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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김준의 맛과 섬] [15] 제주 신흥리 방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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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시작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국민은 일상을 멈춘 채 봄을 맞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재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돌탑을 쌓아 들어오는 화를 막고 나가는 복을 잡았다. 화와 복은 가장 허한 길로 들고 난다고 믿었다. 그 길목으로 드는 질병, 살(煞), 호환(虎患), 화기(火氣) 등 화를 막고자 했다. 이런 돌탑은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도, 강원도 그리고 제주도에도 분포한다. 지역마다 이름이 달라 전라도에서는 조탑(조산), 충청도에서는 수구막이, 제주도에서는 ‘방사(防邪)탑’ 또는 거욱대라고도 불렸다〈사진〉.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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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은 대부분 산간마을에 분포하는데 제주에는 바닷가에 많고, 특히 조천읍 신흥리에는 아예 바다(조간대)에 있다. 신흥리는 마을 주변이 온통 돌밭이고 북쪽이 바다로 터져 있다.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내포라 하기도 했다. 이웃 조천읍이나 함덕리보다 늦게 형성돼 신흥리로 불렸다.

무술년(1898년) 어느 봄날, 마을 지나던 노인이 바다에 탑을 쌓아야 마을이 평안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은 돌탑을 쌓기로 결정했다. 제주에서는 방사탑을 쌓는 일에는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해 정성을 다한다. 어린아이도 작은 돌멩이라도 보태야 한다. 보통 방사탑을 쌓을 때 먼저 솥과 밥주걱을 묻고 마을의 최고 연장자가 첫 돌을 놓는다. 밥주걱은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기를, 솥은 뜨거운 불을 견뎌내듯 재난을 이겨내는 것을 의미한다. 또 혹시 풍수를 잘못 건드려 살을 맞을 수 있어 최고 연장자가 모든 액을 막는 일에 나섰다고 한다. 큰 돌로 단을 쌓고 작은 돌을 원추형으로 쌓고 위에 돌하르방이나 새 모양의 돌을 얹었다. 신흥리는 탑을 쌓은 뒤로 마을 주민들의 살림살이도 좋아졌고 액도 사라졌다. 처음에 5기의 탑을 쌓았지만 지금까지 남은 것은 ‘큰개탑(음탑)’과 ‘오다리탑’ 2기이다. 오다리탑은 상부에 세운 돌이 양근을 닮아 양탑, 큰개탑은 음탑이라고도 한다. 제주에는 신흥리 방사탑을 포함해 모두 17기가 제주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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