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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그 시절 원조 ‘정년이들’, 다시 한 무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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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민속극장 풍류서 내달 3일

“관심 반갑지만 현실은 안타까워”

경향신문

여성국극 원로들이 14일 서울 충무로 한국의집에서 시연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미자, 홍성덕, 이옥천, 남덕봉씨. 가장 왼쪽은 신진 최유미씨. 국가유산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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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정년이>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여성국극의 전성기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1948년 명창 박록주가 ‘여성국악동호회’를 설립해 본격화한 이후, 1969년까지 20여개의 여성국극단이 활동했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심지어 남성 역할도 여성 배우가 맡아 연기한다는 점에 여성국극의 특징이 있고, 이는 전통적 젠더 규범에 의문을 품는 현대 예술가들의 영감도 자극했다.

여성국극의 전성기를 경험한 원로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음달 3일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리는 특별공연 ‘한국 최초 여성 오페라, 전설이 된 그녀들’을 앞두고 열린 자리다. 14일 서울 충무로 한국의집에서 기자들과 만난 홍성덕(80)·이옥천(78)·이미자(79)·남덕봉(79)씨는 여성국극이 다시 관심받는 현실에 반가워하면서도, 여전히 공연을 올리기 쉽지 않은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이옥천씨는 “국극을 배우고 싶어 전통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니 가르쳐주지 않아 제가 스스로 <방자전>을 만들어 히트를 쳤다”며 “당시 여학생들이 저한테 반해 학교에만 오면 ‘언니’ 하고 소리 지르고 난리였다”고 회상했다. 남덕봉씨는 “국민(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국극을 봤는데 ‘여자가 어떻게 남자 역을 저렇게 멋있게 할 수 있을까’ 반했다”며 “당시 하루 4회 공연을 했는데, 공연 끝날 때마다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다시 나와 종일 공연을 봤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이사장인 홍성덕씨는 배우이자 제작자로 숱한 여성국극 작품을 만들었다. 사재를 털어 공연을 올리다가 재정난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주인공으로 뽑히려면 외모가 좋고 소리를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연기도 잘해야 했다”며 “지금도 여성국극을 제대로 배우려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레슨비를 대서라도 제대로 가르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배우들은 모두 주된 역할이 있다. 홍성덕씨는 여성 주인공, 이옥천씨는 남성 주인공, 이미자씨는 이들을 괴롭히는 악당, 남덕봉씨는 웃음을 주는 감초 역할에 강점이 있다. 이미자씨는 “이옥천씨는 남성 주인공다운 매력이 넘치지만, 저는 여성 주인공을 겁탈하려는 역할만 맡아왔다”며 웃었다. 이옥천씨는 “제자 중에 덩치가 큰 여학생 보면 남자 역을 시키고 싶은데, 하나같이 춘향 역만 하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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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극 원로배우들이 14일 서울 한국의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악평론가 김문성씨, 홍성덕·이옥천·이미자·남덕봉씨. 국가유산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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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통공연의 역사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이어진다. 중국 광둥 지방에서 주로 공연되는 월극은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일본의 다카라즈카는 중·고·대학 교육과 연계돼 있고 전용공연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그에 반해 한국의 여성국극은 국가, 지자체, 기업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다. 여성국극은 국가무형유산으로도 등재되지 않았다. 해방 이후 주로 형식이 발전했기에, 전통적인 무형유산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전설이 된 그녀들’ 공연 1부는 홍성덕씨 등 원로 배우의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2부는 여성국극 최고 인기작으로 꼽히는 <선화공주>를 신진과 원로가 함께 꾸민다. 홍성덕씨는 “여성국극의 매력을 직접 와서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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