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방역은 모범적인 상황에 있다. 치사율을 1.2% 내에서 통제하고 있고, 확진율도 3% 이내로 떨어지고 있다. 광범위한 검사 실시를 위해 드라이브 스루 검사소까지 도입했다. 마스크 대란도 사라졌다. 하루에 수천명씩 확진자가 늘어나고 수백명씩 사망자가 발생하는 유럽과 미국의 상황을 볼 때, 한국의 상황은 관리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강권 통제도 없었다. 여론은 시종일관 시끌벅적했다. 처음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가 논란이 됐다. 정부는 입국 금지 대신 외국인을 전부 추적 관찰하는 방식으로 검역을 강화했다. 곧 마스크가 쟁점이 됐다. 수출 물량을 제한하고 공적 마스크 판매를 결정했다. 여론은 지속적으로 정책에 반영됐다.
두 가지 비관론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먼저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면 될 것인데, 그렇지 않으니 매번 극성스레 대응하느라 국민이 피곤하다”는 주장이다. 시스템을 갖췄다는 선진국 중 많은 수가 제때 대응을 못해 보건시스템 붕괴를 맞고 있거나, 검사를 제한해 확진자를 늘리지 않으면서 버티고 있다. 모든 불확실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불확실한 상황에선 목표를 중심으로 제도를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 사실 한국의 방역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통해 틀이 잡혀 있었기에 현재도 작동하는 것이다. 제도적 기초와 유연한 대응전략이 현재의 상황을 만들었다.
두 번째로 서구 시민들의 자유로움과 민주주의에 대한 예찬을 하며 ‘통제’가 작동하는 한국이 전체주의적으로 갈 것이라 비관하는 주장이다. 아파트 발코니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탈리아 사람들. 정부가 하지 말라 해도 외출해서 식사를 함께하고 담소를 나누고 술을 마시는 프랑스 사람들. 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기본권인 보건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아노미와 과도한 낙관이라 볼 수 있는 건 아닐까. 한국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 것을 단절의 상징으로 읽는 것도 관성적이다. 마스크를 모두 썼기에 안심하고 외출도 하고 대화도 하고 일도 하는 것이다. 마스크가 소통할 수 있는 신뢰의 자산이 되기도 한 셈이다.
플랫폼 노동자·콜센터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시간 강사…
‘돌봄’으로 극복할 수 없는 육아
코로나19로 드러난 ‘약한 고리들’
이 목소리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새로운 사회계약이 생겨날 것이다
그럼에도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첫번째 도전이 방역이었다면 이제는 사회를 어떻게 새롭게 작성할 거냐는 도전이 오고 있다. 서구의 안일해 보이는 태도 뒤에는 단단한 인프라가 있다. 확진자가 폭증함에도 낮은 수준의 치사율을 유지하는 독일은 세계 최고의 보건의료체계와 제약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 각국과 미국은 재난상황임을 인지하고 수백조원의 재정을 쓰겠다 한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은 방역뿐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는 한국사회의 약한 고리를 드러내며 후폭풍처럼 다양한 숙제를 제시할 것이다. 배송과 배달음식 주문 폭증은 플랫폼노동자들의 혹사를 드러낸다. 콜센터 집단감염은 아파도 쉴 수 없는 노동자들의 처지와 열악한 노동조건을 드러내고 있다. 초·중·고 개학 연기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와 ‘돌봄 지원’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육아의 어려움을 드러낸다. 대학은 인터넷 강의를 지원하지만, 오프라인 수업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았던 장애인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에 잘 적응하는지는 누구도 확인하지 않는다. 시간강사들은 학생들과의 관계성도 사라진 채 인터넷 강의만 저장되어 자리가 사라질까 불안해한다.
드러난 약한 고리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봉합될 수 없다. 대통령, 장관, 도지사가 임금을 반납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재난기본소득이나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들에 대한 부채 탕감, 육아와 일자리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득 보전 등 담대한 정책을 쓰는 것이 국가의 일이다. 사람들이 온라인 새벽 배송을 신청하지 않거나, 콜센터 노동자가 열악한 공간에서 일한다며 민원을 넣지 않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플랫폼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노동계약을 바로 세워야 문제가 풀린다. 개학 연장을 반복하며 전전긍긍할 게 아니라 학기를 멈추고 9월 학기제를 고민하며 판을 새로 짜야 다음이 보인다.
루스벨트의 뉴딜연합처럼 위기 가운데 국가가 담대한 정책을 쓰고, 다수의 약한 고리 속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연합을 만들 때 새로운 사회계약이 생겨난다. 그게 ‘뉴 노멀’ 시대에 맞는 대응일 것이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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