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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제록스, HP 인수 포기… 글로벌 M&A 시장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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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새 시총 반토막 나면서
대출 통한 자금마련 여의치 않아
1분기 세계 M&A 7년만에 최저
기업들, 확장보다 현금확보 총력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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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이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도 꽁꽁 얼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월 31일(현지시간) 다국적 프린터·복사기 제조사 제록스가 미국의 PC 및 프린터 제조사 휴랫팩커드(HP) 인수를 포기했다고 전했다. 기업간 인수합병 불발이 어어지면서 올해 1·4분기 세계 M&A 규모는 7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경기침체에 따른 기업가치가 급락하고 인수합병 대신 현금 확보를 우선시하는 분위기 탓에 잇단 기업 인수합병 일정이 불발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인수합병을 위한 가격 협상이 어려운 점도 복병으로 떠올랐다.

■제록스, 적대적 M&A 포기

이날 제록스는 성명을 내고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보건 사태와 거시경제 및 시장 교란은 제록스가 HP 인수를 계속 추구하기에 좋지 않은 환경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제록스는 HP에 제시했던 인수안을 철회하는 한편 HP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한 위임장 싸움도 그만 두겠다고 선언했다. 같은날 HP와 제록스 주가 모두 이번 발표에도 불구하고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시가 총액이 79억달러 남짓했던 제록스는 디지털 시대 진입으로 수익 구조가 흔들리면서 지난해 11월 경쟁업체이자 규모가 4배나 큰 HP를 인수해 비용 절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두 회사의 지분을 모두 보유한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은 합병을 적극 지지했으며 제록스는 후지필름과 설립한 조인트벤처를 매각하고 대규모 대출을 추진해 자금 마련에 나섰다. 제록스는 우선 335억달러의 인수가액을 제시했으나 퇴짜를 맞았고 지난 2일에 금액을 350억달러(약 42조원)로 올린 뒤 일반 주주들과 접촉해 설득에 나섰으나 결국 뜻을 접게 됐다.

WSJ는 M&A 결렬의 원인으로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를 꼽으면서 제록스의 시가 총액이 약 5개월 사이 반토막으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격리가 확산되면서 일반 주주들과 접선도 어려워졌다. HP는 이달 25일 발표에서 무리하게 빚에 기대는 제록스의 접근 방식이 지금 같은 경제 환경에서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WSJ는 양사가 프린터라는 접점이 있긴 하지만 HP의 경우 PC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며 합병이 진행됐더라도 제록스의 의도처럼 비용 절감에 성공했을 지 확신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불확실성에 M&A 제안 말라붙어

다른 업계에서도 M&A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미 정유업체 마라톤페트롤리엄은 지난달 산하 주유소 브랜드 스피드웨이를 220억달러에 일본 업체에 넘긴다고 밝혔으나 이달 들어 계획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다국적 도료기업 액솔타도 미 도료업체 PPG와 사모펀드 클레이톤더빌리어 연합에 회사를 팔기 위해 협상을 시작했으나 3월 31일 발표에서 협상을 중단한다고 알렸다.

같은날 WSJ를 비롯한 외신들은 M&A 기피 현상이 범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 시장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국제 M&A 시장 규모는 5717억7000만달러(약 698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했으며 7년 만에 가장 낮았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도 미 시장조사업체 리피니티브를 인용해 같은 기간 미국과 유럽의 M&A 규모가 각각 51%씩 줄었고 다국적 M&A 규모 또한 17% 감소했다고 전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의 스티븐 바로노프 M&A 대표는 "최고경영자나 이사회의 투자심리, 자금조달원이나 주가 등 거의 모든 변수가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법무법인 킹앤드스팔딩의 제임스 울러리 M&A 대표는 "지금은 현금이 웃돈을 받는다"며 M&A를 추진하기에는 불확실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WSJ는 지난 5년 지속된 국제 증시 호황 가운데 3년은 M&A 호황을 동반했다며 시장이 지금처럼 경직되어 있다면, 올해가 호황 시기의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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