다. 특히 이번 작품 중에는 지난해 강화도 지역에서 돼지열병 파동으로 대규모 살처분을 당했던 돼지의 희생을 애도하는 ‘피어오르다’ 연작이 눈에 뜨인다. 지난해 첫번째 선정작가 기획전은 한국화가 한경희 작가의 <여러날의 낮과 밤>으로 지난 연말까지 20여점을 선보였다.

“아다시피 2012년 개원한 무설전은 현대 예술의 시대정신을 담아 벽화. 불상, 공간디자인을 재해석한 종교공간으로 가람 건축의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평을 받고 있지요. 더불어 무설전의 벽면을 활용한 서운갤러리는 종교성과 예술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공간으로 이미 불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인지도가 높고요. 그래서 청년작가 공모의 주제도 무설전과 서운갤러리라는 특별한 공간에 맞는 작품으로 내걸었죠.”

이번 청년작가 공모전을 제안한 서양화가 오원배 동국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첫 공모에 45명이 지원한 데 이어 올해 2회 공모에는 67명이 몰릴 정도로 젊은 작가들의 관심이 높아 놀랐다. 특히 여성 작가들의 도전과 패기가 대단하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지난해 2명에 이어 올 하반기 전시를 예약중인 2차 선정작가인 김하림(동양화·6월15일 예정)·한지민(서양화·10월1일 예정)씨 역시 여성이다.

이번 공모전의 운영위원으로는 오 교수를 비롯해 서양화가 김태호 서울여대 교수·윤동천 서울대 교수, 조각가 정현 홍익대 교수, 설치미술가 곽남신 한예종 교수 등이 참여했다. 특히 오 교수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과 더불어 초기부터 ‘현대미술 중견작가전’을 기획하고 주도해왔다. 장윤 스님은 2007년 동국대 이사로서 대학미술협의회 교수들의 제보에 따라 이른바 ‘신정아 학력위조 사실’에 대해 가장 먼저 제기했고, 그 여파로 20년 넘게 맡고 있던 전등사 주지에서 물러나는 등 ‘억울한 수난’을 겪어야 했다. 이에 미대 교수들이 전등사 돕기 그림전을 열면서 고찰과 현대미술의 인연이 이뤄진 것이다.

승석 스님은 “아직은 재원이 풍족하지 않아 일년에 2명만 지원하고 있지만 시각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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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석 스님이 이처럼 불교와 예술의 융합에 열정을 기울이는 연유는 단순히 은사의 뜻에 따른 것만은 아니다. 전북 순창 태생으로 1998년 장윤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은 그는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4안거를 한 이래 전등사에서 수행을 했다. 앞서 2011년에도 임시 주지를 맡았던 그는 “아직은 버거운 자리”라며 8개월만에 스스로 물러나 은거하기도 했다.

2016년 다시 주지로 돌아온 그는 “불자로서 정체성 회복이 중요하다”는 성찰에 따라 신도들을 대상으로한 불교의 근본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세속에서는 모두가 베푼 것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너나없이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결국은 모두가 잘 살지 못하고 있어요. 먹고 사는 일에만 급급하기보다는 깨달음을 추구하면 누구나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어요.”

이에 따라 전등사에서는 길상거사림회, 청년회, 관음회, 문수회, 청년붓다회 등 다양한 신도 결사가 진행중이고, 신도들의 자원봉사 덕분에 성도재일 철야정진과 강화연등축제, 삼랑성역사문화축제, 이주민문화축제 등 지역사회 나눔 봉사를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화재 피해 복구중인 인근 지역의 대한성공회 발달장애인 작업재활시설 우리마을(촌장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주교)을 찾아 성금 10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관내인 길상면사무소에 저소득 이웃들을 위한 ‘행복 나눔 쌀독’을 기탁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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