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짐 홀트 지음·노태복 옮김
소소의책 | 508쪽 | 2만7000원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라는 낭만적인 제목만 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는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런 낭만은 표지에 실린 다정하게 걸어가는 두 위대한 학자의 사진과, 본문 1장에 나오는 작은 에피소드가 전부다. 나머지는 심오한 과학 이야기들뿐이다. 아, 과학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철학도 나오고 논리학도 나온다.
책 표지에 작게 달려 있는 ‘친절한’ 부제를 보고 눈치챘어야 한다. ‘사고의 첨단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한가해 보이는 제목이었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사고의 첨단’, 다르게 얘기하면 ‘생각을 극단까지 해보자’는 독려 아닌가.
지은이 짐 홀트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과학 작가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수학, 과학, 그리고 철학이 함께 어우러진 글”을 쓴다. 우주, 끈이론, 시간, 무한, 숫자, 진리, 도덕, 죽음 등 다양한 소재를 어렵지 않게 다룬다. 2013년 낸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라는 묵직한 주제를 쓰기도 했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읽다보면 머리가 아플 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내용이 즐비하지만, 저자가 준비해놓은 다양한 목차는 독자의 이목을 잡아끈다. ‘시간은 거대한 환영에 불과한 것일까’ ‘아름다움은 진리인가’ ‘우주는 어떻게 끝나는가’ 등 과학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떠올려봤을 심오한 질문들을 다시 던진다.
책은 제목대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과 논리학자 쿠르트 괴델(1906~1978)의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한다. 1933년 미국으로 온 아인슈타인은 고등과학연구소가 있는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다. 그는 항상 집에서 연구소까지 유유히 걸어서 출근했는데, 프린스턴에 온 지 10년쯤 지나서 함께 걷는 친구가 생겼다. 괴델이었다. 괴델은 아인슈타인보다 27살이 어렸지만, 석학들이 모인 연구소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아인슈타인과 대등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1954년 미국 뉴저지주의 프린스턴 고등과학연구소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쿠르트 괴델(왼쪽)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Leonard Mccombe |
“진리는 절대적 선이 아닐 수도
하지만 옹호할 한 가지 이유
헛소리보다 더 아름다우니까”
둘이 걷는 모습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아인슈타인은 “방금 침대에서 나온 듯한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멜빵이 달린 헐렁한 바지”를 입었고, 괴델은 “후줄근한 아인슈타인과 달리 흰색 리넨 정장과 그에 잘 어울리는 중절모”를 썼다. 나이와 외모만큼이나 둘의 취향은 달랐다. 아인슈타인이 붙임성 좋고 웃기 좋아한 반면에 괴델은 침울하고 고독하고 비관적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기름진 독일식 요리를 마음껏 탐닉했고, 괴델은 병약자의 식단과 유아식 그리고 변비약으로 간신히 생활해나갔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괴델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혁명적 사상을 독자적으로 내놓은 동무라고 여겼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연구실에 나오는 이유가 ‘단지 쿠르트 괴델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연구실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둘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책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둘은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진정한 중요성’을 지닌 문제들, 즉 실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에게 관한 문제에 매력을 느꼈다. 괴델은 특히 시간의 본질에 심취했는데, 한 친구에게 말한 대로 그것만이 유일한 본질적 질문이었다. 어떻게 그처럼 ‘불가사의하고 자기모순적인 듯한’ 것이 ‘세계와 우리 존재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는가?’라고 괴델은 물었다.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전문 분야이기도 했다. 수십 년 전인 1905년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과학자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시간은 허구임을 증명해냈다.”
책의 상당한 장이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위대한 과학자의 에피소드를 소개한 뒤 그들이 이룬 업적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에피소드에 혹해서 들어갔다가 복잡한 과학의 세계에 푹 빠지기 일쑤다. 저자는 책을 내면서 ‘생각의 깊이와 힘, 그리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그간 자신이 흥미로워했던 지적 성취의 주제, 즉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군이론, 무한대와 무한소, 튜링의 계산 가능성과 ‘결정 문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소수와 리만 제타 추측, 범주론, 위상수학, 고차원, 프랙털, 통계 회귀분석 및 ‘종형곡선’, 진리이론 등의 핵심 개념을 전달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 이것이 저자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이 그토록 진리를 찾아 헤매는 이유일 것이다. “진리는 절대적인 선이 아닐지 모른다. 심지어 진리의 수단적 가치도 과대평가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리를 옹호할 한 가지 이유는 있다. 바로 헛소리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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