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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백영옥의 말과 글] [142] 젊음이 알 수 있다면, 늙음이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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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원색의 화려한 꽃무늬를 선호하는 건 주로 중년층 이상이다. 젊은이들이 꽃무늬 옷을 즐겨 입지 않는 건 꽃의 시절을 지나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가장 많이 하는 대화의 주제는 건강인데, 청년들은 특별히 건강에 관심이 많지 않다. 사람들이 사라진 것, 이제는 내 것이 아닌 것을 그리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건 인지상정이다. “젊음이 알 수 있다면, 늙음이 할 수 있다면.” 앙리 에스티엔의 말은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는 것을 알려 준다.

바이러스가 창궐 중인 이탈리아에서 80세 이상의 고령 환자를 포기하고 있다는 기사와 클럽을 가득 채운 젊은이들의 사진을 동시에 보았다. 얼마 전 들었던 '사이토카인 폭풍'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침입한 바이러스를 공격하기 위해 면역 체계가 과도하게 반응한 나머지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현상으로 주로 젊은 층에서 잘 일어난다고 했다. 코로나19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무서운 전파 속도에 있지만, 더 끔찍한 건 무증상자들이 감염시키는 사람들의 폭발적인 숫자다. 아이러니하게도 확진자의 비율은 20대가 가장 높지만 사망자 비율은 80세 이상에서 가장 높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는 요즘, 기도할 자유를 외치는 사람과 춤 출 자유를 외치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피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아니, 젊다는 건 대체 어떤 기준인가. 칠순이 훌쩍 넘은 내 부모에게 나는 새파랗게 젊은 아이고, 고3인 조카에게 나는 중년 꼰대이니 나는 젊은 건가 늙은 건가.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라는 말을 달고 사는 엄마나 "어쩜, 넌 예전이랑 똑같니!"라는 친구의 말이나 모두 그 기준이 온통 젊음에 고정돼 있다.

젊은이라면 건강하기 때문에 감염돼도 증상 없이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누군가의 몸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누군가의 불행에 기대 나의 다행을 찾는 게 사람이라지만, 지금은 있는 힘껏 그러지 말아야 할 시기다.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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