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감염 막는 수지 덩어리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얻어
나쁜 기운 없애 심신 편하게
날이 조금씩 풀리는 시기에는 유독 피로를 느끼기 쉽다. 몸이 계절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잔병치레를 하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기력이 떨어진 것으로 본다. 과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기력을 회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침향’을 사용했다. 침향은 용연향·사향과 함께 세계 3대 향으로 꼽힌다. 한국·중국 전통 의학서에 신체 기운의 소통을 돕는 약재로 소개돼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침향은 가치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전통 원료다. 사실 침향은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침향나무가 상처를 입었을 때 분비되는 수지(樹脂)가 오랜 세월과 함께 점차 굳어져 덩어리가 된 것을 말한다. 수지는 나무가 상처로 침투하는 각종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분비하는 점도 높은 액체다. 침향나무 목재는 빛깔이 하얗고 연한 반면, 침향은 어둡고 단단하다. 수지가 침향이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짧게는 10~20년, 길게는 수백 년이 지나야 얻을 수 있다.
━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 인정
침향의 가치는 역사서와 전통 의학서에 잘 기록돼 있다. 불교 경전 『중아함경』에서는 “향 중에서 오로지 침향이 제일”이라고 했다.
『동의보감』에서 허준은 침향의 의학적 가치를 두고 “성질이 뜨겁고 맛이 맵고 독이 없다”며 “찬 바람으로 마비된 증상이나 구토·설사를 고쳐주며 정신을 평안하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중국 명나라 본초학 연구서인 『이시진』에는 “상체에 열이 많고 하체는 차가운 상열하한(上熱下寒), 천식·변비, 약한 소변 등에 처방한다”고 돼 있다.
중국 송나라 의서 『본초연의』에는 “나쁜 기운을 제거하고 치료되지 않은 나머지를 고친다. 부드럽게 효능을 취해 이익은 있고 손해는 없다”고 기록돼 있다. 또 명나라 의학서 『본초강목』에는 “침향은 정신을 맑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켜 준다. 위를 따뜻하게 하고 기를 잘 통하게 하며 간 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다. 허리를 따뜻하게 하고 근육을 강화해 주며 기침을 가라앉히고 가래를 제거한다”고 적혀 있다.
이런 효과 때문에 조선 시대에도 기력이 쇠하고 활력이 떨어진 몸을 보충하는 약에 침향을 즐겨 사용했다. 귀한 만큼 여러 질환과 증상에 쓰였다. 기 순환을 원활히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과 변비를 다스리고, 간질을 잡고 안정을 취하는 데 침향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효과가 다양한 것은 올라오는 병의 기운은 내리고 잘 내려가지 못하는 것을 잘 배출되게 돕는 침향 본연의 성질 때문이다. 침향이 구토나 기침, 천식, 딸꾹질을 멈추고 심신 안정, 복부 팽만, 변비나 약한 소변에 효과가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성질 때문이다. 서초아이누리한의원 황만기 원장은 “본초학에서는 침향이 강기온중(降氣溫中)·난신납기(暖腎納氣)라고 해서 안 좋은 기를 내리고 속을 따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기운이 신장으로 모여서 단단하게 하고 잘 배출시킨다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침향의 성분을 추출해 분석하는 연구가 활력을 띠고 있다. 이런 연구 덕분에 효능의 원인 성분과 작용 기전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효능의 첫 번째 핵심 성분은 ‘베타셀리넨(β-Selinene)’이다. 베타셀리넨은 신장에 기운을 불어넣고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만성 신부전 환자의 증상을 호전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만성 신부전 환자에게 침향을 섭취하게 한 결과, 식욕부진과 함께 복통·부종 등의 기존 증상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
기력 채우고, 신경 안정시키는 성분
또한 침향에 들어 있는 ‘아가로스피롤’도 핵심 성분 중 하나다. 아가로스피롤은 흔히 천연 신경안정제로 불린다. 신경을 이완하고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돕는 효과가 있다. 『본초강목』에 명시된 ‘정신을 맑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킨다’는 내용은 바로 침향의 아가로스피롤 성분 덕분이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불면증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고된다.
이외에도 침향의 유황 성분은 항균 작용을 해 염증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혈액순환을 개선해 신진대사를 촉진하기도 하고 설사 증상을 완화하는 등 다양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침향을 복용할 땐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복용에 신중해야 한다. 침향은 기본적으로 열을 내는 성질을 갖고 있다. 침향의 맛이 맵고 기운이 따뜻해 열이 많은 사람은 복용에 주의하는 게 좋다. 한의학에서도 양기가 왕성한 사람에게는 침향을 잘 쓰지 않는다.
또한 과용해서도 안 된다. 한번에 너무 많은 양을 복용하면 두통이나 복통,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반드시 정해진 양만 섭취한다. 최근에는 침향을 일정 비율로 배합한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전성을 입증한 침향 배합 제품을 구입해 복용하는 것이 좋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