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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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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반세기 만에 아파트 담장 없어진다…3기 신도시 과천과천지구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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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LH, 20일 과천지구 합동보고회 개최

7200가구 공급, "전혀 본 적 없는 안"

반세기간 똑같았던 신도시 틀 깨기 나서

단지 해체, 유럽처럼 길과 아파트 맞닿아

중앙일보

LH가 반세기 만에 신도시 공급 방식을 바꾸는 최초의 시도를 한다. 정부의 수도권 30만호 공급 계획 중 한 곳인 과천과천지구(7200가구)가 첫 대상지다. 이미지는 내년 연말에 입주자 모집 공고를 할 계획인 과천과천지구 신혼희망타운 투시도의 모습.[사진 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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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기 신도시 과천과천지구에서 ‘분당 깨기’ 실험에 나선다. 1기 신도시 때부터, 더 앞서 반포주공 아파트와 같은 1970년대 강남 개발 시절부터 반세기 가까이 바꾸지 않았던 도시 조성 및 공급 방식을 바꾼다. 공공이 땅만 마련해 팔면 민간에서 알아서 아파트를 짓고 도로와 같은 기반시설도 만들어 관리까지 하던 방식에서 달라진다. 공공이 조성하고 관리할 게 많아진다. 과천과천지구에 공급되는 약 7200가구가 그 첫 대상이다.

지난 2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구미동 한국주택토지공사(LH) 경기본부 3층 대회의실에서 이 최초의 실험에 대한 설명회이자, 합동 보고회가 열렸다. “생전 처음 보는 안”을 놓고서 프로젝트의 총괄협의체인 국가건축정책위원회ㆍ국토부ㆍLH와 공동 사업시행자인 경기도 및 경기도시공사 관계자들이 모여 갑론을박을 펼쳤다.

LH 등 총괄협의체는 과천지구의 도시계획과 건축을 묶은 도시건축 통합 마스터플랜 공모전을 열었고, 최근 당선작을 뽑았다. 시아플랜건축사사무소, 인토엔지니어링도시건축사사무소, 동현건축사사무소, 어반플랫폼이 참여한 ‘보이드 앤 멀티플(Void & Multiple)’이 뽑혔다. LH는 이 당선작을 토대로 지구계획(토지이용계획+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고 내년 12월께 신혼희망타운 1200가구부터 입주자모집 공고를 한다는 목표다.



우리 도시는, 아파트 단지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아파트 단지는 정부 입장에서 가장 손쉽고 값싸게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 압축성장 시대에 도심으로 사람이 몰리고 주택난은 심각했다. 하지만 정부는 주택 건설에 앞서 도시 기반시설에 투자할 돈도 부족했다. 그래서 국공유지를 민간에 팔았다. 1970년대 서울 한강 변 매립지가 아파트 단지로 개발됐다.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여의도 시범 아파트, 구반포 주공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 잠실지구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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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준공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된 1970년대 반포주공1단지 전경. 당시 중앙난방방식과 복층구조 등을 갖춘 최신식 고급 아파트였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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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단지 진입을 위한 간선도로만 만들어 주면 민간에서 편의시설을 갖춘 아파트 단지를 만들었다. 건설업체 입장에서도 매립지나 그린벨트를 저렴하게 사서 아파트를 지어 팔 수 있으니 수익성 좋은 사업이었다.

강남 개발에 이어 분당ㆍ일산과 같은 1기 신도시, 2기 신도시가 이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국가건축정책위원이자 이번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단지 안은 민간이 경쟁적으로 투자해 가꿔지고 단지 밖은 열악한 상태로 지금껏 방치됐다”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도시 기반시설에 엄청난 공공투자를 했던 선진국과 우리나라가 다른 도시 공간을 갖게 된 이유”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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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마포 아파트 단지의 모습.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다. 단지 밖 공간은 낙후되고 단지 안은 좋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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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단지는 도시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영원한 섬이자, 성이 됐다. 정부가 가난했던 시절에 어쩔 수 없이 택했던 방식이라면 이제 바뀔 필요가 있다. 이번 도시건축 통합 마스터플랜 공모전에서 공공이 공공공간에 투자해 단지를 해체하는 모델을 만들고, 이를 위한 3차원적인 디자인 지침서까지 만든다는 게 목표였다.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몇만호 공급식의 양적 공급보다 이제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지 질적으로 고민할 때가 됐고 과천과천지구가 그 첫발을 떼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3기 신도시 과천과천지구에는 ‘사도로’가 없다



기존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의 한 변 길이가 200~400m가량 된다. ‘슈퍼블록’이다. 단지 안 도로는 공공이 조성하는 도시 계획상 도로가 아니다. 입주민의 땅이고, ‘사도로’다. 그래서 교통사고가 나도 도로교통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길이다.

