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8 (수)

[조연경의행복줍기] 희망을 만들기 위한 기간 15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일보

운길산역에서 가까운 ‘물의 정원’은 아름다운 북한강변 자전거길에 있다.

붉은 바다처럼 장관을 이루는 봄의 양귀비꽃과 가을의 황화 코스모스는 6월이면 남프랑스의 언덕을 뒤덮는 보라색 라벤더처럼 아주 낭만적이다.

그러나 햇빛에 반짝이는 강과 꽃을 바라보며 달리는 자전거 여정은 결코 유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불안하다.

그곳은 자전거길 상행선 하행선과 산책로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지만 일렬횡대로 걸으며 자전거길을 산책로로 만드는 사람도 있고, 목줄을 매지 않은 개도 있고, 사진을 찍기 위해 아기가 탄 유모차를 길 한가운데 세워 놓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소리를 지른다. “자전거 지나갑니다.”

코로나19가 쉽게 잡히지 않는 불길처럼 번질 때 문득 그 무질서한 자전거길이 생각났다. ‘나만 편하면 돼.’ 그런 이기심 가득한 마음이라면 코로나19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정부는 15일 동안 외출을 자제하고 모임, 행사, 여행을 가급적 연기하거나 취소해 달라고 당부했다. 바이러스 잠복기 14일을 고려해 15일간의 집중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개하면 현재의 위험 수준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강제성이 없는 권고이지만 내 주위 사람 대부분이 받아들였다. 어쩌면 희망을 만들 수 있는 기간이 될지도 모르기에.

답답함을 견디고, 활짝 핀 봄꽃도 외면하고, 특히 젊은 엄마들은 밖에 나가고 싶어하는 어린 자녀를 달래며 힘들게 버텼다. 자가격리 지침을 어기고 멋대로 돌아다녔거나 증세가 나타났는데도 마스크조차 쓰지 않고 여행을 다닌 정말 기막힌 사람들이 연일 뉴스에 등장해서 분노를 일으켰지만 그래도 희망 만들기를 멈출 수 없었다.

15일 동안 집에 있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카카오톡으로 많은 글이 오고 갔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받은 글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름다운 메시지’다. 일부를 발췌한다.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고,/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우리 모두는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말입니다.../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

어쩌면 이런 글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카카오톡으로 자주 오고 가는 것 같다.

우리는 함께 견디고 함께 이겨내고 함께 살아야 이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고통스럽지만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살고 있다.

그동안 내 인생 어디쯤에서 이토록 다른 사람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진 일이 있었던가?

조연경 드라마 작가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