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롭 던 지음·홍주연 옮김
까치 | 368쪽 | 1만7000원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는 툰드라, 가장 뜨거운 사막과 펄펄 끓는 온천, 웬만한 생물이 견딜 수 없는 산성이나 알칼리성 물질까지 온갖 극단적 환경이 한데 모여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집’이다. 집 안에는 낮은 온도의 냉장고와 냉동고, 뜨거운 오븐과 온수기가 있다. 사워도 빵처럼 산성, 치약·세제처럼 알칼리성이 높은 물건들도 널려 있다. 식기세척기는 덥고 건조하고 습한 환경을 모두 견뎌내는 미생물들로 가득하며, 샤워기 헤드의 관은 늪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막으로 덮여 있다. 집 안 생태계에선 지구상의 심해, 빙하, 외딴 소금사막에서만 사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종들까지 발견되곤 한다.
<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는 그저 깨끗하게 보이는 집 안에 존재하는 ‘야생의 세계’를 펼쳐놓는 책이다. 지하실, 다락방, 마루 밑까지 어느 곳을 뒤지든 간에 그 안에서 생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인류가 ‘호모 인도루스(Homo indoorus)’, 즉 ‘실내 인간’이 되었거나 되어가는 변화와 맞물려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제 야외보다는 주택과 아파트, 연결된 벽 안에 한정된 경우가 더 많다. 현대적 삶의 변화를 고려하면 어떤 생물종이 실내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저자를 비롯한 생물학자들은 코스타리카의 우림이나 남아프리카의 초원을 조사하듯 집 안을 샅샅이 들여다본다. 작은 시골집부터 우주 정거장까지 이어지는 경이로운 탐사의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넓디넓은 실내는 결코 불모지가 될 수 없다. 미국 뉴욕을 예로 들면, 맨해튼의 토지 면적이 59㎢인데 바닥 면적 기준으로 실내는 무려 172㎢에 달한다. 집 안에는 최소 20만종 이상의 생물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수십, 수백 종의 척추동물과 그보다 많은 종류의 식물이 실내에서 살아간다. 그보다 작지만 육안으로도 보이는 절지동물, 곤충, 그리고 그 친척들도 있다. 이들보다 더 다양하고 크기가 대개 더 작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은 진균(곰팡이)도 있다. 육안으로 전혀 보이지 않는 세균의 경우 집 안에서 발견되는 종이 지구상 조류와 포유류의 종보다 더 많다고 한다. 여기에 수많은 바이러스도 빼놓을 수 없다.
샤워기 헤드에선 물과 함께 미생물들이 쏟아진다(왼쪽 사진).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저자는 김치를 만들 때 저마다 다른 맛을 내도록 하는 ‘손맛’에 주목한다. 발효식품에서 나온 미생물과 가족들의 몸에서 나온 미생물들이 어우러진 건강한 ‘생물 다양성의 맛’이라는 것이다. 책에선 세균 중 자주 질병을 일으키는 종은 겨우 50종 정도라며, 내성만 키우는 무조건적인 화학물질에 대한 의존보다는 다양한 생물 접촉을 통한 면역력 증진을 제안한다. 까치 제공·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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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경이로운 혹은 경악스러운 집 안 공간은 샤워기 헤드일 것 같다. 오늘날의 우물이라고 할까. 연구자들은 이미 수돗물에서 세균, 아메바, 선충, 심지어 다리가 많은 소형 갑각류까지 찾아냈다. 다만 수돗물은 생물 다양성이 높지만, 생물들의 양 자체는 적다고 한다. 양분이 많지 않아 액체로 된 사막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샤워기 헤드 안은 다르다. 대개 온수가 흐르는 데다 물이 웅덩이로 고여 있어 세균이 자라기에 유리하다. 이런 조건에서 여러 미생물은 샤워기 헤드 안의 관을 따라 두꺼운 ‘생물막(biofilm)’을 형성하게 된다. 생물막은 세균들이 힘을 합쳐 똥을 싸서 쉽게 부수기 힘든 아파트를 지어놓은 끈적끈적한 미생물 덩어리다. 일반적인 샤워기 헤드 안에는 미생물 수조개가 든 생물막이 약 0.5㎜ 두께로 쌓여 있다고 한다.
