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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n번방에 내 딸이?… 학부모들, 성교육 과외선생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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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이후 집집마다 초비상]

"내 아이 범죄에 노출될까 불안" 성교육 인기 강사 모시기 경쟁

관련 업체 "내달까지 예약 꽉 차"

인천 서구에 사는 학부모 남모(45)씨는 최근 중학교 2학년 딸로부터 "요즘 괴롭히는 남자가 있는데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딸이 건넨 휴대전화를 들여다본 남씨는 충격을 받았다. 모르는 남성이 딸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가방 사진을 보여달라" "학생증을 보여달라"는 요구에 이어 "치마만 살짝 올려서 뒷모습을 찍어달라"는 요구까지 담겨 있었다. 딸은 "게임 중 채팅으로 접근한 남성이 '게임 아이템을 살 수 있는 문화상품권 코드를 알려주겠다'고 말해 전화번호를 알려줬다"고 했다. 남씨는 딸의 휴대전화에서 해당 남성을 '차단' 설정했다. 그는 "애가 그저 게임이나 하겠거니 안심하고 있었던 내가 어리석었다"고 말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 성(性) 착취 영상을 찍어 이를 텔레그램에 공유한 'n번방' '박사방' 사건 이후, 학부모들에게 '성교육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성교육 콘텐츠가 부실하다는 평가가 잇따르면서, 성교육마저 고액(高額) 사교육 시장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사설 성교육 업체는 'n번방 특수'를 맞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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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딸을 가진 박모(40)씨는 "학교에서 진행되는 성교육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범죄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지능화하는데, 공교육 성범죄 예방 자료는 그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는 게 박씨 등 학부모들 판단이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양성평등원이 지난해 12월 배포한 39쪽 분량의 '초등학생 대상 디지털성범죄 예방교육 매뉴얼'에는 "친구 사진을 동의 없이 찍어 온라인에 올리면 안 된다" "성범죄에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지 함께 상상해보자"는 등 원론적인 지침만 적혀 있다. 가해자가 주로 어떤 경로로 접근하는지, 가해자의 요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학부모들은 사설 성교육 강의에 몰리고 있다. 강의가 주로 4~8명 소그룹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학부모끼리 모여 단체로 성교육 강의를 신청한다. 물론 딸 가진 부모들 걱정이 더 크다. 서울 강남에서 초등학교 5학년 딸을 키우는 김모(52)씨도 지난주 성교육 과외를 신청했다. 한 친구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애들 성교육 선착순 강의 예약에 성공했다. 같이 들을 사람?"이라는 공지를 올린 순간, 부리나케 손을 들었다. 김씨는 "요즘 인기 성교육 프로그램은 대학 수강신청처럼 '클릭 경쟁'을 해야 하는데, 나는 횡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형편이 나은 경우엔 아예 가정교사를 초빙하기도 한다. 남학생도 교육 대상이다. 수도권에 사는 정모(45)씨는 27일 중학생 두 아들을 위해 성교육 과외 선생님을 집으로 불렀다. 100분 수업료가 30만원이다. 정씨는 "무조건 '야동은 나쁘다'는 말을 해주기보다, 전문가를 통해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 관념과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저학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둔 서자영(43)씨는 "입학 선물로 휴대전화를 사주려 했는데 n번방 사건을 보고 나니 고민이 너무 크다"고 했다. 그는 지난주부터 동네 엄마들과 '디지털 성범죄 조기 예방 교육' 업체를 찾고 있다.

자연히 성교육 과외 업체는 호황이다. 한 인기 업체 관계자는 "하루 평균 100통 정도 오던 교육·상담 전화가 지난주부터는 300통에 육박한다"며 "코로나 바이러스로 3월 예약 취소 전화가 잇달아 '큰일이다' 싶었는데, n번방 사건이 터지면서 다음 달 예약이 순식간에 꽉 찼다"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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