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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기자칼럼]꿈꿀 수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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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누워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열다섯 살이라고 했는데 예닐곱 살이나 됐을까 싶게 작은 체구였다. 조막만 한 얼굴의 절반 이상은 인공호흡기가 덮고 있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출퇴근길에만 마스크를 써도 코 옆에 자국이 생기는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아이는 이렇게 24시간 호흡기를 끼고 생활하고 있다.

경향신문

골형성 부전증과 러셀실버 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는 3년 전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만난 건 온라인개학 이후 교육격차가 더 커질 취약계층의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장애학생에게 절실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아이는 3년째 화상수업을 듣고 있지만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방문교육을 통해서라도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했고, 친구들이 소풍을 갈 때 근처에서라도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학교는 지침과 안전을 이유로 그 어떤 대면접촉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고는 책 읽기나 카카오톡 메신저 등이다. 그날도 아이는 책을 읽고 있었다. 누운 채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 세워져 있는 책을 읽어내려가는 식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우리 아이도 꿈이 있어요. 누워 있고 아픈 아이라고 꿈이 없겠어요?”라고 말했다.

두어 달 전에 만났던 50대 어머니가 떠올랐다. 경기도의 한 반지하에 살고 있는 한부모가정으로, 아이 다섯 명을 낳아 키우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습기로 눅눅한데 3~4년 전 폭우로 하수구가 역류하면서 부엌 장판 등은 볼썽사납게 우글거렸다. 침수로 물이 스며들어, 썩어 무너져내린 장롱을 버리고 플라스틱 서랍장을 구해왔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던 분이었다.

취재 말미에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직까지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한껏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는 “꿈?”이라며 낯선 길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처럼 망설였다. 그러고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라며 멋쩍게 웃었다. 대신 “고등학생인 큰아들이 졸업하면 군대를 바로 갔다와 돈을 벌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두 만남이 머릿속에서 겹쳐진 것은 우리 사회가 과연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곳인가라는 물음에서다.

꿈은 앞으로 언젠가는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희망을 담는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작더라도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동기로 작용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꿈은 곧 앞날을 뜻한다. 그런데 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살아갈 날이 있다고 항변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미처 앞날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고된 삶을 고백했다. 아프다고, 가난하다고 꿈이 없겠는가.

아이의 꿈은 작가라고 했다.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느껴야 이룰 수 있는 꿈이다. 띄엄띄엄 학교에 가더라도 세상과 연대하고 어울리며 살고 싶은 이유다. 반지하에 사는 어머니도, 그의 아들도 꿈꾸는 미래가 있을 것이다. 생계에 치여 미뤄두거나 잊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이들이 품은 꿈을 지켜줄 수 있을까. 꿈꾸는 일이 꿈같은 일이 된 사회, 2020년 우리의 모습이다.

이성희 |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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