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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그림 책]반려동물로 살던 ‘기후난민’ 북극곰들, 왜 갑자기 사람 곁을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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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번 곰

지경애 글·그림

다림 | 44쪽 | 1만2000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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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늘 어렵다. 갈비뼈를 다 드러내 주변의 얼음과 바다가 아니었다면 늑대와 구분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헐벗은 북극곰의 사진과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하얗고 보송보송한 북극곰 사이의 간극은 좀체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경애 작가의 그림책 <30번 곰>은 지구온난화로 멸종위기에 놓인 북극곰이란 다소 무겁고 심각할 수 있는 주제를 따스한 그림체로 친근하게 전달한다. 그림책의 첫 장면은 빙하가 모두 녹아버린 북극에서 헤엄치는 북극곰들의 모습이다. 오갈 데가 없어진 북극곰들은 사람들에게 서툰 글씨로 편지를 보낸다. 반려동물로 자신들을 받아들여달라는 부탁이다.

지구온난화로 봄꽃이 핀 겨울날, 북극곰들은 도시로 온다. 곰들은 저마다 번호표를 받고 자신을 선택해줄 사람들을 기다린다. 곰들이 무대에 올라 선택을 받는 과정은 영상으로 생중계된다. 북극곰들 가운데 처음으로 ‘30번 곰’이 선택을 받는 날, 실시간 검색어 1위에 ‘#기후난민곰’이 오른다.

경향신문

이 책은 ‘30번 곰’의 이야기다. 이름도 없이 번호로 존재하는 30번 곰은 다솜이란 아이에게 선택돼 도심 아파트에서 함께 살게 된다. 북극곰을 위한 전용 냉장고가 불티나듯 팔리고, 사람들과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된다. 펫숍에는 아기 북극곰이 진열되어 팔린다.

하지만 북극곰과 함께 사는 일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30번 곰의 덩치가 두 배로 커지자 아랫집에선 층간소음으로 항의를 하고, 한때 환영과 관심의 대상이던 북극곰들은 ‘골칫덩이’가 된다. 싫증난 사람들이 유기한 북극곰들은 사회적 문제가 된다. TV에선 “버려진 북극곰들 도시 곳곳에서 시민들 위협”이란 뉴스가 나온다.

다솜이와 함께하는 나날은 따스하고 행복했지만, 이 도시에 30번 곰이 머물 수 있는 자리는 없어져버렸다. 무척 더웠던 어느 밤, 30번 곰은 하얀 눈벌판에 서 있는 꿈을 꾼다. 그리고 홀연히 사라진다. 30번 곰뿐 아니라 도시의 북극곰 모두가 모습을 감춘다. 북극곰 대신 버려진 냉장고들이 길에 넘친다.

2015년 <담>으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탄 지경애 작가는 지구온난화와 반려동물 문제를 한데 엮어 따스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유행을 타고 인기를 얻던 반려동물들이 싫증이 나면 손쉽게 버려지는 문제, 지구온난화로 오갈 데 없어진 북극곰의 문제를 함께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30번 곰이 사라지자 모든 북극곰이 함께 자취를 감춘 것처럼, 북극곰들은 어느날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져버릴 수 있다. 그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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