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미국 흑인 사망

조깅하던 흑인을 사살한 백인들은 왜 사법처리 안됐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미 조지아주 부자, 조깅하던 흑인 청년 쫒아가 사살

검사들은 용의자와 개인적 인연 내세워 사건 담당 포기

검·경은 ‘시민체포법’으로 용의자의 정당방위 인정

NYT 폭로 보도에 여론 악화되자, 주정부 나서 체포


한겨레

지난 2월23일 미국 조지아 브런스윅에서 조깅을 하던 흑인 청년 아머드 아버리가 자신을 추적해온 맥마이클 부자에 의해 피살되는 장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깅하던 흑인 청년을 사살한 백인 부자는 왜 두달 넘게 아무런 사법 처리도 받지않았나?

지난 2월 미국 조지아 주에서 조깅을 하다 그레고리 맥마이클(64)과 그의 아들 트래비스(34)의 총격을 받고 숨진 흑인 청년 아머드 아버리(25) 사건이 미국에서 큰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다시 기승을 부리는 인종주의뿐만 아니라 이해하기 힘든 사법 절차가 뒤섞여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맥마이클 부자는 사법 처리조차 받지 않고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두 달이 지나서야 <뉴욕타임스> 보도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비로소 체포됐다. 그동안 맥마이클 부자는 정당방위를 주장했고, 담당 검사들은 자신들과 맥마이클 부자와의 ‘개인적 인연’을 이유로 사건 담당을 포기해왔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맥마이클 부자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뤄지지 않았던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

■ 사건의 발단 지난 2월23일 오후 아버리는 조지아 주의 해변도시 브런스윅의 사틸라 쇼어스 마을에서 조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건축 중인 한 집터에 들어가 구경한 뒤 조깅을 계속했다. 이 집터의 이웃에 사는 맥마이클 부자는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하고는 트럭을 타고 아버리를 추적했다. 이들은 아버리에게 “멈춰라, 할 말이 있다”고 제지하다가, 곧 총을 발사했다. 아버리는 세 발의 총탄을 맞고는 즉사했다.

사건 뒤 맥마이클 부자는 경찰에 최근 마을에 몇차례의 침입 사건이 있었고, 아버리가 그 용의자를 닮아 추적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버리가 아들 트래비스를 공격하려고 하는 바람에, 정당방위로 총을 쐈다고도 주장했다. 당시 사건 현장을 찍은 동영상을 보면, 맥마이클 부자는 트럭에서 내려 아버리를 제지하려고 실랑이하다가 즉각 총을 발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마을에서 최근 신고된 침입 사건은 없었다. 아버리는 비무장 상태였고, 사건 당시 알코올이나 마약을 복용하지도 않았다.

사건 처리 지연 이 사건에 대한 사법 처리는 비합리적으로 지연됐다. 담당 검사들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최초 2명의 검사는 아버지 맥마이클 그레고리와 직업적 인연이 있다며, 이 사건을 담당하지 않겠다고 했다. 용의자들과 인연이 있어서 공정한 처리를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사건 수사에서 ‘제척’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맥마이클 부자는 체포되지도 않으면서 사법 처리가 지연되고, 사건은 유야무야 상태가 됐다.

용의자인 아버지 그레고리는 조지아 주 경찰 출신이며, 사립탐정으로도 일했다. 그는 이 사건의 첫번째 검사인 브런스윅 지방검사 재키 존슨의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웨이크로스 카운티 순회 지방검사인 조지 반힐이 두번째로 이 사건을 맡았다. 그는 경찰에게 맥마이클 부자가 아버리와 맞서는 과정에서 ‘시민체포법’의 권리를 사용했고, 그 결과 맥마이클 부자를 체포할 근거가 없다고 지시했다. 그 뒤 자신과 맥마이클 부자와의 인연에 대해 피해자의 어머니가 우려를 표한다며, 사건에서 자신을 제척했다.

