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8 (목)

이슈 신도시 이모저모

신도시 유령상가, 30년 묵은 도시계획이 주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삼송·마곡·위례 상가 공실 심각

1인가구 늘며 주민 줄어드는데

가구당 소비액은 3.5명으로 추산

온라인 거래도 미반영, 과잉공급

고양 스타필드옆 수백개 점포 텅텅

중앙일보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의 주거형 오피스텔 ‘e 편한세상시티삼송’ 1층 상가거리의 모습. 빈 점포 유리창에 ‘상가문의’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한은화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의 ‘e편한세상 시티 삼송’. 주거형 오피스텔(아파텔) 4000여 실이 2년 전 입주를 시작했지만 상가는 영업하는 곳이 드물었다. 2015년 분양할 때 유럽형 스트리트몰(상가거리)로 대대적인 홍보를 한 곳이다. 오피스텔 건물의 1~2층이 수백 개의 점포로 나뉘는 구조다. 보행자가 걷다 보면 단지 안 상가로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다.

길을 따라 늘어선 상가 유리창에는 ‘상가문의’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1차 단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지난해 일찍 들어와 50㎡ 매장의 월세로 300만원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근 가게의 세가 안 나가니(세입자를 못 찾으니) 월세가 100만원대로 떨어졌다. 장사도 잘 안돼 손해가 막심하다”고 덧붙였다. 맞은편에는 스타필드 고양점이 있다. 연면적 36만4000㎡로 축구장 50배 크기의 대형 쇼핑몰이다.

중앙일보

‘e편한세상시티삼송’ 맞은편에 있는 스타필드 고양점. 한은화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삼송역(서울 지하철 3호선) 주변에는 다른 주거형 오피스텔 ‘힐스테이트 삼송역’(976실)이 지난해 입주를 시작했다. 건물 1~2층에 쇼핑몰이 있지만 텅 비었다. 빈 상가 유리창마다 ‘임대문의’만 붙어 있다. 인근에는 ‘힐스테이트 삼송역 스칸센’(오피스텔 2513실)이 내년 준공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다. 건물 1~2층에는 스트리트몰이 들어선다.

삼송지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곡지구(서울)와 위례신도시(서울과 경기도 성남·하남), 하남 미사지구 등에도 빈 상가가 넘친다. “상가가 망해 두세 차례 손바뀜이 일어나야 안정된다”는 업계 속설이 있긴 하다. 시간이 지나 신도시가 안정되면 상가 공실 문제가 사라질까. 삼송동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실장은 “상가가 너무 많고 이 일대 어디든 비어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인근의 주거형 오피스텔 ‘힐스테이트 삼송역’ 상가도 텅 비어있다. 한은화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빈 상가가 넘치는 것은 허술한 도시계획의 결과다. 신도시를 개발할 때 상업용지는 전체의 2~4%로 결정한다. 물론 수요 분석을 한다. 가구당 소비액을 추산해 상업용지 비율을 정한다. 그런데 수요 분석에 포함되지 않는 숫자가 있다. 아파트 단지나 업무시설, 주상복합 건물에 들어가는 상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통계에서) 숨겨진 부분까지 더하면 상가 비율이 10%를 넘어가는 게 현실”이라며 “(신도시 상가는) 과잉공급 상태”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삼송 상가 공실 심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언택트’(비대면)가 일상화된 것도 상가 공실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삼송역 주변 오피스텔 단지를 기획한 시행사 대표는 “스타필드가 들어서면 주변으로 유동 인구가 퍼지는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게 분양 당시 전망이었다”며 “하지만 방문객이 (스타필드) 안에만 있고 밖으로 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쳤다”며 “디지털 시대를 맞아 (오프라인에)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다시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상가를 조성할 때 핵심 변수 중 하나는 주변 인구다. 당초 예상보다 인구수가 적으면 상가의 사업성도 나빠진다. 현재는 가구당 평균 3.5명으로 계산해 소비액을 추산한다. 실제 신도시 개발 후 인구는 더 적은 수준이다. 특히 1인 가구의 비중은 빠르게 느는 추세다.

“80년대 잣대로는 주거환경 변화 못 따라가, 도시계획 정비해야”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동안 가구당 인원수는 줄고 온라인 거래 비중은 늘면서 상업용지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하지만 초기 사업계획을 세울 때 사업성을 좋게 보이려고 상업용지 축소를 못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신도시에서 땅을 공급할 때 근린생활시설 용지는 최고가 입찰을 한다. 가장 비싼 가격을 써낸 사업자가 땅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반면 주택 용지는 미리 정한 공급가로 추첨한다. 근린생활시설의 사업성에 따라 LH가 차지할 몫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미래를 위해 개발을 유보하는 땅(유보지)을 늘리자는 목소리도 있다. 도시 주거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는 만큼 수요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개발할 수 있게 비워두는 땅이다. 성남 분당구 정자동 카페거리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분당신도시를 만들 때 업무용지로 계획했지만 땅이 팔리지 않았다. LH는 이 땅을 10년가량 비워뒀다. 결국 국토교통부에서 주상복합 용지로 변경하면서 땅을 팔 수 있었다.

도시계획 전문업체인 사이트랩의 김현무 대표는 “젊은 층이 유입하면서 브런치 문화와 카페의 수요가 생겨나고 주상복합 1층이 카페거리로 개발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수요”라며 “계획 단계에서 토지의 용도를 100% 지정해 공급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신조 내외주건 대표는 “코로나19로 산업 구조가 확연히 바뀌고 있다”며 “1기 신도시를 개발할 때와 큰 차이가 없는 도시계획 수준을 근본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