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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이슈 신도시 이모저모

신도시 유령상가, 30년 묵은 도시계획이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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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마곡·위례 상가 공실 심각

1인가구 늘며 주민 줄어드는데

가구당 소비액은 3.5명으로 추산

온라인 거래도 미반영, 과잉공급

고양 스타필드옆 수백개 점포 텅텅

중앙일보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의 주거형 오피스텔 ‘e 편한세상시티삼송’ 1층 상가거리의 모습. 빈 점포 유리창에 ‘상가문의’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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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의 ‘e편한세상 시티 삼송’. 주거형 오피스텔(아파텔) 4000여 실이 2년 전 입주를 시작했지만 상가는 영업하는 곳이 드물었다. 2015년 분양할 때 유럽형 스트리트몰(상가거리)로 대대적인 홍보를 한 곳이다. 오피스텔 건물의 1~2층이 수백 개의 점포로 나뉘는 구조다. 보행자가 걷다 보면 단지 안 상가로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다.

길을 따라 늘어선 상가 유리창에는 ‘상가문의’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1차 단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지난해 일찍 들어와 50㎡ 매장의 월세로 300만원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근 가게의 세가 안 나가니(세입자를 못 찾으니) 월세가 100만원대로 떨어졌다. 장사도 잘 안돼 손해가 막심하다”고 덧붙였다. 맞은편에는 스타필드 고양점이 있다. 연면적 36만4000㎡로 축구장 50배 크기의 대형 쇼핑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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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편한세상시티삼송’ 맞은편에 있는 스타필드 고양점.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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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역(서울 지하철 3호선) 주변에는 다른 주거형 오피스텔 ‘힐스테이트 삼송역’(976실)이 지난해 입주를 시작했다. 건물 1~2층에 쇼핑몰이 있지만 텅 비었다. 빈 상가 유리창마다 ‘임대문의’만 붙어 있다. 인근에는 ‘힐스테이트 삼송역 스칸센’(오피스텔 2513실)이 내년 준공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다. 건물 1~2층에는 스트리트몰이 들어선다.

삼송지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곡지구(서울)와 위례신도시(서울과 경기도 성남·하남), 하남 미사지구 등에도 빈 상가가 넘친다. “상가가 망해 두세 차례 손바뀜이 일어나야 안정된다”는 업계 속설이 있긴 하다. 시간이 지나 신도시가 안정되면 상가 공실 문제가 사라질까. 삼송동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실장은 “상가가 너무 많고 이 일대 어디든 비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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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의 주거형 오피스텔 ‘힐스테이트 삼송역’ 상가도 텅 비어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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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상가가 넘치는 것은 허술한 도시계획의 결과다. 신도시를 개발할 때 상업용지는 전체의 2~4%로 결정한다. 물론 수요 분석을 한다. 가구당 소비액을 추산해 상업용지 비율을 정한다. 그런데 수요 분석에 포함되지 않는 숫자가 있다. 아파트 단지나 업무시설, 주상복합 건물에 들어가는 상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통계에서) 숨겨진 부분까지 더하면 상가 비율이 10%를 넘어가는 게 현실”이라며 “(신도시 상가는) 과잉공급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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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 상가 공실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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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언택트’(비대면)가 일상화된 것도 상가 공실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삼송역 주변 오피스텔 단지를 기획한 시행사 대표는 “스타필드가 들어서면 주변으로 유동 인구가 퍼지는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게 분양 당시 전망이었다”며 “하지만 방문객이 (스타필드) 안에만 있고 밖으로 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쳤다”며 “디지털 시대를 맞아 (오프라인에)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다시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상가를 조성할 때 핵심 변수 중 하나는 주변 인구다. 당초 예상보다 인구수가 적으면 상가의 사업성도 나빠진다. 현재는 가구당 평균 3.5명으로 계산해 소비액을 추산한다. 실제 신도시 개발 후 인구는 더 적은 수준이다. 특히 1인 가구의 비중은 빠르게 느는 추세다.

“80년대 잣대로는 주거환경 변화 못 따라가, 도시계획 정비해야”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동안 가구당 인원수는 줄고 온라인 거래 비중은 늘면서 상업용지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하지만 초기 사업계획을 세울 때 사업성을 좋게 보이려고 상업용지 축소를 못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신도시에서 땅을 공급할 때 근린생활시설 용지는 최고가 입찰을 한다. 가장 비싼 가격을 써낸 사업자가 땅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반면 주택 용지는 미리 정한 공급가로 추첨한다. 근린생활시설의 사업성에 따라 LH가 차지할 몫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미래를 위해 개발을 유보하는 땅(유보지)을 늘리자는 목소리도 있다. 도시 주거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는 만큼 수요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개발할 수 있게 비워두는 땅이다. 성남 분당구 정자동 카페거리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분당신도시를 만들 때 업무용지로 계획했지만 땅이 팔리지 않았다. LH는 이 땅을 10년가량 비워뒀다. 결국 국토교통부에서 주상복합 용지로 변경하면서 땅을 팔 수 있었다.

도시계획 전문업체인 사이트랩의 김현무 대표는 “젊은 층이 유입하면서 브런치 문화와 카페의 수요가 생겨나고 주상복합 1층이 카페거리로 개발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수요”라며 “계획 단계에서 토지의 용도를 100% 지정해 공급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신조 내외주건 대표는 “코로나19로 산업 구조가 확연히 바뀌고 있다”며 “1기 신도시를 개발할 때와 큰 차이가 없는 도시계획 수준을 근본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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