한겨레

아들 트래비스 맥마이클과 아버지 그레고리 맥마이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와 사건의 재부상 사건 발생 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사건은 묻혔다. 아버리의 가족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백방으로 뛰었으나,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 한달 반이 지나서 <뉴욕타임스>의 애틀랜타 지국장 킴 세번슨은 분노에 찬 유족의 메일을 받았다. 아버리의 사촌이 친분이 있던 세번슨 기자에게 “50년대에나 일어났을 법한 일이 벌어졌다”고 하소연을 한 것이다.

세번슨은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는 큰 기사가 될 것으로 직감했다. 코로나19의 창궐 때문에 <뉴욕타임스> 본사는 기자들에게 직접 대면 취재를 금지했으나, 세번슨은 본사를 설득해 현장 취재를 감행했다. 첫 보도는 4월26일 ‘총 2자루, 추격, 죽음 그리고 불기소’라는 제목으로 나갔다. 사건이 발생한 지 두달하고도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전국적으로 큰 반향이 일었다.

열흘이 지난 5월5일 사건 현장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됐다. 아버리가 자신을 추적하다가 앞서 나간 트럭을 다시 추월하려다, 그 트럭에서 내린 맥마이클 부자와 실랑이하고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 사건의 두번째 검사인 반힐은 사건 메모에서 “동영상을 찍은 윌리엄 브라이언이 마이클 부자와 나란히 아버리를 추적하면서 동영상을 찍었다”고 밝혔다.

브라이언은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브라이언의 변호사는 “나의 의뢰인은 그가 알고있던 차량이 누군가를 추적하고 있는 것을 봤다”며 이에 대응해 행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브라이언은 맥마이클 부자가 강도를 추격하는 줄 알고 그들을 돕기 위해 휴대폰 촬영 버튼을 눌렀으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목격하고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검사 쪽에서 범죄 현장을 명백히 보여주는 비디오를 입수하고도 사건 처리를 유야무야한 정황이 더욱 뚜렷히 드러났다. 이 동영상은 아버리의 변호사 쪽이 제보했다.

여론이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결국 조지아 주정부가 나섰다. 사건은 주 정부 차원의 연방수사국(FBI) 격인 ‘조지아수사국’(GBI)로 넘어갔다. 조지아수사국은 지난 7일 맥마이클 부자를 가중 폭행·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조지아수사국의 빅 레이놀즈 국장은 8일 기자회견에서 “완벽한 세상”이었다면 조지아수사국이 지난 2월 조사에 착수했을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이 끝날 때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담당 검·경들이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했나? 사건을 넘겨받은 조지아수사국은 이 사건을 지휘할 네 번째 검사 조이옛트 홈스를 지명했다. 그의 전임인 세 번째 검사도 대배심 소집을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대배심 소집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현재 소집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지아 주정부의 크리스 카 법무장관은 12일 성명을 내고 조지아수사국과 연방 수사기관들에게 이 사건의 담당 검사들이 어떻게 일처리를 했는지 수사하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 관련 검사들을 상대로 한 수사가 본격화된 것이다. 연방정부 법무부의 케리 쿠펙 대변인도 연방검사들이 카 주정부 법무장관에게 수사 결과를 공유해달고 요청했다며, 용의자들에 대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증오범죄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첫번째 검사 재키 존슨은 총격 사건 뒤 맥마이클 부자의 체포를 경찰에 허가하지 않은 혐의로 2명의 카운티 위원들로부터 고소된 상태다. 존슨 검사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자신의 사무실의 어느 누구도 경찰에게 체포하지 말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존슨 검사는 경찰들이 자신들이 할 일을 결정하지 않은 것이라며, 경찰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존슨 검사는 <에이피>(AP) 통신과의 회견에서 사건이 발생한 날 글린 카운티 경찰이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2명의 검사보에게 전화해, 법적 의견을 물었던 정황을 밝혔다. 당시 검사보들은 그레고리 맥마이클이 자신들의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1년 전에 은퇴했다는 사실을 밝히고는 이 사건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는 것이다.

