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1 (토)

[팀 알퍼의 한국 일기] 내 허리는 밤에 '천국'을 누린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국 집 바닥은 '지옥', 가장 차갑고 카펫엔 온갖 벌레 기생

한국은 따듯한 방바닥에서 온기 올라와… 누우면 허리 받쳐줘

푹신한 침대에선 해파리 된 느낌… 이젠 영국 갈 때 매트 가져가

조선일보

팀 알퍼 칼럼니스트


절대로 이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가구가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인들은 여러 가지 대답을 하겠지만, 영국인 대답은 아마도 '침대'일 것이다. 요 대신 침대를 사용하는 현대적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한국 사람이라도 누군가 총구를 겨누고 이제부터 침대를 포기하고 요를 쓰라면 순순히 따를 것이다. 하지만 영국 사람이라면 선택은 아주 간단하다. 침대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영국인들이 이토록 침대에 집착하는 이유는 양말만 신고 영국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난방 시스템은 바닥을 집에서 가장 따뜻한 부분으로 만든다. 추운 겨울날 밖에서 들어와 따끈하게 덥힌 방바닥을 발로 밟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하지만 영국 집은 가장 차가운 부분이 바닥이다. 최근에 만든 집 침실은 나무 바닥이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영국 집 바닥은 주로 돌판으로 만든다. 나무 바닥이라 하더라도 습하고 쌀쌀한 영국 날씨는 그것을 돌바닥처럼 차갑게 만든다. 이런 차가운 바닥에 요를 깐다면 얼음판 위에서 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영국인들은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바닥에 카펫을 깐다. 불행히도 카펫이 만들어 내는 온기는 현대식 온돌 시스템으로 난방이 된 한국의 바닥에는 전혀 비할 수 없으며, 청소 또한 엄청나게 힘들다. 카펫에 묻은 때를 제거하려면 독극물처럼 보이는 화학약품을 잔뜩 뿌리고 공업용 수준으로 흡입력이 엄청난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야 한다. 더군다나 카펫에는 온갖 벌레가 기생한다. 아무래도 더 이상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침대는 이런 지옥 같은 바닥에서 벗어나는 영국인들의 탈출구와 같다. 끔찍할 만큼 차가운 바닥과 각종 벌레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카펫에서 우리를 구해준다. 따뜻한 공기가 위로 올라가니까 침대는 높을수록 좋다. 또한 침대는 우리 밤잠을 영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준다. 낮에는 소나 돼지, 그리고 개와 높이가 같은 바닥에서 보내지만 밤에 잠자는 동안만큼은 천사들과 조금 더 가까운 높은 곳에서 편안히 몸을 누일 수 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한국에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구입한 것 또한 침대였다. 오래된 빌라 꼭대기층의 작은 방이었는데 침대를 들여놓으니 꽉 찰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침대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짐이 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난방을 하면 온기는 바닥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겨울에 침대는 차가웠다. 또한 푹신한 매트리스가 내 요통의 원인이 아닌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1년 뒤 조금 더 큰 빌라로 이사 가게 되었고, 침대는 나와 함께 이사했지만 곧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고 다시 1년 후 또 이사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 침대는 버려졌다.

침대의 빈자리는 황토로 만들었다는 두툼한 매트가 차지했다. 엄청나게 무겁고 가끔씩 진흙과 같은 의심스러운 냄새가 났지만 놀라울 정도로 몸을 편하게 받쳐주었다. 나는 또한 가볍고 편안한 아동용 접는 놀이 매트를 모아 한 소대를 만들었다.

이제는 가족을 만나러 영국을 방문하는 일이 문제가 되었다. 한국의 딱딱한 매트는 척추가 중립이 될 수 있게 허리를 편안히 받쳐준다. 하지만 스프링으로 지지하는 영국의 푹신한 매트리스에 누우면 마치 짓눌린 해파리가 된 듯한 느낌이다. 카펫 바닥에서 자는 것도 시도해 보았지만 원인을 추측하고 싶지 않은 몹쓸 간지럼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영국에서 딱딱하다는 매트리스도 내게는 젤리 위에서 자는 듯한 느낌을 줬다.

어머니는 현재 살고 있는 집 안 전체를 카펫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나무 바닥으로 바꿨다. 누가 봐도 카펫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카펫이 사라진 후 침실 모습은 베네딕트 수녀원에서나 볼 수 있는 금욕적 감옥과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영화 다빈치코드에서 스스로를 채찍으로 때리며 고문하던 암살자 수도승만이 이런 방바닥에서 자는 것을 한 번쯤 고민해 볼 듯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제 영국에 갈 때마다 커다란 트렁크를 포기하고 기내용 트렁크와 작은 한국―바닥에서 잘 수 있게 해주는 소형 접는 매트―을 가져간다. 천사와 가까운 곳에서 자는 기쁨은 포기해야 하지만 최소한 나의 등과 허리만은 밤중에 천국을 누린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