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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금주의역사 - 3월30~4월5일] 마피아를 불러낸 만종(晩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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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2년의 부활절인 3월30일 저녁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성령교회에서 울려 퍼진 만종(晩鐘) 소리는 ‘부활’과는 정반대의 ‘살생’을 부르는 소리였다. 따라서 그것은 밀레의 명화 ‘만종’의 조용한 풍경과는 딴판의 그림으로 총소리가 요란한 영화 ‘대부’의 화면들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니, 시칠리아를 지배하던 프랑스인들에 대한 저항을 부른 그 종소리는 실제로 마피아의 탄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탈리아는 남부와 북부를 독일계의 두 가문이 차지해 중간의 교황령을 압박했다. 이에 교황은 프랑스 세력을 끌어들여 시칠리아를 포함한 이탈리아 남부를 차지하게 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래서 들어온 프랑스계의 카를로 1세가 너무 시칠리아를 착취하려고 했고 이에 신성로마제국이 반란을 부추겼던 것이다. 만종 소리에 주민들은 신속히 집결해 3000여 명의 프랑스인들을 살해했다. 당시 앞장선 시칠리아의 기사들이 마피아의 시조라는 주장이 꽤 유력하다. ‘마피아(Mafia)’라는 이름도 “이탈리아는 프랑스인의 죽음을 열망한다(Morte alla Francia Italia Anela)”는 구호의 머리글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런 주장의 진위를 떠나 그 만종 사건은 시칠리아와 마피아의 특성을 그린 몽타주 같은 것이다. 시칠리아는 장화 같은 이탈리아 반도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으나 이 섬은 로마시대 이전에나 이후에나 무수한 외침을 겪었다. 로마보다 북아프리카가 더 가까운 이 섬은 로마시대 이전에는 그리스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지배하에 있었다. 그리스 수학자로 알려진 아르키메데스도 이 섬에서 카르타고 편이 돼 로마와 싸웠다. 북구의 바이킹이 지배한 적도 있다.

그런 외세에 저항하는 시칠리아인들의 모습은 마치 미국 경찰과 숨바꼭질을 하는 마피아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양평(언론인)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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