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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4] 가장 아름답고 슬픈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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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인간은 지치지도 않고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해 왔다. 구애와 사랑의 성취에서 오는 환희, 그리고 배신과 이별 혹은 짝사랑의 슬픔은 인간이 만들어낸 노래의 가장 막강한 지분을 가진 주제다.

수많은 사랑 노래가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재즈 보컬의 여왕으로 숭앙받는 빌리 홀리데이의 'Don't Explain'은 이 계보의 백미에 속한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언저리에 발매된 이 노래는 짧은 러닝타임의 한계에도 이제는 지리멸렬하게 남루해진 사랑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면서 사랑에 대한 고전적인 신뢰를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를 대위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남다른 품격이 느껴진다. 한마디로 이 노래는 동어반복적인 '로코(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사랑의 리얼리즘 드라마다.

이 노래의 작사는 아서 헤어조그 주니어로 기록돼 있지만 바람둥이 남편 지미 먼로와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던 빌리 홀리데이의 구체적인 삶의 한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어느 날 밤늦게 남편은 딴 여자의 립스틱을 셔츠에 묻히고 들어왔다. 그는 구구절절이 변명을 늘어놓는다. 여자는 말한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빌리 홀리데이는 그날 밤 자신의 대사인 'Don't Explain'이란 두 단어를 가슴에 담고 있다가 작사가에게 이 스토리의 노랫말을 만들게 하고 자신이 직접 선율을 만들었다. 제목이면서 이 노래의 주제를 담고 있는 '(구차하게) 설명하려 들지 마'는 바로 이 때묻은 부부간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문을 듣고 있으면 울고 싶어지고 당신이 나를 속이는 것도 알지만 여전히 내 생각 모두는 당신이고 이 사랑의 힘이 나를 인내하게 만든다고 빌리 홀리데이는 몸부림친다. 그러나 현실은 잔인하다. 미성년 창녀 엘리노어 페이건은 빌리 홀리데이가 되어 타임지의 표지에 실린 최초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되었지만 남편에게 물든 마약으로 44세의 이른 나이에 쓸쓸히 삶을 마감했다.

[강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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