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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거대 양당, 비례대표 선거의 흑역사를 새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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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거대 양당의 비례정당 꼼수

군사정권 독재 수단으로 도입됐지만

사표 줄여 표심 제대로 반영하고

소수자 정치 진출 통로로 자리매김

지난해 ‘준연동형’ 도입 결실

선거제 개혁 방해해온 미래통합당

비례정당 비판해온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 만들어 비례의석 늘리기

의원 꿔주기, 공천 파동 구태 재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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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기구는 언제나 인민의 축소판이어야 한다. 지도가 산과 계곡, 강과 호수, 숲과 평야, 도시와 읍을 표시하듯 의회 내의 의견과 열망, 소원들은 원본에 정확히 비례해 제시돼야 한다.”

프랑스 혁명가인 미라보 백작이 1789년 1월 프로방스 의회에서 비례대표의 이상을 천명하면서 한 말이다.(박동천, ‘비례대표 선거제도의 간추린 역사’) 시민혁명으로 의회 주권이 확보됐고, 선거에서 ‘비례성’에 주목하는 발상이 관심의 대상이 됐다. 우리나라의 비례대표제 역시 비례성을 높이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촛불혁명’ 이후 불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요구는 지난해 말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이어져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처음으로 연동형 방식으로 치러지게 됐다.

하지만 이 선거제도는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비례대표 폐지까지 주장하며 선거제도 개혁을 막아선 미래통합당은 물론이고, 선거법 개정에 사활을 건 더불어민주당까지 ‘비례용 위성정당’ 꼼수를 부리며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 거대 양당이 함께 비례대표 선거의 흑역사를 쓰고 있다.

비례대표 선거제도 변천사

우리나라에 비례대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3년 6대 총선에서다. 전체 의석의 4분의 1인 44명을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뽑았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세력의 논공 행상 차원에서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이후 9·10대 총선에선 비례대표를 없앴다. 그나마 선거라는 절차마저 무력화하고 대통령이 사실상 임명하는 ‘유신정우회’ 의원을 지역구와 별도로 뽑았다. 전두환 정권은 11대 총선(1981년) 때 전국구를 부활시켰다. 92석으로 크게 늘린 뒤 3분의 2를 제1당에 무조건 줬다. 독재정권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제도 개선이 조금씩 이뤄졌다. 13대 총선(1988년)에서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지역구가 224개로 크게 늘었고, 비례대표 의석이 지역구의 3분의 1인 75석으로 확대됐다. 1당이 전국구 의원 절반을 차지했다. 문민정부에서 치러진 14대 총선(1992년)부터는 ‘지역구 의석 없는 원내 정당’이 가능해졌다. 지역구 당선자가 없더라도 유효투표수 3% 이상을 얻은 정당에 1석을 우선 배분하도록 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에는 이름을 ‘비례대표’로 바꾸었다. ‘돈 전(錢)’자 전국구로 불릴 만큼 공공연했던 ‘공천헌금’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비례대표 후보에 여성할당제(30%)도 도입됐다.

선거제도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은 건 2004년 17대 총선에서다. 지금의 정당명부식 1인2표제(지역구 1표, 정당투표 1표)가 실시됐다. 정당득표율 3%를 넘는 모든 정당이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게 됐다. 국회가 제 머리를 깎은 건 아니었다. 앞서 2001년 헌법재판소가 비례대표 의석을 1인1표제 방식에 따라 배분하는 게 위헌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기존 방식으로는 “국민의 의사가 투표 결과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는다”고 했다.

변화한 선거제도로 인해 지역주의에 기댄 ‘소선거구-단순다수대표제’에 기반을 둔 기득권 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정당득표율 13%로 비례대표 8석을 얻었고, 지역구 2석을 더해 자유민주연합을 제치고 제3당을 차지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이 정당득표율에서 민주당을 제치고 2위(26.7%)를 차지해 비례대표 13석을 얻었다. 비례대표제는 여성과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소수자의 정치 진출 촉매제 구실도 했다. 2005년에는 비례대표 후보 50% 이상을 여성으로 정하고, 홀수 번호 배치를 의무화하는 선거법이 개정됐다. 19대 총선(2012년)에선 첫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이자스민)이 비례대표제를 통해 탄생했다. 20대 총선 지역구 여성 당선인 26명 가운데 비례대표 출신이 15명에 이른다.

비례대표제의 단점도 물론 있다. 현행 제도는 정당이 공천한 후보 명부 전체를 놓고 정당에 투표하는 구속명부식이어서, 후보 개개인보다는 정당에 대한 믿음이 유권자의 주요 선택 기준이 된다. 정당의 민주적 운영과 공천 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부적합 인물이 당선될 수 있다는 얘기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로 이뤄진 친박연대가 비례대표 8석을 얻었고, 19대 총선 때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 부정 사건이 발생했다. 20대 국회에선 비례대표의 당적 변경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비례대표는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고, 당이 제명하거나 합당·해산하면 의원직이 유지된다. 최근 바른미래당 비례대표 8명은 ‘셀프 제명’을 하고 일부는 통합당 공천을 받았지만 법원의 제명 취소 판결로 결국 탈당 절차를 밟았다. 소속 정당 당적을 유지한 채 다른 정당 당직을 맡아 활동한 의원들도 있다.

