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탓에 공장은 멈추고, 비행기는 결항 되고··· 그래서 전 세계 석유 수요가 확 줄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 시국에 산유국들은 감산이 아닌 증산 전쟁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기름값은 그야말로 대폭락 중이죠. 안 그래도 코로나 19로 불이 난 세계 경제에 산유국들이 기름을 들이붓고 있는 것입니다. 때가 어느 땐데···산유국들은 대체 왜 지금 싸우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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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석유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선 싸움의 참가자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아, 기본적으로 알아 둘 게 있습니다. 이 싸움에 참여한 산유국은 총 3곳인데 셋 모두 국제 석유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게 목표입니다.
첫 번째 선수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참가번호 1번, 싸움을 시작한 러시아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는 석유를 더 많이 생산해 석유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죠.
참가번호 2번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사우디는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산, 그러니까 석유 생산을 줄여서 국제유가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1번과 2번은 OPEC+라는 기구 소속으로 회원국 간의 합의를 통해 석유 생산량을 조절해왔습니다. 말하자면 동맹관계였죠.
그리고 마지막 선수,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최근 셰일가스를 채굴하기 시작하면서 국제 에너지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습니다. 다만 셰일가스는 채굴에 드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 배럴 당 50달러 이상에 팔아야만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게 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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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1.
원래도 이들은 상대를 확실하게 꺾고 에너지 시장의 패권을 잡기 위해 호시탐탐 눈치를 봐왔는데, 이번에 먼저 칼을 뽑아든 건 러시아였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연장을 위한 개헌 찬반 투표를 앞두고 혹시 민심을 잃지 않을까 마음이 급해졌거든요. 그래서 지난 6일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석유 감산을 논의하는 OPEC+에서 되려 증산을 주장했습니다. 석유를 잔뜩 생산해서 국제 유가를 배럴 당 50달러 미만으로 낮출 수 있다면 미국의 셰일가스 기업들이 버티지 못하리라고 계산한 것입니다. 이 기회에 미국을 꺾을 수 있다면 에너지로 먹고사는 러시아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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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2.
러시아를 동맹국이라고 생각한 데다가, 수요 감소로 국제유가가 떨어진 탓에 감산을 주장하려던 사우디아라비아는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전부터 러시아에 좀 감정이 상한 상태였습니다. 맨날 같이 감산해서 석유 가격을 높이자고 해놓고, 러시아는 계속 석유를 많이 생산해서 높아진 석유 가격의 이득을 오롯이 누렸거든요. 게다가 왕위를 노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은 이참에 러시아와 제대로 맞붙어 산유국 패권을 장악해야겠다는 생각에 돌연 증산을 선언했습니다. 러시아에 역습을 가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냥 증산도 아니고 지금 사우디가 생산해낼 수 있는 석유량의 최대한을 생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와 사우디의 증산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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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3.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증산 경쟁은 곧장 국제 유가에 반영됐습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탓에 석유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공급까지 늘어나니 가격은 폭락했죠. 배럴 당 60달러 수준을 유지하던 국제 유가는 현재 20~30달러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30% 이상 떨어진 건데 이건 걸프전 이후 최대 낙폭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러시아가 원하던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국제 유가가 배럴 당 50달러 선 밑으로 떨어지면서 미국의 셰일가스 기업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실제로 지난 9일 미국 증시가 하루 만에 6~7%가 폭락한 때가 있었는데 이때 특히 날벼락을 맞은 주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셰일 개발 기업 파이오니어 내추럴리소스와 다이아몬드백에너지인데 무려 37%, 45%가 떨어지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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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4.
이제 미국 역시 사우디와 러시아에 가만히 손 놓고 당할 수만은 없게 됐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기름값을 잡지 못할 경우 재선이 불투명해진 상황이죠.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친하게 지내던 모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에게 전화를 해서 얘기를 해봤는데, 잘 안 먹힌 것 같습니다. 사우디가 여전히 하루 1,000만 배럴 수준의 석유를 생산하고 있거든요. 두 번째 카드로 꺼낸 게 전략비축유 매입입니다. 미국은 석유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국가 차원에서 적정 수준의 석유를 비축해둡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비축유 매입을 통해 국제 유가를 조금이라도 끌어올려 보려 한 것 같은데, 이것조차도 유가를 끌어올리긴 역부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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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5.
그래서 이 전쟁의 승자는 누구냐고요? 없습니다. 사실 석유를 많이 생산해서 계속 낮은 가격을 유지하는 건 산유국 당사자들이 가장 피해를 보는 일이거든요. 생산 능력을 최대치로 이용하면 채굴에 드는 비용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석유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는 ‘박리다매’가 아닌 ‘박리소매’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제 석유 시장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겠다는 정치적 욕심 때문에 하면 할수록 모두가 손해를 보는 ‘치킨게임’을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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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이 세 나라의 싸움이 비단 셋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 증시가 요동치면 전 세계 증시가 함께 요동치거든요. 실제로 지난 9일 뉴욕 증권가의 블랙먼데이는 전 세계의 블랙먼데이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3대 산유국에 속하지 않지만 석유 관련 산업을 하는 다른 국가들도 타격을 입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석유화학 산업이 국가기간산업 중 하나라 더 타격이 큽니다. 기름값이 싸면 좋은 거 아니냐고요? 오히려 비싸게 사놓았던 재고로 만든 제품을 싼값에 팔아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습니다. 중동에서 한국까지 석유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두 달 가량입니다. 100원에 산 기름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20원이 돼 있으니 가만히 앉아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세 나라의 다툼 탓에 전 세계 경제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당분간은 이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저유가 기조가 최소한 올 상반기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보고 있거든요. 저유가 상황이 장기화할 때를 대비한 정부 차원의 계획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현정기자 jnghnji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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