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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특파원 리포트] '서양' 브랜드의 몰락,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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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대유행)은 21세기 최대의 글로벌 위기다. 9·11테러도, 2008년 금융 위기도 전 세계인에게 미치는 위협 면에선 코로나에 미치지 못했다. 당연히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지금과 같을 수 없다. 외교·정치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폴리티코 등 미국 언론들은 벌써부터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해 예측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9·11 테러나 금융 위기 이후의 세계보다 더 크고 더 깊은 본질적인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우선 '서양(Western)'이란 브랜드의 몰락을 예상했다. 분명히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출발했지만, 궤멸적인 타격을 받은 곳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이었다. 유럽연합(EU)의 공동 번영이란 고상한 목표는 코로나 앞에서 서로 국경을 막으며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세계 최강국이란 미국은 중국보다 많은 감염자를 내고 초기 대응에 완벽히 실패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서양' 세력이 전 세계적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공산 독재 사회인 중국의 체제 우위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러나 코로나 대처에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성과를 낸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 등을 포함한 '동양'식 사회·경제 체제의 강점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하다.

또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덜 개방되고 덜 자유롭고, 덜 세계화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정치인들은 세계화와 자유 무역이 번영의 보증수표라고 국민에게 설득하기 쉽지 않아졌다. 전 세계로의 공급망 다변화는 코로나 같은 대재앙 앞에선 오히려 공급의 단절만을 가져온다는 것이 이번에 확인됐다. 이제 각 국가와 기업들은 수익성만큼이나 공급의 안정성을 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이를 근거로 관세 장벽 등을 높일 수도 있다.

코로나의 확산은 정부가 경제와 복지·안보 모든 측면에서 전면에 등장하도록 만들어 큰 정부의 등장을 정당화할 수 있다. 또 정부가 거대한 제약 회사가 되어 각종 신약과 백신 개발에 나서면서 민간의 영역을 잠식해가는 시나리오도 등장하고 있다. 각국이 자신들의 이익만 앞세우면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아 국제적 협력이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냉전 종식 후 세계화의 물결을 정확히 짚었던 삼성과 현대 등 한국 기업들은 IMF 외환 위기를 겪고 나서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당시와는 정반대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한국의 정부와 기업들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대비한 비상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급격히 변할 세계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향후 대한민국의 번영과 쇠퇴를 결정지을 것이다.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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