과천과천지구 당선작이 제안한 도시계획은 블록을 작게 쪼갰다. 100세대가 지어지는 가장 작은 세포 블록 크기가 가로세로 80×60m다. 이 블록이 2개가 모여 가장 기본적인 공급 단위가 된다. 이를 2차선 도로가 둘러싼다. 공공이 조성하는 도시계획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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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과천지구는 대단지로 공급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단지를 쪼개고, 도로와 같은 공공공간을 공공이 직접 조성하고 관리한다. 단지 안보다 밖을 더 좋게 가꾼다는 목표다. [사진 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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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에 당선되면서 과천과천지구의 총괄건축가를 맡은 강동완 건축그룹 동현 대표는 “간선도로를 제외하고 모두 2차선 도로로 계획했다”며 “세포 블록 안은 가운데 중정을 둔 디귿 형태의 중정형 아파트 구조로, 유럽처럼 모든 아파트가 걷기 좋은 길에 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존 아파트였다면 내 집 앞 도로의 가로등이 나가면 관리사무실에 연락해서 입주민이 낸 관리비로 고쳤다면 과천과천지구에서는 지자체가 관리해야 한다.

블록이 작아지니 한 블록 안에 지금의 대단지 아파트처럼 모든 편의시설을 갖출 수 없게 된다. 강 대표는 “단지 내에만 있던 커뮤니티가 길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도록 유도했고, 블록끼리 서로 편의시설을 함께 쓰고 교류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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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과천지구의 토지이용계획도(위). 공원과 공공시설이 한 데 모인 6개 녹지축(아래)이 아파트 단지 옆을 관통해 아파트 밖으로 최대 100m 걸어가면 이 녹지축을 만나게 된다. [사진 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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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과천과천지구에는 폭이 130m에 달하는 녹지 축 6개가 도시를 열 지어 관통한다. 즉 어느 집에서든 100m만 걸어나가면 공원과 도서관 및 문화시설이 있는 공공공간을 만나게 된다. LH가 조성하고 지자체를 포함한 공공이 관리하는 공간이다. 강 대표는 “기존 도시에 공원과 학교와 같은 공공공간이 뿔뿔이 흩어져 있던 것을 한데 모아집적 효과로 열린 공간이 더 커지도록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길로 둘러싼 중정형 아파트의 평균 층수는 6~8층이다. 도시 북쪽 양재천변을 따라 25층가량의 고층 타워 동도 있다. 상업·업무지구에는 최고 높이 40층의 주상복합도 허용된다. 존마다 길을 중심으로 건물이 어떻게 배치돼야 하고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하는지 세세한 가이드라인을 담았다. 강성민 LH 도시건축통합계획단장은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책으로 만들어서 향후 아파트 용지를 분양받은 건설사가 이대로 짓도록 가이드할 것”이라고 전했다.



반세기만의 새로운 도시 공급, 숙제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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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과천지구 조감도의 모습.[사진 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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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는 3기 신도시 중 과천과천지구(155만5000㎡),)에 이어 수원당수2(68만㎡), 안산신길2(74만5000㎡)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 계획이다. 대단지 공급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이날 합동 보고회에서 지자체 및 공사 관계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마스터 플랜으로 가이드라인을 다 정하다 보니 컨셉트가 너무 뚜렷해 향후 공급 시 유연성이 좀 떨어질 것 같다” “도시에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있어야 하는데 길도 좁고 미로 같아 목적지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 등이다. 대단지 위주 공급에 특화된 탓에 이 새 도시를 위해 법도 일부 바꿔야 한다.

이를테면 주택법 시행령에 따르면 한 블록당 관리사무소 및 부대시설 총량제가 정해져 있다. 대단지에서는 한 블록 안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지만, 블록이 작은 과천과천지구에서는 맞지 않다. 박인석 교수는 “지금까지 아파트를 혁신하겠다며 설계공모전도 많이 했지만, 대단지라는 틀은 똑같았다”며 “과천과천지구는 반 세기간 반복해온 주택 공급의 틀을 바꾸는 첫 시도이자, 집 밖을 나서면 공공공간이 더 좋고 풍성하게 펼쳐지는 첫 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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