샤워기 헤드의 생물막이 문제인 이유는 여기에 미코박테륨 속의 세균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관을 좋아하는 이 미코박테리아는 평소에는 유해하지 않다가 인간 폐 속으로 들어가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샤워기 헤드의 현실에 충격을 받고 물에 있는 생물들을 박멸하려고 애쓰면 오히려 미코박테륨 종의 경쟁자들이 더 많이 사라지면서 이런 해로운 종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일반적인 미코박테륨 종들은 면역력이 약화된 사람들에게만 약간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금속 재질보다는 플라스틱 재질의 샤워기 헤드 안에 더 적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새 샤워기 헤드를 구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책의 핵심 주장은 이미 집 안의 생물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인간과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작정 생물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접촉을 통해 우리 몸의 ‘생물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의 주택들에서 발견된 절지동물의 각 목별 비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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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오로지 우리가 있는 실내에서만 강력하게 번성하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그토록 싫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처럼 따뜻하고, 너무 건조하지도 너무 습하지도 않은 환경을 좋아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좋아하며, 심지어 우리처럼 외로움을 타기도 한다.” 해충의 대명사인 바퀴벌레는 지구상에 수천 종이 존재하지만, 실내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은 고작 10여종이라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녀석이 ‘독일바퀴’이다. 줄스 실버먼이라는 곤충학자가 발견한 ‘T164’라는 바퀴벌레 가족은 경악스러운 적응력을 보여줬다. 흔히 바퀴벌레 미끼는 당분으로 만드는데, 값싼 포도당이 주로 사용됐다고 한다. 근데 T164라는 아파트에 살던 독일바퀴는 죽지 않았다. 마치 미끼를 꺼리는 것처럼 보였다. 수백만년을 먹이로 삼은 당분을 피하는 바퀴벌레라니, 근데 실험결과 진짜였다. 이들 독일바퀴는 포도당을 피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아파트에 독일바퀴 가족이 입주하면 6주일에 한 번씩 암컷 한 마리가 최대 48개의 알이 들어 있는 알주머니를 생산한다. 이 속도면, 1년에 1만마리의 자손들이 태어난다. 끝없는 전쟁을 무작정 이어가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대부분의 생물은 무해하거나 오히려 유익하다. 하지만 우리가 화학물질의 독성을 높일수록 인간에게 아무런 나쁜 영향도 미치지 않는 동물들이 사라진다. 대신 작고, 내성이 있고, 잘 잡히지 않는 독일바퀴, 빈대, 이, 집파리, 벼룩의 자리만 더욱 커져간다. “불을 켜는 순간 수많은 다리로 잽싸게 도망치고, 우리가 자리를 뜨거나 불을 끄면 바로 다시 모여드는 작은 군대들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멸균의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이 집 안에 사는 동물들을 가능한 한 없애려고 하면서도 예외가 있다. 사랑스러운 반려동물들이다. 하지만 개나 고양이가 들여오는 생물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고양이가 데려온 생물들 중에는 기생충인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이 있다. 1980년대 연구자들은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들이 과도한 활동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2일간 감염되지 않은 쥐들이 쳇바퀴를 4000회 돌릴 동안, 감염된 쥐들은 무려 1만3000회를 돌렸다. 이 기생충이 쥐들을 지나치게 활동적인 상태로 만들어 고양이에게 잡아먹힐 확률을 높인 것으로 추정됐다. 후속 연구에선 고양이 배설물을 통해 배출된 이 기생충의 난포낭에 인간도 노출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쩌면 인간이 고양이에게 끌리는 이유가 고양이의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탓일 수 있다는 의미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들은 조현병 발병 확률도 높았다는 것이다.
개들이 얼굴을 신나게 핥을 때 역시 기생충과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하지만 감염의 위험한 결과는 드물게 나타나며, 예방조치를 통해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이번에도 저자는 반려동물의 이득과 손해 사이의 대차대조표를 맞추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와 고양이가 가져올 수 있는 더 큰 유익, 이들이 집 안으로 들이는 생물학적 다양성을 강조한다.
오늘날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으로 자가 면역질환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깨끗한 물, 백신, 항생제가 필요하다. 저자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종들에 대해서 아무런 통제력도 가지지 못하는 삶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 속에 다양한 생물을 들이면 우리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도와주고, 다양한 생물들이 특정 병원균의 번성을 억제한다. 거미와 같은 유익충을 통한 해충의 ‘생물학적 구제’도 가능하다.
이 미국인 저자는 생물 다양성의 표본으로 한국음식 중 김치 그리고 ‘손맛’을 열의를 담아 설명한다. 사람마다 다른 이 손맛이 실제로는 한국의 집집마다 있는 수많은 발효식품과 사람에게서 비롯된 미생물들의 ‘집맛’이라고, ‘생물 다양성의 맛’이라는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집 안 전체에 특정한 종류의 생물 다양성을 복원하는 행위이다. 왜 발효식품이 몸에 좋은지, 집밥이 건강식이라고 하는지 납득이 가는 설명이다.
우리 집 안의 종들은 우리 삶의 척도이다. “나는 우리 집의 먼지가 보여주었으면 하는 삶의 모습을 알고 있다. 그것은 다양한 생물에 둘러싸여 있는 삶,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에서도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 풍부한 생물 다양성과 그들이 제공하는 혜택에 노출된 삶이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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