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없는 파격, 증권사 유동성 문제 해결 기대"…일부 신중론도
"CP금리 분기말 급전수요 등 지나고 돈 풀리는 4월부터 진정 전망"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2020.3.16/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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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전민 기자 = 한국은행이 '한국판 양적완화'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제위기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금융시장 불안 해소에 전례 없는 강수를 꺼내 든 것이다.
채권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의 3개월간 무제한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 조치를 통해 최근 우려가 불거진 증권사의 유동성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단기자금시장에서 CP(기업어음) 금리의 급등세도 점차 잦아들겠지만 본격적인 효과는 분기말 급전수요가 해소되고 실제로 돈이 풀리는 4월부터 진정될 것으로 전망됐다.
◇ 전례 없는 한국판 양적완화…"시장기대 뛰어넘어"
한국은행은 전날(26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를 열고 환매조권부채권(RP) 91일물 무제한 매입과 공개시장운영 대상기관, 대상증권 확대 등을 담은 '공개시장운영규정과 금융기관대출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한은은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매주 한차례 정례적으로 한도없는 전액공급방식의 RP매입으로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공급한다. RP 매입 금리 상한은 기준금리에 0.1%포인트를 가산한 0.85%로 설정됐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는 "코로나19 사태로 전세계 금융시장의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고 일부 시장에서는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하면 더 위중하다"며 양적완화 선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채권 전문가들은 이같은 조치를 '파격'이라고 평가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한국이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한은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책을 내놓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례가 없는 유동성 무제한 공급은 시장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은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다하겠다는 의미니,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은의 강한 입장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 증권사 유동성 문제 해결 기여할 것…유동성 공급 규모는 지켜봐야
한은의 이번 조치로 최근 불거진 증권사들의 유동성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결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일부 대형증권사들은 글로벌 주가 급락으로 해외 주가연계증권(ELS) 헤지거래(위험회피)와 관련해 달러 마진콜 문제로 유동성 위기 조짐을 보였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증시가 최근 회복세를 보이면서 마진콜도 줄어들고, 이번 한은의 RP 매입을 통해 유동성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실제로 얼마만큼의 유동성이 증권사 등에 공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정책이 시장기대를 뛰어넘는 것은 맞지만, 증권사가 현재 보유한 채권들은 상당 부분 이미 담보로 제공된 상태로 알고 있다"면서 "실제 한국은행에 RP를 팔고 얼마만큼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한국은행에 RP를 발행하려면 적격 채권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회사채나 은행채 이외의 금융채는 들어가지 않은 상태"라면서 "더 나아가 대상 증권이 투자가 적격한 회사채와 은행채 이외의 금융채로 확대된다면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증권사들이 보유한 증권의 한도 내에서 돈을 언제든지 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보다 탁월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단기자금시장 경색 해소에도 기여…본격 효과는 분기말 이후
최근 단기자금시장의 경색으로 CP 금리의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한은의 대책이 자금시장과 채권시장 전반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CP금리의 급등세는 분기말 급전수요가 늘어난 와중에, 유동성이 필요한 증권사들이 CP를 팔고, 주요 수요처인 신종 머니마켓펀드(MMF)에서도 법인들의 분기말 자금수요로 자금이 빠지면서 발생했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증권사들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고 향후 유동성에 대한 걱정도 없어진다면 굳이 CP를 내다팔아야하는 이유도 없어진다"면서 "그러면 CP 금리도 차츰 안정세를 되찾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러한 효과는 분기말이 지나고 4월부터 본격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날 한은의 발표에도 CP(91일물) 금리는 전날보다 17bp 오른 2.040%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5년 3월11일(2.13%) 이후 약 5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회사채 시장은 후행적으로 돌다리를 짚어가는 성격이 있어서 실제 자금이 집행돼야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이날 CP 시장에서도 매수-매도 호가 갭이 줄어드는 등 심리적인 부분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표상으로 실제 확인이 되는 시점은 3월말을 넘겨 자금이 집행되고, 분기말 이슈가 해소될 때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의 대책이 증권사에 유동성을 공급해 CP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는 간접효과인 만큼 한계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최근 CP 중에도 증권사가 보유한 프로젝트파이낸싱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 금리가 오르고 있는데 롤오버(차환)가 필요한 PF-ABCP는 채권안정펀드 매입 대상에서도 빠졌다"면서 "CP의 주수요처인 신종 MMF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해소가 안 되면 한은의 RP매입 효과가 단기자금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min7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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