한편으로 눈여겨볼 것은 17대 국회 이후 비례대표 의석수가 오히려 줄었다는 점이다. ‘비례성’뿐 아니라 ‘대표성’을 높이려면 의석수가 늘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17대 56석, 18·19대 54석, 20대 47석으로 감소했다. 전체 의석의 15%에 불과하다. 이는 지역구별 인구 편차를 줄이라는 헌재 결정에 따라 수도권 대도시 지역구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원 정수를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는 손쉬운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을 1년여 앞둔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지만, 국회는 이와 정반대로 갔다.

하지만 촛불 이후 선거제도 개혁 목소리가 커지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더는 외면하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소극적이었지만, 이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이 줄기차게 주장하거나 공약해온 것이었다. 민주당은 결국 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연동해 선거법 개정에 나섰고, 패스트트랙 지정(2019년 4월30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의결(8월29일), 본회의 의결(12월27일)까지 천신만고 끝에 연동형 도입의 첫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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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의석 ‘나눠 먹기’ 싸움 점입가경

그러나 민주당과 야4당의 최종안 협상 과정에서 내용이 후퇴했다. 애초 지역구를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75석까지 늘여 50% 연동률을 적용하기로 했지만, 결국 비례대표는 1석도 늘리지 못했다. 50% 연동률도 30석까지만 적용되고, 나머지 17석은 현행대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석패율제도 없었던 일이 됐다. “한계가 너무 커서 개혁이라 부를 수도 없다”(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평가가 나왔다. “의석을 전혀 늘리지 않은 ‘미니’ 비례제, 절반만 연동형 원리를 적용하는 ‘준’연동형, 30석 상한선까지 씌운 ‘캡’ 연동형”이라는 ‘삼중의 자물쇠’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런 후퇴는 민주당이 “거대 정당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협치를 만드는 역사적 결단을 하겠다”는 약속을 걷어차고 소수정당을 압박한 결과다. 축소된 제도는 선거 국면이 되자 왜곡되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이 구체화하면서 민주당의 비례의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말이 뒤집혔다. 더 나아가 비례 정당을 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말도 뒤집었다.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돕겠다”며 민주화 원로들이 주도한 ‘정치개혁연합’과 논의하다가 결국 지난 18일 친문 지지자 중심의 플랫폼 정당인 ‘시민을 위하여’와 함께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하기로 했다.

이로써 4월 총선은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의석 나눠먹기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다음은 두 당이 이 과정에서 보여준 여러 행태다.

① 노골적인 이름

자유한국당은 애초 위성정당 이름을 ‘비례자유한국당’으로 등록하려 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비례’는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정당의 정책과 정치적 신념 등 가치를 내포하는 단어로 보기 어렵다”며 ‘비례○○당’ 식의 이름을 쓸 수 없다고 결정했다. 위성정당은 ‘미래한국당’으로 창당했고(2월5일), 자유한국당은 보수 합당을 하면서 당명이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2월17일). 민주당도 ‘더불어’를 위성정당 이름에 넣었다.

② 의원 꿔주기

선거 기호는 의원 수가 많은 순서대로, 의원이 없으면 가나다순으로 부여된다. 의원 꿔주기는 정당투표 용지 상위를 차지하기 위한 자리싸움이다. 통합당은 한선교 의원을 위성정당 대표로 파견하고, 비례대표 2명을 제명해 보내는 등 모두 6명을 꿔주었다. 비례대표 후보 공천 파동으로 지난 18일 한 대표가 사퇴하자 5선 원유철 의원 등 4명을 추가로 보냈다. 민주당도 위성정당에 보낼 의원들을 골라 설득 중이다. 10명 이상 보내야 한국당보다 상위 순번을 받을 수 있다.

③ 후보 급조

후보 등록은 오는 26~27일이다. 한국당은 500여명의 공천 신청자가 몰려 ‘3분 면접’을 통해 후보 명부를 만들었다. 통합당이 반발해 명단을 수정했으나 지난 19일 선거인단(100명) 투표에서 부결돼 명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자체 후보를 공모하기로 한 ‘시민을위하여’는 20일 공천관리위원회와 민주당 인력을 포함한 검증팀을 구성했다. 선관위는 지난달 6일 비례대표 후보 추천과 관련해 “당대표·최고위원회가 후보자 및 순위를 결정해 추천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쳐 대의원·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④ 정책 토론 불가

공식 선거운동은 다음달 2일 시작된다. 그러나 민주당과 통합당은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텔레비전 토론회에 참가할 수 없다. 신문·방송·인터넷 광고도 할 수 없다. 비례대표 선거가 정당에 대한 투표 성격을 갖기 때문에 선거법은 토론과 광고를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한 정당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⑤ 탈당-입당-제명-복당?

민주당은 비례대표 후보 25명을 모두 탈당시켜 위성정당에 보낼 예정이다. 이들이 당선된 뒤 민주당에 돌아가려면 제명되거나, 더불어시민당이 해산 또는 민주당과 합당해야 한다. 한국당은 처음부터 위성정당을 표방한 만큼 통합당과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예전보다 ‘비례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됐던 이번 총선은 거대 양당 위성정당의 등장으로 오히려 선거제도 개혁 이전보다 악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정책과 인물, 구도는 보이지 않고 ‘비례용 위성정당 대결’만 남아 거대 양당의 양극 정치가 한층 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국민들이 4년 뒤 22대 총선을 이 제도로 치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두 거대 정당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하자는 의견보다 예전 제도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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