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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천안함 피격 10년, 평화도 안보도 여전히 위태롭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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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6일 천안함 피격 10주기 추념식에서 한 유가족이 희생장병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을 어루만지고 있다. 국방부 제공


“정부는 강한 안보로 반드시 항구적 평화를 이뤄낼 것입니다. 확고한 대비태세로 영웅들의 희생을 기억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5주년 기념식에서 ‘평화’와 ‘안보’, ‘대비태세’를 강조했다. 서해수호의 날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도발 등 서해에서 발생한 남북 간 무력충돌에서 희생된 55용사를 기리는 날이다.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은 북방한계선(NLL)과 휴전선 일대에서 고조되던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킨 계기가 됐다. 북한은 NLL을 계속 침범했고, 2015년 지뢰 및 포격도발을 감행해 한반도를 전쟁 직전까지 몰고 갔다.

2018년 9.19 군사합의가 체결되면서 NLL과 휴전선에서의 충돌 가능성은 예전보다 낮아졌다. 하지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다. 우리 군은 천안함 피격 당시 제기됐던 경계작전 문제가 반복되는 등 대비태세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모양새다. ‘평화’도 ‘안보’도 완전히 갖춰지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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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분향하던 중 유가족의 질문을 듣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NLL 대신 미사일 위협하는 북한

북한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 9.19 군사합의를 거치면서 NLL에서 도발을 멈춘 상태다.

NLL에는 평화가 찾아왔지만, 남쪽을 겨냥한 북한의 ‘칼’은 더욱 날카롭게 바뀌고 있다. 그 칼은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대구경방사포다. 스커드 미사일처럼 한 번에 한 발만 쏘는 것이 아닌, 수분 간격으로 두 발을 연속 발사할 수 있어 위협이 더욱 크다.

북한은 지난해 5월 4일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처음 발사했다. 이동식발사차량(TEL)에 두 발을 탑재하는 KN-23은 북한 미사일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정점 고도에 이른 뒤 하강하다 운동 방향이 다시 위쪽으로 솟구치는 풀업(pull-up) 기동 능력을 갖췄다.

일반 탄도미사일의 포물선 궤적과 달라 레이더 탐지와 요격이 어렵다. 풀업 기동을 하면서 최대 600여㎞를 날아가는 KN-23은 한미 연합군의 요격망을 뚫고 한반도 남부 주요 지역을 정밀타격할 능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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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신형 초대형방사포가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뉴시스·노동신문


지난해 8월과 지난 21일 발사된 ‘북한판 에이태킴스’ KN-24는 최대 사거리가 400여㎞에 달하는데다 정점고도가 낮고 풀업 기동이 가능하다. 지난해 8월 발사 당시에는 연속발사 간격이 15분이었으나 지난 21일에는 5분으로 단축됐고, 가상 표적을 정확히 타격해 성능 개량이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이 ‘초대형방사포’라고 주장하는 KN-25는 일반적인 탄도미사일과 방사포의 경계선상에 있는 무기다. 비행궤적과 속도가 탄도미사일의 특성과 일치해 일본 등에서는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분류한다. 직경이 600㎜에 달하는 KN-25는 TEL에 4발을 탑재하는데, 지난해 시험발사 당시 17~19분이었던 연속발사 간격이 올해에는 1분 이내로 줄어들었다.

북한이 쏘는 미사일과 방사포는 우리를 겨냥한 무기다. 심지어 대량살상무기 탑재 가능성마저 제기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다. 미국의 군사전문매체 38노스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KN-23, 24, 25를 시험발사한 것은 남한 목표물에 대한 타격 정확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며 “이들 중 1~2개는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양쪽에 사용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전방지역에 국한됐던 도발이 한반도 전역을 대상으로 확대됐고, 그 위력도 강해졌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평화는 깨지기 쉬운 도자기처럼 위태로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안보태세를 위한 기본조치라며 “시비걸지 말라”고 주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사거리가 짧다며 문제 삼지 않고, 우리 정부는 유감 표명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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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해 5월 실시한 화력타격훈련에서 로켓탄이 무인도에 설치된 표적을 정확히 타격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복되는 경계실패, 헛돈 쓰나

천안함 피격 이후 우리 군은 “북한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첨단 무기를 도입했다.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들은 F-35A 스텔스 전투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AH-64E 공격헬기, KC-330 공중급유기,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등을 한국에 판매했다. 국내에서는 신형 호위함과 유도탄고속함 건조가 이뤄졌다. 여기에 투입된 예산만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일각에서는 “국민 혈세를 국방비에 올인한다”고 비판했지만,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목격한 국민들과 정치권은 군 전력증강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덕분에 개별국가의 군사력을 비교하는 지표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 세계 군사력 랭킹’에서 한국은 6위를 기록, 25위에 그친 북한을 압도했다.

하지만 하드웨어가 갖춰졌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군의 작전과 경계 등 군사대비태세와 기강을 포함한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어야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같은 측면에서 천안함 피격 당시 지적됐던 경계태세 문제가 10년이 흐른 뒤에도 반복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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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올해 들어 해군 제주기지와 진해기지사령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방공진지에 민간인이 잇따라 무단침입해 경계실패 논란이 일었다.

군 당국은 강도 높은 검열에 나서는 한편 17일 군 지도부 회의를 열어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같은날 지휘서신 10호를 통해 경계태세와 작전 기강을 세울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하지만 정 장관 지시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정 장관 취임 이후 대비태세와 기강 확립에 대한 경고와 지시가 지휘서신 등을 통해 하달됐지만, 기강해이를 지적할 만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기 때문이다.

2018년 9월 취임한 정 장관이 하달한 지휘서신은 10건. 신년사나 격려 성격의 지휘서신을 제외하면 대부분 군 기강이나 경계작전, 대비태세와 관련이 있다.

정 장관은 2019년 1월 4호 서신에서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기강을 무너뜨리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같은해 7월에는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사건과 관련해 “경계작전을 완벽히 수행하지 못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완벽한 경계작전을 강조했다. 이달 5일 코로나19 관련 9호 서신에서도 대비태세 유지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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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들이 휴전선 일대에서 철책 경비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장관 지휘서신은 모든 군부대와 소속기관에 전달되는, 무게감이 있는 공식 문서다. 하지만 1년여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장관 지휘서신이 계속 하달됐음에도 지난해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과 2함대사령부 거동수상자 도주, 군사보안 유출, 성폭력 논란에 이어 민간인 무단침입까지 발생하면서 ‘특단의 대책’을 외치던 군 수뇌부의 다짐을 무색하게 했다. “지휘서신 11호도 경계나 기강 문제로 나오게 될 것”이라는 말이 군 안팎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정부는 한반도에서 지속가능한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지만, 북한은 미사일을 쏘면서 그 책임을 한국과 미국에 떠넘기고 있다. 흔들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굳게 지키기 위해서는 군의 기본 요소부터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바로 군의 기강이다.

북한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북방한계선(NLL)과 휴전선 일대에서 도발을 거듭해왔다. 그럼에도 NLL과 휴전선이 효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 수호’를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국군 장병들의 엄정한 기강과 그에 기반한 전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방역 지원과 비군사적 위협 대응 못지 않게 군의 기본 임무를 되돌아보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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