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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5 (토)

‘수어’ 없는 온라인 강의 “장애학생들은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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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여파 원격수업 ‘사각’

“속기록·자막으론 이해 한계”

대학 기준 제각각 지원 혼선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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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한 사립대학교에 다니는 졸리(29·가명)는 노트북 화면 왼쪽에는 프레젠테이션(PPT) 화면이 흐르는 영상을, 오른쪽에는 한글 파일로 된 속기록을 띄우고 강의를 듣는다. 대학이 코로나19 여파로 원격 수업을 하면서부터 이렇게 수업에 참여한다.

졸리는 지난 19일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문자로 소통했다. “PPT와 속기를 번갈아 봐도 교수님이 어느 부분을 설명하는지 모르겠어요. ‘여길 말하고 있겠지’ 하며 속기록을 보는데 갑자기 PPT 화면이 넘어가요. PPT랑 속기 내용이 들어맞는지 찾는 데 급급해 내용은 대부분 놓치죠.”

지난 16일 개강한 대다수 대학의 온라인 원격 수업은 3월 말~4월 초까지 이어진다. 교육부는 지난 3일 각 대학에 공문을 보내 “장애 학생에게 수어통역, 속기 등을 적극 지원해 수업 참여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 대학들은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장애 학생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경향신문과 만난 청각장애 학생들은 지원방안에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고 했다. 졸리가 수강하는 PPT 영상에는 교수의 얼굴은 나오지 않고 목소리만 흐른다. “3년 동안 교수님 수업을 듣다보니 입 모양에 익숙해졌어요. 얼굴이 나오면 입 모양으로 수업을 따라갈 수 있죠. 속기록만으로는 수업 흐름도 깨지고, 듣는 데 시간이 2~3배 걸려요.”

졸리는 원격 속기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학교에서 지원한 속기사가 학생과 동시에 강의를 들으며 교수가 하는 말을 실시간으로 보내준다. 졸리는 “교수님이 말하는 부분을 정확히 알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한 속기록을 보내주는 것보다 낫다”면서도 “강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하려면 영상에 자막과 교수님 얼굴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이 장애 학생들의 목소리를 더 들었어야 한다고 했다. “온라인 강의 준비 기간에 ‘자막을 넣어달라’고 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에 요청했는데 아무 답변도 오지 않았어요. 장애 학생들에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조사한 후에 만들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청각장애 학생 ㄱ씨(22)는 충남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이 대학에서는 강의 영상에 자막을 입혔다. 교수 얼굴이 나오는 영상도 있다. 장애 학생에 대한 지원이 잘돼 있는 편이지만, ㄱ씨는 “청각장애 학생이 자막만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수어통역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이번 학기에 8과목을 수강한다. 그중 한 과목만 지금까지 수어통역 영상이 지원됐다. 강의실에선 교수 옆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돼 농담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온라인 수업에선 자막에 전문용어가 나와도 수어로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으니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ㄱ씨는 “수어와 한국어는 문장 체계가 달라 자막으로 학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코로나19 같은 긴급 상황에서 장애 학생을 어떻게 지원할지 기준이 없다보니 대학마다 지원방안이 다르다”며 “나사렛대학교, 대구대학교 등 장애 학생이 많은 대학을 제외하면 지원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장애대학생교육지원활동’이라는 기존 사업에 자막 제작비도 추가 지원하고 있다”며 “각 대학으로부터 장애 학생 수와 지원 계획을 보고받고 있다”고 밝혔다.

글 탁지영·사진 우철훈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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