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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반도체 新 냉전시대]"'반도체 코리아'지킬려면 과감하게 해외 기술 M&A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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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중앙일보

박재근 한양대 교수.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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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신냉전 시대를 맞아 '코리아 반도체'의 아성을 지킬 수 있는 방책은 무엇일까. 박재근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반·디학회·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의 이야기를 27일 들었다. 박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생산라인 구축에 참여하고 반·디학회를 이끌며 이론과 현장을 두루 섭렵한 반도체 전문가다. 박 교수는 “강점인 메모리는 공격적인 연구·개발(R&D)과 과감한 투자로 초격차를 더 벌리고, 비메모리는 5G·AI 등의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M&A)해 새로운 기술을 적극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문답.



메모리는 중에 3년 이상 앞서…기술격차 더 벌려야



Q :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우리 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은

A : “부정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꼭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제재가 계속되면 화웨이는 대만의 TSMC로부터 고급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칩을 공급받을 수 없다. 3분기 정도는 미리 주문해 놓은 AP로 버티겠지만, 제재가 계속되면 사실상 고급 스마트폰 시장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화웨이가 고급 스마트폰을 못 만들면 국내 업체한테 사 가는 메모리양도 줄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이나 LG한테 기회가 될 수 있다.”

Q :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이 더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도 있지 않나. 특히 중국의 메모리 추격이 거센데

A : “완전히 안심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중국은 메모리 분야에서 양산체제보다는 기술 수준을 따라잡는 데 집중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최근 중국 YMTC(양쯔 메모리 테크놀로지)가 삼성이나 SK하이닉스가 생산 중인 128단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개발했다고 했지만, 수율(정상제품의 비율) 면에서 한국과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삼성의 수율이 95%인데 중국은 30% 수준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생산을 할 순 있지만 만들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다. ‘만들 수 있다’와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다른 개념이다. 양산기술은 적어도 우리와 3년 이상 차이가 나는 거로 보고 있다.”

Q : 그런데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A : “양산기술은 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술 수준을 따라잡는 속도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중국 정부와 엄청난 자본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기술격차를 더 벌리는 수밖에 없다. 중국이 아직 따라올 수 없는, EUV(극자외선) 미세 공정을 이용한 메모리 반도체 제조를 확대하는 것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삼성과 TSMC의 기술 격차는 크지 않아



Q : 비메모리 분야의 한 축인 파운드리에서 삼성의 점유율이 TSMC에 뒤지고 있다

A : “TSMC는 미국의 압박으로 애리조나에 5나노 공정 공장을 짓기로 했다. 2024년께부터 양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인텔이나 퀄컴, 애플 같은 미국 고객에게 더욱 전념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삼성은 평택에 파운드리 전용라인을 구축했다. 여기서도 EUV 공정 5나노 반도체가 생산된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부지가 있는 삼성이 왜 평택을 택했을까. 평택은 이미 있는 공장에 설비만 들여오는 것이어서 빠른 양산이 가능하다. 5나노 시장에서 삼성이 TSMC보다 초기 물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추후 필요하면 오스틴에 증설도 할 수 있다.”

Q : TSMC와 삼성의 기술력의 차이는

A : “두 회사의 기술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식으로 비슷하다. 다만 TSMC가 잘하는 건 AP뿐 아니라 다양한 제품군을 갖고 점유율을 키운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도 투트랙으로 최첨단 AP 기술 쪽의 점유율을 키워가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분야의 고객을 키울 수 있는 영업활동도 강화해야 한다.”

Q : 삼성은 2030년까지 비메모리도 1위를 한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추진 중이다. TSMC를 잡을 수 있을까

A : “파운드리만 놓고 볼 때 TSMC를 단번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삼성이 TSMC처럼 최첨단 제품부터 단순한 제품까지 모조리 생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일정 부분 생산 제품군을 확대해 격차를 좁힐 필요는 있다. 여기에 삼성은 자체적으로 비메모리를 만드는 시스템 회사를 갖고 있다. 시스템과 파운드리 두 개를 합쳐서 2030년에 TSMC를 뛰어넘는 걸 목표로 삼는 게 현실적이다.”



비메모리 설계, 인재육성과 M&A가 해법



Q : 비메모리의 한 축인 설계 분야를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은

A : “비메모리 설계 분야는 워낙 복잡하고 방대하다. CPU(중앙처리장치) 분야에서 인텔, 스마트폰 AP 분야에서 퀄컴 같은 회사의 설계능력을 단번에 따라잡는 게 쉽지 않다.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는 5G 통신으로 새롭게 열리는 시장을 노리고 과감한 M&A가 필요하다. 인텔 같은 회사도 네덜란드의 자율주행 반도체 기업인 NXP를 인수하려다 중국의 반대로 실패했다. 시장을 선점하고 그에 걸맞은 해외 M&A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Q :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A : “우수 인력 확보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삼성과 하이닉스가 대학과 연계해 학과를 개설하고 장학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고 있다. 그동안 뜸했던 정부의 반도체 연구과제도 많이 늘고 있다. 지난 1월 정부가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10년간 연구·개발(R&D)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국내 인재는 국내 인재대로 양성을 해야겠지만, 우수한 해외 인재 특히 설계분야 인재를 과감하게 스카우트하는 것도 필요하다."

Q : 끝으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낙관할 수 있을까

A : “한국 반도체가 메모리에서 1위를 지키려면 기술 초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 두 번째로 비메모리는 파운드리 분야는 사업을 키우기 위한 강한 투자가 필요하고, 설계 분야에선 기존 업체와의 경쟁도 중요하지만 새롭게 열리는 시장의 기술을 과감한 M&A를 통해 확보하고 선점해 나가야 한다. 한국 업체들은 지금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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