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포렌식 지원…"압수수색보다 훨씬 실효적 효과 기대"
"행정조사와 달리, 압수수색 자료는 보건당국과 공유 어려워"
신천지 본부 나서는 조사단 |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정부가 사법적 절차가 아닌 행정조사 방식으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으로부터 신도 명단과 예배 출석 기록 등을 확보하고 나서면서 검찰의 강제수사 필요성을 둘러싼 논란이 새 국면을 맞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5일 오전 11시 경기도 과천의 신천지교회 본부에 대한 행정조사를 벌였다. 중대본은 신천지 신도·교육생 명단을 확보해 기존에 제출된 명단의 신뢰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정부는 예배 별 출석 기록, 신천지 시설 전체 주소 정보 등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진원지로 지목된 신천지는 중대본의 역학조사에서 중요한 조사 대상이 된다. 이날 행정조사가 이뤄진 것도 감염경로와 동선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여러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여권에서는 이 같은 정보 파악에 검찰이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와 방역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신도 명단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하고 연락이 두절된 신도가 나오는 등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인 만큼 압수수색 등 검찰의 강제수사력을 동원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법령에 근거한 행정조사 절차를 통해 정보 파악에 나서면서 검찰이 시급하게 강제수사에 돌입할 필요성이 줄어든 양상이다.
이는 검찰이 여권의 강제수사 요구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여온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가 합법적 조사 권한을 발휘하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굳이 강제수사 절차를 밟아 파악하도록 하는 건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방역이 최우선의 목적이라면 압수수색 등 형사사법 절차보다는 행정상 강제처분이 정보를 얻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압수수색은 영장에 의해 장소나 압수 물건의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므로 폭넓은 조사는 어려운 편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일단 방역 당국의 행정 업무를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날 행정조사에는 대검찰청 포렌식 요원과 장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행정조사는 신천지 측의 협조로 순조롭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자료 확보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일단 평가하고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계속 지원할 계획이다. 대검 관계자는 "확보한 자료 분석 등 후속 조치도 계속 지원하고, 방역 당국과 지원 체계를 공고하게 유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과천 신천지 시설 역학조사 |
그러나 이날 행정조사 과정에서 신천지 측이 거짓 자료를 내거나 일부러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등 범죄 정황이 드러나면 감염병예방법 위반이나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 체포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의 필요성이 커진다.
물론 행정조사에서 신천지 측으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파악했다고 해도, 검찰이 향후 강제수사력을 동원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미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할 때 강제수사가 필요하다면 실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89) 총회장은 코로나19와 무관한 배임·횡령 혐의 사건으로 2018년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전피연)가 고발한 이 사건은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살펴보고 있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계좌·회계장부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지만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해 검찰에 무혐의 의견으로 이 사건을 송치했다. 검찰이 보강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강제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행정조사 결과에 따라 압수수색이 가능할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 경과와 내용을 봐야 한다"며 "검찰도 정부의 행정조사 내용을 사실조회나 공조 등 방식으로 공유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어 "행정조사와 검찰의 강제수사를 직접 연결하기는 어렵지만, 행정조사가 강제수사의 사전절차라고 볼 수는 있다"며 "행정조사에서 미진한 부분이 나타나거나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사실관계가 드러나면 검찰 입장에서도 강제수사의 명분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결국 검찰의 강제수사 대신 방역당국의 행정조사 방식으로 신천지 측 자료 확보에 나선 점에 비춰 일찌감치 강제수사 필요성을 강조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이 불필요한 논란을 빚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추 장관은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방역 목적의 차원에서도 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가 즉각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반면, 추후 검찰이 실제로 강제수사를 벌여 신천지 측으로부터 자료를 새로 확보한다고 해도 이를 방역 당국과 공유할 수 있는지를 두고도 법조계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압수한 자료를 정부에 임의로 제출할 수 있는지가 불확실하다"며 "감염병예방법상 방역 당국이 영장 없이 방역 관련 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한 만큼 그런 수단을 우선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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