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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흔들리는 경제관료 ⑨] "경제 관료들, 국민 다스린다 생각말고 컨설턴트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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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새로운 시대의 관료는 ‘경찰’이 아닌 ‘컨설턴트’로서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 국민을 ‘치(治·다스리다)’한다는 생각, 기업을 ‘업자’ 취급하는 오래된 관습을 벗어나야 한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새 시대 관료의 역할과 전문성 함양 방안’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행정고시 37회 출신으로 국세청 사무관 경력이 있는 이 교수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공무원이 결정하는 옛날 방식의 정책 모델로는 시대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 주도 하의 경제 발전 방식이 저물고 민간의 역량이 강해지면서 새로운 경제 발전 공식이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비즈는 7개 경제부처 과장급 간부 100명을 대상으로 올해 1월 29일부터 2월 7일까지 설문조사를 실시해 관료 사회에 만연해 있던 사기 저하와 무기력의 원인을 찾아 진단해봤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이한상 교수의 인터뷰를 좌담회 형태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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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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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의 관료상은 무엇일까.

(이한상) “포지티브 규제 방식 하의 규제 독점을 포기하고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분쟁과 갈등을 조정하는 ‘컨설턴트’가 될 수 있다. 국민을 ‘고객’으로 생각해야 한다. 국민을 ‘치(治)’한다는 생각, 기업을 ‘업자’ 취급하는 오래된 생각을 벗어나 컨설턴트의 서비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금현섭) “성장과 효율성은 사회발전에 핵심적인 요소이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을 주도할 수 있는 관료가 필요하다. 시장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이 효율성 추구라면 그 이외의 가치 추구는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

(김현욱) “새로운 시대의 경제 관료는 민간의 요구를 정치권에 면밀하게 전달해 경제 정책이 수요자 위주로 수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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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에서 경제 관료들이 한국 경제에서 자신의 역할을 공격수나 심판보다는 수비수 또는 서포터즈로 뽑은 비중이 더 높았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한상) “자신을 공격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어진 것은 자연스럽고, 온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업을 생성하고 확장하는 단계가 지나고 새로운 기술과 사회 변화가 일어나 공무원의 역할도 많이 바뀌었다. 공정한 법집행자라는 의미에서 심판이라고 칭하거나 지원행정 중심의 서포터즈라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다만, 심판으로 경기에서 간간이 볼을 차고 있지 않은지,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있지 않는지 고민해야 한다. 가령 승차 공유 서비스 ‘타다’ 관련 사태에서 국토교통부는 공정한 심판이었는가. 혹은 정치적 여론에 몰려 특정 이해에 더 온정적이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금현섭) “수치 상으로는 수비수·서포터즈(51.5%)라는 답변과 공격수·심판(48.5%)이란 답변의 차이가 크지 않다. 다만 후자가 전자보다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이는 과거 개발국가 시절에 비하면 큰 변화로 볼 수 있다. 시대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역할인식 변화와 정책 영향력의 축소로 인한 강요된 역할인식 변화, 두가지가 복합적이다.”

(김현욱) “조금 부정적으로 보자면, 경제 정책을 주도하기보다는 여론을 따르는 정치권에서 제시된 아젠다를 경제상황에 맞게 실현하고, 민간의 혁신적 시도가 현재의 법령에 맞는지 해석하는 정도의 역할을 요구 받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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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증가하는 관료들의 민간 이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금현섭) “부정적이기 보다는 긍정적이다. 고위 관료의 민간 부문 이직은 공직사회 사기 저하보다는 더 많은 급여나 도전 기회 등 다른 이유들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료 역할에 대한 내부와 외부의 기대 차이가 크고, 지나치게 책임을 강조하는 등 신상필벌이 비대칭적이며, 상대적으로 민간의 역량과 재원, 정보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김현욱) “관료와 민간 역량의 교류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점에서, 과장급 관료의 민간 이직 증가 추세를 민간 인재의 관료사회 진입 문턱을 낮추는 계기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민간과 공직 사회의 교류 활성화는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

(김현욱) “고시제도나 공무원제도 등 공직 인사 시스템 개혁으로 민간의 경험 많은 인재들이 공직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된다. 최고 인재가 정책을 담당하고 이에 대한 사회의 지지를 높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공직 인사 시스템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

(금현섭) “사실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력을 관료로 영입하는 제도는 이미 존재한다. 다만 활성화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도의 활성화를 제약하는 요인들을 걷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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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국회가 여전히 서울에 있는 상황에서 행정부의 세종시 이전으로 비효율을 느끼는 관료가 많다.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이한상) “세종시를 포기하는 게 최우선 정책이겠지만, 불가능하다면 국회와 청와대가 세종시로 내려와야 한다. 서울에는 분원을 두면 된다.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지금의 오송역을 틀어 세종시 한가운데에 KTX 정차역을 만드는 방법 정도가 있을 테다.”

(김현욱) “당초 세종시 이전을 구상했던 의도를 상기해 세종시를 청와대와 국회가 있는 실질적인 수도로 만들어 나가는 방안 외에는 대안이 없을 것이다. 국회의 세종시 분원 설립은 또 다른 비효율을 만드는 정도에 불과한 땜질이라고 생각한다.”

(금현섭) “일단 일이 생길 때마다 담당자를 찾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국회와 청와대가 공간적 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필요 이상의 대면을 요구하고 있다. 행정부가 세종시로 이전했는데도 예전과 같은 대면 방식과 빈도를 요구하거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권과 공무원의 예전 행태가 문제를 유발한다. 각 부처에서 청와대와 국회에 파견한 인력을 우선 활용해야 한다. 정 대면이 필요하다면 국회를 세종에서 진행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이민아 기자(wow@chosunbiz.com);편집=김승현 기자(ray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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