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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소라넷 솜방방이 처벌…그 탓에 n번방 등 우후죽순 창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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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18년만에 소라넷 폐쇄, 운영진만 처벌"

"그때 '해도 괜찮구나' 학습한 이들이 '박사들'"

"법 조항과 실제 판결 간 온도 차이 너무 커"

뉴시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일명 '박사' 조주빈(25)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0.03.25.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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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소라넷이 1999년 만들어진 이후 그 안에선 각종 불법 촬영물이 실시간으로 공유됐는데, 2016년 이 사이트가 폐쇄될 때 처벌받은 건 운영자들뿐이었습니다. '해도 괜찮다'고 학습한 이용자들이 텔레그램에 정착해 '박사들'이 된거죠."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찍고 이를 텔레그램에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 등 일명 '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연일 치솟고 있다. 이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9일 관련단체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과거 '소라넷' 폐쇄 과정에서 소수 운영자에만 가해진 솜방망이 처벌 덕에 살아남은 것이 'n번방의 갓갓', '박사방의 박사' 조주빈 등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 '소라넷의 후예들'이라는 것이다.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이자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활동가인 이하영씨는 최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1999년 만들어진 소라넷이 2016년도 폐쇄될 때 회원이 100만명 가까이 됐다"며 "그런데 소라넷 폐쇄와 함께 처벌받은 건 운영자들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수한 사람들에게 책임이 물어지지 않았고 처벌도 안 됐다"며 "(여기서) 괜찮다고 학습한 사람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퍼졌고, 그중 하나가 텔레그램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라넷은 캐나다와 호주 등에 서버를 두고 이용자가 직접 나체 사진이나 성행위 사진 및 동영상을 공유한 사이트였다. 폐쇄 전까지 몰카, 리벤지 포르노, 약물 이용 강간 등의 범죄 영상이 제작·공유돼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이씨는 이번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도 소라넷처럼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소라넷 또는 n번방, 박사방이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씨는 "소라넷 폐쇄에도 처벌받지 않은 이들은 막 가자는 태도로 곳곳에 소라넷 비슷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며 "그 연령도 점점 낮아지고 있어 이번 기회에 확실히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법 조항이 없는 데다, 법원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내리는 양형 수위가 낮아 이번에도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대위와 함께 활동하는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변호인단'의 박예안 변호사는 "이번 박사방 문제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조항은 부재한 상황"이라면서 "말하자면 해당 범죄에 딱 들어맞는 칼이 없어 성폭력처벌법이라든지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등 다른 종류이 칼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메신저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운영하며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착취물 제작, 유포한 혐의를 받는 조주빈(25)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0.03.25.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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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디지털 성범죄는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범죄"라면서 "처벌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외국처럼 우리도 디지털 성범죄 맞춤 입법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성착취 범죄(sextortion)'라는 새로운 법적 개념을 만들어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딱 맞는 칼'이 마련된다고 해도 현재처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법원이 '초범이라서', '반성해서', '피해자와 합의해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가벼운 판결을 내린다면 별 의미가 없다.

박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국내 법원의 판결은 너무 가벼운 경향이 있다"면서 "다크웹 '웰컴투비디오'에서 아동성착취 영상물을 9000건이나 내려받은 사람도 벌금 300만 원 정도로 끝나는 정도"라고 말했다.

'웰컴투비디오'는 아동 성착취 영상 유포로 불법 수익을 챙긴 사이트인데, 이곳 창설자의 경우에도 실제 선고 받은 형량이 1년6개월에 불과하다.

박 변호사는 "아동청소년보호법 제11조는 미성년자 음란물을 제작한 자에게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게 했고, 단순 소지한 경우에도 최대 2000만원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법 조항과 실제 판결 간 온도 차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양형 기준이 높아지면 판사는 이 기준에 못 비치는 판결을 할 때 더 적극적으로 사정을 설명해야 할 것"이라며 "양형 기준이 높아져 처벌이 현실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wakeu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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