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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하루 응급전화 7000통… 뉴욕, 9·11 이후 최악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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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뉴욕서 5만명 확진, 美전체의 절반… 경찰 512명·소방관 206명도 감염

"환자 쏟아져 심장충격기 방전돼"

트럼프 "강제 격리조치 곧 발표", 주지사 "뉴욕은 우한 아니다" 반발

트럼프, 9시간 뒤 "격리 안해" 발빼

지난 주말 미국 뉴욕의 모습은 마치 전쟁으로 주민들이 모두 피란 가고 없는 텅 빈 도시 같았다. 늘 시민들과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던 '세계의 수도' 뉴욕 맨해튼의 도심에선 주말에도 인적을 찾기 어려웠다. 가끔 눈에 띄는 사람들은 장을 보러 나온 듯 커다란 식료품 봉지를 들고 불안한 모습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식료품 가게와 일부 레스토랑을 제외한 일반 상점은 모두 '일시 영업 중지'라는 팻말을 내걸었다. 필수 업종을 제외한 영업장엔 폐쇄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맨해튼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코로나 환자들로 병원이 마비돼 우리 같은 외국인은 아프면 꼼짝 못 하고 집에서 앓다가 죽을 수도 있다"며 "가능하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뉴욕주는 28일(현지 시각) "뉴욕의 코로나 환자는 5만2318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전날 4만4600명에서 7718명 늘어난 수치다. 사망자도 전날 519명에서 728명으로 209명 증가했다. 미 전역의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 가운데 뉴욕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절반, 3분의 1가량이다. 뉴욕주의 인구는 1954만명이다. 존스홉킨스 의대 집계에 따르면, 28일 현재 미국 전역의 코로나 확진자는 12만명을 넘겼고, 이 중 사망자는 2191명에 달했다. 지난 25일 사망자 1000명을 넘긴 지 이틀 만에 사망자가 배로 급증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뉴욕은 지금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면서 "응급 전화가 9·11 이후 최고로 많이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시에서 응급 의료 서비스를 요청하는 911 전화는 보통 하루 4000여 건인데 지난 26일에는 7000건이 넘는 응급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통화량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9·11 테러 당시 구조 활동을 도왔고 이라크전에도 참전했다는 응급구조사 수아레스는 NYT에 "솔직히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이미 우리 식구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겼을까 봐 무섭다"고 했다. NYT는 "누구를 응급실로 빨리 보내야 하는지, 누구를 집에 남겨도 괜찮은지 등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결정을 현장 응급 의료 인력이 내리는 실정"이라며 "뉴욕시 브루클린의 한 응급구조사는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심정지 환자를 돌보느라 갖고 있던 제세동기(심장에 직접 자극을 주어 심장이 뛰게 하는 장치) 배터리가 방전됐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경찰과 소방관들도 안전하지 않다. 뉴욕경찰(NYPD)은 27일 현재 최소 512명의 직원이 코로나 양성 반응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442명은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인원이고 70명은 민간인 인력이다. 뉴욕 소방서도 소방관 등 최소 206명이 코로나 검사 결과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뉴욕주는 다음 달로 예정된 민주당 대선 경선을 6월로 연기했다.

뉴욕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크게 증가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8일 오전 11시 30분 무렵(미 동부 시각) 트위터에 "'핫스폿(집중 발병 지역)'인 뉴욕주와 뉴저지주, 코네티컷주에 대한 강제 격리 명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곧 조치를 발표하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반발이 일자 한발 물러섰다. 트럼프가 언급한 강제 격리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다른 주(州)로 이동하는 것을 제한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코로나 발원인 중국 우한시처럼 지역 봉쇄를 한다는 의미다.

이 발언은 즉각 반발에 부딪혔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뉴욕은 우한이 아니다"라면서 "대통령과 통화한 것은 맞지만, 강제 격리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CNN방송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격리 발언은 연방정부의 (뉴욕)주에 대한 전쟁 선포"라면서 "미 전역에 담을 쌓는 것은 괴상하고, 반(反)생산적이며, 반미국적이다. 무질서와 대혼란만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에서도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과 달리 각 주가 독립적인 입법·행정·사법권을 행사하는 연방제 국가인 미국에서 대통령이 각 주의 의사를 무시하고 주민의 이동 자유를 제한할 권리가 있느냐는 비난이 이어졌다.

결국 트럼프는 처음 게시물을 올린 지 9시간 만에 다시 트위터를 통해 "백악관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팀과 뉴욕·뉴저지·코네티컷 주지사와 협의에 따라 나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강력한 여행 경보를 내리라고 요청했다"면서 "격리 명령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CDC는 이날 뉴욕·뉴저지·코네티컷 등 3주 주민들을 대상으로 14일간 '미국 내 여행 자제' 경보를 발표했다.




[뉴욕=오윤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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