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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2030 취업 분투기] 국립대 졸업장 포기, 직업교육 받고 2년만에 포스코 합격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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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지리학과 진학 후 취업 고민
자퇴 후 폴리텍대 진학
학점·자격증 다 잡으며 포스코 입사

지방 국립대 지리학과를 자퇴하고 기술자로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청년이 있다. 폴리텍대를 나와 포스코 생산기술직 전기 직무에 합격한 홍준혁(25)씨를 만났다.

◇지리 연구원 꿈꾸며 대학 진학

어릴 적 꿈은 운동선수였다. 초등학교 때까진 축구가 좋았고, 중학교에 진학해선 볼링이 좋아졌다. 아버지에게 볼링 선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 얘기는 잘 공감해서 들어주시는 아버지가 그때만큼은 냉정하게 잘라 말씀하셨어요. ‘우리나라에 볼링 잘 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중학생 때 시작한 네가 그 사람들 이기고 올라가는 건 쉽지 않다’고 하셨죠. 막연한 꿈이었는데 아버지의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나니 제 길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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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볼링을 하고 있는 홍준혁 씨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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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지리에 관심이 생겼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세계 지도를 보는 게 재밌었다. "내가 이쪽으로 적성이 있는건가. 생각이 들었어요. 지리 분야의 연구원을 일하면 어떨까.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됐어요."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중·고교 시절 반에서 40명 중 10~15등 사이를 오갔다.

원하던 공주대 지리학과에 진학했다. "좋았어요. 지리로 뭔가 해보자. 생각을 했죠. 내가 좋아하는 분야니까 밥은 먹고 살 수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군대에서 시작된 문과생의 취업 불안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갔다. 강원도 인제에 있는 육군 12사단 수색대에서 복무했다. 힘든 생활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수시로 찾아왔다.

"군대에 있으면서 같은 과 여자 동기들이 학교를 그만두거나 휴학하고 다른 선택을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남 일 같지 않았죠. 정말 지리로 승부를 낼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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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대 지리학과 재학 시절홍준혁(뒷줄 왼쪽)씨와 취업 증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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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제대했다. "복학하니 걱정은 더욱 현실적으로 변했어요. 취업이 막막한데, 내가 장사에 소질이 있는 것 같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공무원 시험은 도전하기 싫었어요. 주변 사람 중에서 한 번에 붙는 사람은 거의 못봤으니까요."

인생 선배인 아버지에게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놨다. 고교 때부터 이공계열 진학을 권했던 아버지는 ‘지금도 늦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가 작은 전기 공사 업체를 운영하세요. 본인이 기술을 갖고 일하시니 아들도 비슷한 일을 하길 바라셨어요. 그러면서 한국폴리텍대학을 권하시더라고요. 아버지도 현장에서 전기 일을 하시다가 폴리텍대학에 진학해 기술을 더 쌓으셨거든요."

◇아버지 추천으로 폴리텍대 입학

다니던 대학을 2학년을 마치고 자퇴했다. 주변에선 "2년 다닌 게 아깝지 않으냐"는 반응이 있었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는 응원이 더 많았어요. 과감하게 자퇴서를 냈죠."

곧 아버지가 추천한 한국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 전기에너지시스템과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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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텍대 재학 시절 공부와 실습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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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기술을 전공하는 게 어떻던가요.
"공고나 이공계 출신 동기가 대부분이었어요. 문과 출신인 저에겐 낯선 환경이었죠. 처음 수업 부터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론 수업은 ‘이게 무슨 내용인가’ 싶었고, 실습하는 걸 보면 ‘내가 이걸 어떻게 하지’라는 막막함이 컸습니다."

더 많이 묻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수밖에 없었다. "군대까지 다녀와 학교에 다시 들어간 거라 동기들이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어렸어요. 그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게 있을 때마다 공고 출신 동생들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수업 받을 때는 1시간 전에 미리 와서 앞자리에 앉아 예습을 했고요. 수업이 끝난 뒤엔 그날 정해둔 공부 시간을 다 채울 때까지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취업을 위해선 자격증이 중요했다. 무작정 자격증 숫자를 늘리기 보다, 전공과 관련이 있는 전기기능사와 전기산업기사 부터 땄다. "자격증 필기시험을 앞두곤 매일 도서관에서 최소 8시간 이상 공부 시간을 채웠습니다. 화장실 가거나, 밥 먹고, 쉬는 시간은 모두 제외한 ‘순수 공부 시간’만으로 8시간 이상 공부한 거죠."

실기 시험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학교 실습실 덕을 봤다. "폴리텍대의 가장 큰 장점이 실습실이 잘 갖춰져 있다는 거에요.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 사전에 얘기만 하면 언제라도 실습실을 쓸 수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자율적으로 실습을 진행하다 보면 더 몰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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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공장 모습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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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포스코 생산기술직 공채 최종 합격

좋은 학점(4.23점)과 자격증을 갖추고 작년 하반기 공채에서 9군데 원서를 냈다. "지원 과정에서도 학교 도움이 컸습니다. 학교에 취업지원을 위한 경력개발센터(Job Café)가 있는데 그곳 선생님이 자기소개서 작성이나 면접 준비를 정말 잘 도와주셨어요. 자기소개서에 쓸 포인트와 예상 면접 질문과 답변 방식 등을 꼼꼼하게 다 봐주셨습니다."

그중 4곳에서 서류합격 통보를 받았고, 3곳의 면접을 봐, 최종 포스코를 선택했다.

앞으로 목표는 포스코에서 ‘명장’이 되는 것이다. "포스코는 자기 분야에서 제일 특출난 사람을 명장으로 임명하거든요. 이제 첫발을 내딛는 거지만 차근차근 올라가서 명장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취업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정말 죽을 듯이 간절하게 노력을 하면 원하는 게 이뤄진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저는 대학 2학년 때 180도 진로를 바꿨어요. 고민이 있다면 과감한 결단도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김승재 기자, 신재현 외부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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