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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책과 삶]남성이 되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녀를 옭아맨 차별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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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바레스, 어느 트랜스젠더 과학자의 자서전

벤 바레스 지음·조은영 옮김·정원석 감수

해나무|272쪽|1만5000원

경향신문

바버라 바레스는 유능한 과학자였다. 화학과 컴퓨터과학을 공부했고, 신경정신과 전문의였으며, 1993년 서른아홉 살에 스탠퍼드대 교수가 됐다. 유리천장을 숱하게 뚫으면서도 그것의 존재는 잘 인식하지 못했다. 마흔세 살에 성전환을 해 ‘벤 바레스’가 되기 전까지는.

학부생 시절 인공지능 수업에서 그가 유일하게 문제를 풀어냈을 때, 교수는 점수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대신 풀어준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성전환 후 세미나에서는 한 참석자가 “벤 바레스의 오늘 발표는 훌륭했어. 이 사람 연구가 여동생(바버라 바레스)보다 훨씬 낫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양성의 몸을 모두 살아본 과학자는 편견과 차별을 인식한 후 끈질기게 싸웠다. 여성 과학자를 초대하지 않는 학회 조직위원들을 설득하고, 권위 있는 과학상의 수상 절차를 개정했다. 2005년 하버드대 총장 래리 서머스가 “여성은 선천적으로 재능이 없다”고 발언하자 이를 반박하는 과학적 근거를 ‘네이처’ 논평으로 발표한다. “인지능력에 있어서 남녀 간에 타고난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릴 적부터 스스로를 ‘남자아이’로 여겨 자신의 몸이 불편했던 그는 마흔 살에 유방암으로 양쪽 가슴을 잘라냈을 때 ‘엄청난 안도감’이 들었다고 한다.

지역신문에서 ‘트랜스젠더’라는 용어를 처음 접하기까지 평생 겪어온 괴로움과 낮은 자존감, 강한 자살충동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2016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2017년 12월 세상을 떠나기까지 21개월간 이 책을 썼다. 자신의 경험이 세상의 무지와 편견 때문에 ‘벽장’에서 나오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과학’ 장에서는 그가 이끌어온 ‘신경아교세포’ 연구가 왜 중요한지,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를 지도했던 연구자들 이름까지 하나하나 언급하며 상세하게 설명해 뒀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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