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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샌더스, 진보 부활시키고 하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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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포기

“코로나19 위기에서 불리한 경선 지속할 수 없다”

전국민 의료보험, 공립학교 무상교육 등 진보 되살려

대의원 확보해 공약 관철…바이든, 샌더스 공약 포용 약속


한겨레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이 8일(현지시각) 자신의 지역구인 버몬트주 벌링턴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중도사퇴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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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26일 미국 버몬트주 벌링턴에서 무소속 상원의원인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가끔씩 등장하는 엉뚱한 군소 후보 취급을 받았다. 5년이 지난 지금 샌더스는 미국 대선을 두차례나 흔들면서 미국 진보운동과 의제를 부활시키고, 미국 정치를 혁신하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이제 그 여정에서 하차했다.

샌더스 상원의원은 8일(현지시각) 생방송 온라인 중계를 통해 “이 어려운 시기에 나의 양심으로는 이길 수 없고,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일을 방해할 선거운동을 계속할 수 없다”며 “이 선거운동은 끝나지만, 우리의 운동은 그렇지 않다”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뒤집는 것이 불가능해진 경선 판세와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 앞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손잡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샌더스의 대선 여정은 끝났지만, 그가 대선 출마로 추동한 ‘운동’과 그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이든 역시 “버니는 정치에서 드문 일을 해냈다. 그는 단순히 정치적 선거운동을 한 게 아니라 운동(무브먼트)을 만들어냈다”고 샌더스의 성과를 인정했다.

샌더스는 1960년대 민권운동에 동참한 이후 미국 진보운동에서 잠시도 이탈하지 않았다. 1981년 버몬트 벌링턴 시장에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민주-공화 양당이 지배하는 미국 정치에서 언제나 이단아였다. 하지만 풀뿌리 정치운동으로 하원의원 8차례, 상원의원 3차례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세금 인상을 포기하고 사회복지를 축소하는 정책을 채택하자 직접 대선에 뛰어들었다.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 경선은 물론이고 본선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샌더스는 출마 선언에서 “미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남녀들이, 억만장자들에 의해 정치 과정이 소유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고 선언했다. ‘찻잔 속 태풍’도 되지 않으리라 여겨졌던 샌더스는 클린턴이라는 막강한 기성 주류와 대비되며, 곧 돌풍을 만들어냈다.

그는 23개 경선에서 승리하며 클린턴을 위협했다. 그러나 ‘공작’도 서슴지 않는 민주당 주류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했다. 클린턴이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 중 하나도 샌더스의 패배에 실망한 일부 유권자층이 트럼프 쪽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도 샌더스는 3월3일 14개 주 등이 포함된 ‘슈퍼화요일’ 경선 전까지만 해도 승리가 유력했다. 그러나 그의 선전은 역설적으로 민주당 내 기성 세력과 온건 지지층의 반대와 결속을 끌어내는 동력이 됐다. 피트 부티지지 후보 등 유력 중도온건파 후보들이 바이든 지지를 표명하며 사퇴해 ‘바이든 대세’ 분위기를 만들었다.

샌더스의 도전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를 통해 미국의 진보진영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새롭게 정비되고 세력을 확보했다. 지지층을 더욱 두텁게 할 의제도 이끌어냈다. 샌더스는 “우리의 운동은 정의를 위한 싸움으로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별 경선의 투표용지에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채 대의원을 계속 확보해가겠다고 밝혔다. 전국민 공공의료보험, 공립대 무상교육 등 진보적 의제들에 대한 영향력을 민주당 안에서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샌더스는 또 두차례의 대선 도전을 통해 풀뿌리 진보운동을 일궈냈다. 부자들과 기업이 아니라, 지지자들의 푼돈을 모아 누구보다도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입증했다. 그를 통해 2018년 선거에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진보적인 젊은 의원들이 의회에 진출했다. 샌더스는 “우리는 이념적인 싸움에서뿐만 아니라 세대 차원에서도 이기고 있다”며 “이 나라의 미래는 우리의 생각에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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