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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n번방 피해자 “돈·선물 준다기에 주소 알려줘…지옥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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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가 털어놓은 피해 전말

뉴스 보던 엄마 “내 딸 아니라 다행”

차마 말 못하고 혼자서 속앓이

“미끼 문 게 잘못” 댓글에 상처

가해자 출소 뒤 복수할까 겁나요

“어차피 그놈이 제 얼굴, 집 주소 다 알고 있잖아요. 감옥 간다고 해도 금방 나올 텐데 저한테 복수할까 봐… 그게 아직도 무서워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피해자 A씨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조주빈(25) 등 ‘n번방’ 사건의 범인들이 속속 검거되고 있지만, 미성년자인 그는 피해 사실조차 가족은 물론 친구에게도 말을 못했다. 최근 중앙일보와 만난 A씨는 “올해 초 관련 기사를 보고서야 내가 당한 피해가 ‘n번방 사건’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그는 한 모바일 채팅앱을 통해 가해자를 만났다. 누군가 “월 400만원을 줄테니 ‘스폰 알바’ 해볼 생각 없냐”고 말을 걸어왔다. 어떤 아르바이트냐고 묻자 “오프라인 만남은 하지 않는다. 메신저로 대화하는 것처럼 이야기만 하면 되고, 내가 원하는 영상과 사진을 가끔 보내주면 된다”며 안심시켰다. 이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돈을 보낼테니 이름과 계좌번호를 알려달라”, “선물을 보내줄 테니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반신반의하던 A씨는 결제명세서, 배송확인서까지 제시하는 치밀한 수법에 속았다. 돈이나 선물은 오지 않았다. 모든 게 협박용 개인정보 빼내기의 절차였다.

A씨는 “온갖 협박에도 주변에 말도 못하는 ‘텔레그램 지옥’은 그렇게 시작됐다”고 기억했다. “처음엔 얼굴이 나오지 않은 영상, 다음엔 얼굴이 나온 영상을 보내라고 했다. 갈수록 요구 수위가 높아졌다. 교복을 입고 영상을 찍어라, 학교 화장실에서 찍어 보내라는 식으로...가학적 지시도 했다.”

가해자는 영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러 번이고 다시 찍어 보내라고 했다. 보름 동안 찍어 보낸 영상만 80개. A씨가 거부 의사를 밝히자 “기어오르지 말라. 아니면 영상을 유포한다”고 협박했다. 겁먹은 A씨는 학교 수업 시간에도 휴대전화를 내지 않고 몰래 갖고 있었다고 한다. 가해자의 연락에 답장을 못하면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가해자가 ‘이제 모을 거 다 모았네. 영상 유포할게’라는 말을 남기고 텔레그램방을 나갔다. 그는 “이후 수개월간 두려움에 떨었다”며 “분명 내가 피해자인데도 영상을 보낸 건 나니까 내 잘못 아닌가라는 죄책감에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경찰 신고도, 학교 상담센터에 가는 것도, 부모에게 알리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A씨는 “어머니가 얼마 전 함께 n번방 관련 뉴스를 보다가 ‘내 딸이 피해자가 아니라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는 걸 봤기에 부모님께도 차마 입을 열수 없었다”고 말했다.

n번방 기사에 붙는 피해자 비난 댓글은 2차 가해다. A씨는 “‘가해자는 떡밥을 푼 것이고 그 미끼를 문 게 잘못’이라는 댓글은 잊히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A씨는 엄중 처벌을 원했다. 그는 “솔직히 사형, 안 되면 감옥에라도 평생 가두길 바란다”며 “하지만 어차피 몇 년 살다 나올 것이고 내 정보를 다 갖고 있어서 복수하러 올까 겁난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게임에서도 미성년자에게 ‘기프티콘 줄 테니 벗은 사진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걸 봤다”며 미성년자들이 유사 범죄의 피해자가 될 위험성은 여전하다고도 했다.

김지아·최연수·남궁민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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