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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불륜 드라마’ 피가 거꾸로 솟지만 끊을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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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불륜 드라마’ 생명력]

‘닥터 포스터’ 원작 ‘부부의 세계’

전개·상황·대사 등 원작과 흡사

당사자뿐 아닌 주변인까지 엮어

1회부터 충격적인 전개로 화제

꾸준한 드라마 단골 소재 ‘불륜’

막장에서 심리 스릴러까지 진화

시대 변화 맞물려 반응도 달라져

‘만약 나라면?’ 현실적 토론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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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휴대전화 속 젊은 여자의 사진. 그리고 그 옆에 자리한 내 친구들….

3월27일 시작한 <제이티비시>(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1회 마지막 장면은 센세이셔널했다. 나만 빼고 다 아는 사실. 그들 사이에서 2년 동안 남편의 옆자리는 내가 아닌 불륜녀의 것이었다. 모두 작당해 조강지처를 내몰려는 것일까? 지금껏 본 적 없는 관계 설정에 드라마는 1회 시청률 6.3%(닐슨코리아 집계)로, <제이티비시> 역대 드라마 첫 방송 기준 최고 성적을 올리며 화제를 모았다. 이어 28일 2회 방송은 10%를 넘어섰다.

<부부의 세계>는 영국 <비비시>(BBC)가 2015년과 2017년에 각각 시즌1(5부작)과 시즌2(5부작)를 방영한 <닥터 포스터>가 원작이다. 불륜 자체보다 이를 둘러싼 관계와 심리의 변화에 집중하며 평균 시청자 수 951만명을 기록했다. 시즌1·2 모두 영국의 공신력 있는 시상식인 ‘내셔널 텔레비전 어워드’에서 그해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로 뽑혔다. 영국 온라인 매체 <텔레그래프>는 시즌1 방영 당시 “손톱을 물어뜯게 할 만큼 흥미진진한 드라마”라며 작품이 주는 긴장감을 호평했다.

2회까지 방송된 <부부의 세계>는 원작 <닥터 포스터>와 상당 부분 흡사하다. 전개도, 상황도, 심지어 대사까지 비슷하다. 불륜녀의 직업, 불륜녀가 임신 사실을 알리려고 의도적으로 지선우(김희애)를 찾아가는 장면 등 소소한 설정이 조금 다를 뿐이다. <부부의 세계> 쪽은 <한겨레>에 “원작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진행되는지, 시즌1과 시즌2를 합친 내용을 한꺼번에 선보이는지 등 리메이크 범위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고 함구했지만, 1·2회를 기준으로 보면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부부의 세계> 쪽은 “결말도 원작을 따를 것인지 여부도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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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비슷하다는 전제로 보면, <부부의 세계>는 불륜드라마의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입증한다. ‘불륜’은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한겨레>가 집계해보니 2009년 한 해 동안 지상파 3사가 방영한 드라마의 60%가 불륜을 소재로 했다. 2019년은 40% 정도로 줄었지만 파급력은 더 커졌다. 아침·일일·주말드라마뿐 아니라 <99억의 여자> <브이아이피>(VIP) 등 미니시리즈에서도 불륜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장치로 등장했다. 엄마가 딸을 시켜 재혼한 전남편을 유혹하도록 계략을 꾸미거나(<바람 불어 좋은 날>), 점 하나 찍고 전혀 다른 사람이 돼 남편에게 복수하는(<아내의 유혹>) 등 막장으로 치닫던 전개에다 최근엔 ‘불륜녀’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심어 심리 스릴러(<브이아이피>) 느낌을 주는 식으로 다양한 변주가 이뤄졌다.

<부부의 세계>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불륜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논리로 바라보지 않고 친구, 불륜녀의 부모, 아이 등 ‘불륜’이라는 관계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에 집중한다. 2회부터는 “곧 정리한다고 해서 비밀을 지켜줬다”는 친구 등 각자 저마다의 사정으로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맞고 사는 다른 여자에게는 “당장 헤어지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 일이 되니 그러지 못하는 심리, 친구가 애처로우면서도 한번 당해보라는 악한 마음이 더해지는 등 현실적인 감정의 민낯이 드러난다. 드라마를 쓴 원작자 마이크 바틀릿은 시즌1 당시 영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사랑’이라는 약한 고리에서 기인하는 관계, 그리고 ‘부부’라는 숭고한 인연의 속성 등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메데이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메데이아는 남편 이아손의 성공에 기여했지만 버림받은 배신감에 두 자녀를 죽여 이아손에게 상실감과 고통을 안긴 복수의 화신이다.

그래서 <닥터 포스터> 방영 당시 영국 현지에서는 끊임없는 토론이 이뤄졌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남자들 사이에서도 이 드라마는 화제다.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한 남자 방송 관계자는 “불륜의 핵심은 속이는 것인데, 속이지 않으면 괜찮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며 “드라마에서도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주겠다고 묻는 아내 앞에서 남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진정한 친구라면 어떻게 해야 했는가에 대해 계속 토론하게 한다”고 말했다. 원작의 결과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권선징악은 아니다. 그 결말이 한국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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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는 불륜을 관계의 문제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최근 달라진 흐름을 반영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불륜은 인간 감정의 민낯을 보여주는 소재라는 점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며 “어떤 사람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해진 시대와 만나 새롭게 조명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는 영국에선 2015년에 방영됐지만, 한국에선 지금 이 시점에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방송1>에서 2016년 원작 시즌1을, 2017년에 시즌2를 내보냈을 때와는 반응이 완전히 다르다. <부부의 세계>가 나간 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오티티)인 웨이브에서 <닥터 포스터>가 역주행하며 미드·영드 순위 4위에 오르기도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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