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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숙박명부 대신 '실업급여' 검색…"코로나보다 가난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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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계약직 '고용 불안' 커져…코로나19에 '직격탄'

"사회 취약계층 되기 전에 재정 지원 나서야"

뉴스1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과에서 구직자들이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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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 서울과 제주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K씨는 최근 5~6년간 근무한 직원으로부터 사표를 받았다. 사업 초반부터 함께 한 직원이었지만, 붙잡지 못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19'로 객실 이용객이 5%도 채 안 되면서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실업수당이라도 받도록 조치한 것이 전부다. 직원이 떠나는 날, K씨는 하늘만 쳐다봤다.

# 면세점에서 일하는 중소브랜드 파견업체 직원 L씨는 최근 '실업급여'와 '쿠팡 플렉스'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쉬는 날이 늘어나면서 소득도 반 토막 났기 때문이다. 더 겁나는 것은 언제 다시 전처럼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을 감당하려면 어떻게든 더 벌어야 한다. L씨는 코로나19보다 가난이 더 무섭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여행·숙박업계 파견·계약직 종사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하는 날이 줄면서 월급도 줄었고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희망 조차 갖기 어렵다.

◇장사 안돼 문 닫아…파견·계약직 '어쩌나'

22일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여행과 호텔업의 휴·폐업이 늘고 있다.

지난 1월 19일부터 이달 12일까지 고용노동부에 '여행업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업체만 1941개사에 달한다. 메르스 사태(297개사) 때보다도 6배 넘게 늘었다.

주요 7개 업체의 평균 객실 이용률은 1월 첫 주 70.7%에서 이달 첫 주에는 5.6%로 추락했다. 객실 이용객보다 직원들이 더 많은 곳도 수두룩했다.

면세점 업계도 상황이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김포공항 면세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인천공항 면세점은 매출이 70% 넘게 급감했다.

항공 역시 피해가 만만찮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은 이달 들어 93.2% 떨어졌고, 해외여행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1% 역성장했다. 한국항공협회는 오는 6월까지 항공사 매출 피해가 최소 6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도산 및 국제항공 네트워크 붕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살아남기 위해 업체들은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먼저 '인건비 절감'을 추진했다. 궁지에 몰린 건 파견업체 직원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면세점의 경우, 브랜드별로 차이가 있지만 파견업체 직원 일부는 급여가 50%가량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체와 호텔들은 무급 휴가와 연차 소진을 권유하고 있다. 직원들의 퇴사도 막지 못하고 있다. 한 호텔 대표는 "떠나는 건 아쉽지만, 줄어든 비용에 '다행'이라는 마음이 앞선다"고 털어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도 "정직원들도 챙기기 힘든 상황에서 계약직, 파견직까지 챙기는 것은 안타깝지만 쉽지 않다"며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뉴스1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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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불균형 커지나…'기생충' 현실로?

코로나19 탓에 거리로 나앉게 된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지, 자녀 교육비는 또 어떻게 마련할지, 빌린 돈은 어디서부터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쿠팡에 따르면 단기 아르바이트 개념인 '쿠팡 플렉스' 인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3배 가까이 늘었다.

일각에서는 소득 불균형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금융위기 때도 빈부 격차가 더 벌어졌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소득 양극화 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5.75배까지 치솟았다. 통계를 수집한 2006년 이후 가장 큰 수치였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소득 상위 20%의 평균소득을 하위 20%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값이 클수록 소득불평등도가 높다는 의미다.

특히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파견직이나 계약직 직원일수록 불리하다. 상대적으로 해고가 쉽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로 인한 실업자가 530만명에서 2470만명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실업자 수인 2200만명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미 중국의 지난 2월 도시 실업률(6.2%)은 지난해 12월(5.2%)보다 1%포인트(p) 상승했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CNBC는 중국 국가통계국 데이터를 인용해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 1~2월 약 500만명의 중국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고 보도했다.

일자리를 잃으면 당장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생존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경제에도 악영향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파산이나 기업의 도산을 막는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취약계층이 되기 전에 미리 지원을 통해 구제하자는 주장이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파견 근로와 같은 특수 고용 노동자들이 취약하다"며 "가계나 개인, 기업의 파산이나 도산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취약한 업종 종사자 중심,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못 받는 분들을 중심으로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도 "파견 직원들의 소득이 줄면서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고, 생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재정지원으로 소득 보전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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