존슨은 “경찰이 그 사건을 정당방위 문제가 얽힌 절도 사건으로 먼저 제기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그리고 체포 여부에 대한 지침”을 요구했으나, 자신의 검사실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명백한 이해상충” 때문에 경찰에 조언하거나 도움을 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존슨 검사는 웨이크로스 지역 순회검사 조지 반힐에게 연락해 글렌 카운티 경찰의 그 사건에 지침을 줄 수 있냐고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 사건이 치명적인 총격사건이어서, “나는 이 사건 처리가 지연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조지아 주정부 법무부도 사건 나흘 뒤인 2월27일에 반힐을 두번째 담당 검사로 지명했다. 반힐은 경찰에게 “아버리의 사망에 관련된 개인들의 어느 누구도 체포할 근거가 없다”고 지시했다. 반힐은 이런 조처를 내린 뒤 자신의 아들이 존슨 검사의 검사보로 일한 경력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압력을 받자, 이 사건에서 자신을 제척했다.

한겨레

아머드 아버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민체포법 적용은 정당했나? 맥마이클 부자가 체포도 되지않고 이 사건이 유야무야된 결정적 대목은 두번째 검사인 반힐의 사건 처리 때문이다. 그는 시민체포법의 권리를 적용해 경찰에게 맥마이클 부자를 체포하지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시민체포법이란 조지아에 있는 주법이다. 개인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용의자를 구금하도록 허용한다. 특히 용의자가 도피하려고 하면 무력사용도 용납된다. 하지만 체포할 때의 치명적인 무력은 확실하고 심각한 범죄를 막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할 경우에만 제한적인 정당방위로서 허용된다.

맥마이클 부자가 행사한 치명적인 무력인 총격이 그런 정당방위에 해당하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아버리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시사하는 증거나 정황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리가 침입했다고 주장되는 신축 중인 집터의 주인은 침입 사건에 대해 어떠한 신고도 한적이 없고, 도둑맞은 물건도 없었다고 밝힌다. 또, 아버리가 들어갔다는 집터의 시시티브이 동영상에는 그가 단순히 집터에 들어와 건축 상황만을 둘러보고는 밖으로 나가 조깅을 계속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반힐이 두번째 담당검사로 지명된 과정도 석연치가 않다. 첫번째 검사 존슨은 반힐에게 법률적 조언만을 구했고, 그를 담당검사로 추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힐 역시 존슨과의 개인적 인연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에 항의하는 아버리 가족 등 지역사회는 경찰 수사 초기단계부터 맥마이클 부자의 검·경과의 인연이 작용해, 봐주기로 일관했다고 주장한다. 주 경찰과 검찰에서 일한 그레고리를 봐주려고, 경찰이 처음부터 정당방위를 인정해주는 한편 그레고리와 인연이 있는 존슨 검사에 지침을 구했다는 것이다. 존슨 검사는 자신을 제척하면서 반힐을 추천해 정당방위를 관철했다는 것이다.

맥마이클 부자가 피해자 아버리를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절도 신고는, 지난 1월1일 아들 트래비스가 자신의 집 밖에 세워진 트럭에서 총 한자루가 도난됐다는 것이었다.

언론 취재 결과, 아버지 그레고리는 은퇴 전인 지난 2018년 피해자 아버리가 연루된 사건을 조사한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버리는 고등학교 때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5년간 집행유예를 받았는데, 이 기간 중이던 2018년 상점에서 물건을 훔쳐 집행유예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 수사에 그레고리가 관여했다. 그레고리가 이 사건에서 인지한 아버리를 알아보고서 추적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미 언론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인종주의에 입각한 수사 관계자들의 담합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된다”고 일제히 지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깅하던 흑인을 사살한 전직 경찰 출신의 백인 부자가 석달이나 체포되지 않고 사건이 유야무야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지아는 증오범죄를 처벌할 법조항이 없는 4개 주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주정부가 아닌 연방정부가 가해자들을 증오범죄로 기소할 계획이다. 법무부는 연방수사국과 조지아남부지방검찰청이 조지아 주의 수사를 지원하면서 연방 차원의 증오범죄 혐의를 적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뉴스판 한겨레21 구독▶5.18 40돌 ‘다섯개의 이야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