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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코로나19와 파란 사슴…중국에 신뢰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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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코로나19 환자 통계 논란·루이싱 회계 부정 사태 '닮은꼴'

G2 부상해 세계 영향력 키우려는 중국, 책임감도 그만큼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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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루이싱커피 매장
[EPA=연합뉴스]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의 '파란 사슴'이 세계 자본시장의 심장부인 뉴욕 월스트리트를 한바탕 뒤흔들었다.

중국에서 '초록 인어' 스타벅스를 잡겠다면서 급속히 몸집을 키운 중국 루이싱커피가 지난 2일(현지시간) 수천억 원의 매출을 부풀렸다고 자백해 6조원이 넘는 시총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것이다.

루이싱커피 로고는 파란 배경 속 사슴을 형상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스타벅스와 루이싱커피의 중국 시장 혈투를 '초록 인어'와 '파란 사슴'의 대결이라고 불러왔다.

루이싱커피가 밝힌 회계 부정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최고운영책임자(COO) 류젠(劉劍)과 일부 직원이 거래처와 짜고 거짓 거래를 일으켜 최소 22억 위안(약 3천8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조사가 초기 단계여서 자세한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부정 회계 주도 세력이 단순히 매출을 부풀리는 수준을 넘어 거액을 빼돌려 착복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스타트업으로 주목받던 루이싱커피의 회계 부정 스캔들은 공교롭게도 전 세계를 위협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의 신뢰성 문제가 크게 불거진 상황에서 터졌다.

시장이 루이싱커피를 바라보는 것처럼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제사회는 중국의 신뢰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한 새 병의 확산 상황을 축소·은폐함으로써 세계가 새 질병을 더 빨리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잃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널리 알린 우한 의사 리원량(李文亮·1986∼2020)이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공안에 끌려가 반성문을 쓰는 치욕적인 처벌을 받은 것은 중국의 코로나19 초기 대응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회자한다.

코로나19 대처와 관련해 중국을 둘러싼 신뢰의 문제는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당장 중국 땅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부터가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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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환자 옮기는 우한 의료진
[신화=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통계는 있기는 하다. 9일까지 누적 확진 환자는 총 8만1천907명, 누적 사망자는 3천336명이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서조차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이들이 많다.

지난 1월 23일 코로나19 사태의 진원지인 우한이 전격 봉쇄된 직후 도시의 의료 체계는 붕괴했다.

오랫동안 환자 다수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의료 체계 바깥에서 숨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국제관례와 달리 중국이 자국의 필요에 따라 기준을 이리저리 자주 바꾼 것도 통계 진실성 논란을 키우는 요인이다.

핵산 검사 결과와 관계없이 임상 진단 병례를 코로나19 확진 환자 통계에 추가하면서 지난 2월 12일 중국의 하루 확진자는 무려 1만5천명 넘게 폭증하기도 했다. 회계에 빗대보면 부실 자산을 한꺼번에 털어 반영하는 '빅 배스'(Big Bath)와 다름없는 조처다.

최근에는 '무증상 감염자'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라 확진 검사가 양성으로 나오면 모두 확진자로 분류한다.

그런데 유독 중국은 폐렴 등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확진자로 분류하지 않고 그간 이 수치도 비밀에 부쳐왔다.

홍콩 언론의 폭로로 누적 무증상 감염자가 4만명이 넘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정부는 그제야 현재 격리된 무증상 감염자 수, 일일 신규 무증상 감염자 수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지금껏 총 몇 명의 무증상 감염자가 발생했는지 누적 숫자를 공개하지 않는다. 이런 탓에 중국의 코로나19 환자 규모를 다른 나라 환자 규모와 직접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무증상 감염자를 둘러싼 중국 당국의 태도도 오락가락이다.

처음에는 무증상 감염자가 다른 이를 감염시킬 가능성이 작다고 주장하다가 우한 봉쇄 해제를 계기로 무증상 감염자 우려가 증폭되자 중앙정부가 나서 무증상 감염자의 코로나19 전파 가능성을 인정하고 무증상 감염자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신뢰의 문제는 중국 내부에서도 존재한다.

공식 통계상으로는 최근 중국 대부분 성(省)급 행정구역에서 외부 유입 환자를 빼면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거의 없다.

하지만 각 지방정부가 상부의 문책이 두려워해 신규 환자 발견 업무에 미온적이거나 심지어 환자가 있는데도 없다고 거짓 보고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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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서 철수하는 중국 지린대 의료진
[EPA=연합뉴스]



중앙 코로나19 영도소조는 우한 봉쇄 해제를 하루 앞둔 지난 7일 리커창(李克强) 총리 주재로 회의를 열고 확진 및 의심 환자를 발견해 적기에 보고하고 조치해야 한다면서 절대로 거짓 보고(瞞報)와 누락 보고(漏報)를 허용치 않겠다고 강조했다.

거짓 보고, 누락 보고 엄단 방침이 되풀이돼 강조되는 것은 중국 중앙 역시 정책을 집행하는 일선의 지방정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경직된 공산주의 관료 사회에서 거짓·누락 보고는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전 국가주석 시절 이뤄진 대약진 운동 때 중국의 각 지방은 식량 생산이 초과 달성됐다는 거짓 보고를 중앙에 올렸다.

허위 정보를 바탕으로 추진된 대약진 운동은 식량 생산의 근거지인 농촌을 피폐화시켜 수천만 명이 아사하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또 코로나19 확산 초기 자국민 입국 제한에 거칠게 항의하던 중국이 거꾸로 '외부 유입'을 막는다면서 자국 국경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것을 두고도 국제사회에서 뒷말이 많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미국 등 일부 국가가 중국을 오가는 항공 노선 운항을 중단하고, 중국발 외국인 입국을 제한하자 중국 정부는 이에 강력히 항의한 바 있다.

하지만 자국 내 코로나19 통제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거꾸로 코로나19가 대유행하자 중국은 이번엔 태도를 완전히 반대로 바꿔 지난달 28일부터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중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민낯을 보여준 중국의 행동은 후대에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중국이 이미 미국과 실질적으로 패권을 다투는 양대 강국(G2)으로 성장해 세계에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시작돼 세계로 확산 중인 코로나19 사태나 루이싱커피 스캔들은 중국의 신뢰 부족 문제가 더는 중국 내부에서 끝나지 않고 세계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제사회는 중국에 커진 영향력만큼이나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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