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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이슈] 감염병 시대의 '뉴 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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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코로나비상대응 실무단장·명지병원 이사장


"이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 것 같습니까?" 요새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물어오는 질문이다. "이번 코로나 감염병은 종식이 없습니다. 메르스 같은 방식을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답하면 모든 사람이 '멘붕'에 빠진 표정을 짓는다. "네? 그러면 어쩌라고요? 끝이 없으면 언제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고 애들은 계속 학교에 못 가나요?"

그렇다. 코로나는 결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메르스 때처럼 일정 기간 열심히 노력하면 머지않아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허망할 수 있다. 일시적 소강상태를 가지더라도 금년을 지나 내년까지 계속될 가능성도 크다.

전 세계 유행에 따른 해외 유입이 새로운 감염원이 되고, 산발적 지역사회 감염도 소규모 단위로 지속될 것이다. 치료제가 개발되어도 중증 환자 폐렴 치료가 주된 역할이지,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처럼 걸리면 먹는 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백신 역시 빨라야 1년 넘게 걸린다. 코로나는 방역 취약 지역에 지속적으로 남아 북반구와 남반구를 돌며 반복될 수 있다.

이런 미증유 사태를 맞이해 이제는 장기전 태세로 국면 전환을 준비하고 전략을 재수립해야 할 때가 됐다. 앞으로 몇 주 동안이 국내적으로 추가 확산세를 막는 중요한 고비인 것은 맞는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더 열심히 하면 조기 종식이 가능하고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바람은 소모적인 희망 고문이 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 감염병 사태의 끝을 예상하고 전략을 짜면 안 된다. 단언컨대 우리는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감염병 시대의 '뉴 노멀(new normal)'을 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특히 의료 시스템의 경우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는 태세로 재편해 가야 한다. 비상적 기동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진지전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요체는 '안정적인 감염 대응 진료 체제'와 암이나 뇌졸중 등의 '일상적 환자 진료 체제', 두 트랙의 공존 병행이다. 임시변통의 병원 밖 천막 선별진료소가 병원 내 상설 진료실로 들어가야 한다. 권역별·지역별 컨트롤 타워를 재편해서 중앙정부 주도의 방역 지휘권과 현장 진료 역량이 충돌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작동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정부 주도 감염병 비상 체계가 지역 밀착형 체제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 100년 만에 돌아온 문명사적 전염병이자 세기적 전환점이다. 어쩌면 4차 산업혁명이 역설적으로 이 전염병 때문에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가 최근 쓴 글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힘들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첫째는 전체주의적인 감시 체제와 시민적 역량 강화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둘째는 민족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중장기전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철학과 창의적 방역 전략이 필요하다. 자원과 인력의 선택과 집중, 효율적 배치와 관리를 하려면 결국 의료인들의 헌신과 시민적 참여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중앙 집권적 감시와 무서운 처벌이 만능이 아님을 공감해야 한다. 스스로의 이익을 알고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시민들이 오히려 감시받는 무지한 대중보다 훨씬 강력하고 효율적이다.

사라예보 총성으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이 20세기 실제적 시작을 알렸듯이, 이번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이 새로운 21세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총성이다. 이 도전에 대한 대응과 적응 능력이 우리의 미래를 가를 것이다.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코로나비상대응 실무단장·명지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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