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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홍콩 보안법 통과

홍콩보안법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글로벌 시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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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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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며 살아가느니 차라리 목소리를 내고 죽겠다!”, “먼지로 떠도느니 재가 돼 산화하겠다!”

지난달 28일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홍콩특별행정구의 국가안보를 수호하는 법률제도와 집행기제 수립 및 완비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 일명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초안이 통과되자 홍콩의 시민들이 외치기 시작한 구호들이다. 대체 홍콩보안법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홍콩인들이 이토록 결연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일까.

홍콩보안법은 이번에 처음 입법이 시도된 것은 아니다. 이미 2003년에 홍콩 정부가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홍콩 시민들은 50만명이 넘는 대규모 가두시위로 이를 막아냈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의 원칙을 수립한 홍콩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홍콩기본법’ 23조는 “홍콩특별행정구는 자체적으로 법을 제정하여 국가에 반역하고 국가를 분열시키며 반란을 선동하고 중앙인민정부를 전복하며 국가기밀을 탈취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하며, 해외 정치조직 및 단체가 홍콩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홍콩의 정치조직이나 단체가 해외의 정치조직 및 단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기본법 23조에는 열거한 행위들을 처벌할 수 있는 세부 조항들이 없었기에 홍콩 당국은 입법회에서 세부 처벌 조항을 담은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려다 강한 반발에 부딪혀 실패한 것이다.

이번 홍콩보안법 초안의 통과는 2003년의 상황과 그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당시에는 일국양제에 의거하여 홍콩 입법회에서 법안을 제정하려 했다. 실제로 홍콩과 마찬가지로 일국양제가 적용되고 있는 마카오에서는 시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2009년에 마카오 입법회를 통해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마카오와는 달리 홍콩에서는 입법회를 통한 법안 제정이 쉽지 않고 2014년 우산 시위, 2019년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 등 홍콩인들의 저항이 강고하게 유지됐다. 그래서 중국은 반환 이후 50년간 유지를 약속했던 일국양제의 틀을 넘어 아예 전인대에서 이를 제정해 홍콩에 적용시키려 한 것이다.

본래 홍콩기본법 17조에는 “홍콩특별행정구는 입법권을 가진다”고 돼있고, 18조에는 “(중국) 전국단위 법률은 기본법의 부칙 3에 포함된 법률을 제외하고 홍콩특별행정구에서 실시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으며, “부칙 3에 포함된 법률은 국방·외교와 기본법의 규정에 따라 홍콩특별행정구 자치범위에 속하지 않는 법률에 한정한다”고 돼있다. 이 기본법 조항들에 따르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홍콩보안법을 전인대가 제정한 것은 기본법 위반의 소지가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와는 모순되게 기본법 158조에는 “홍콩기본법의 해석권은 전인대 상무위원회에 속한다”는 규정이 있기에 이번 전인대에서의 홍콩보안법 초안 통과는 전인대가 기본법의 해석권을 행사한 것이 된다. 이후 전인대는 상무위원회에서 관련 처벌규정들을 확정하고 홍콩기본법의 부칙 3에 이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법률의 효력을 발생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세부 규정들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미 공포된 홍콩보안법 초안에는 국가 분열, 정권 전복, 테러 활동, 해외 및 외부 세력이 홍콩 문제에 간섭하는 활동을 금지하고 처벌하며, 해당 법안의 집행을 위한 기구를 설립하고 홍콩 행정장관이 국가안보 교육을 실시하고 관련한 구체적인 상황을 중앙정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중국 당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력이 지속적으로 홍콩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막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 법을 제정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다. 지난해 문제가 됐던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은 범죄인 인도를 핑계로 홍콩에 거주하는 반체제 인사나 민주운동가들을 탄압하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홍콩 역사상 가장 큰 시위를 이끌어냈고, 결국 폐기됐다. 이번 홍콩보안법은 그보다 더 포괄적인 억압과 통제를 가능케 하는 법안이기에 지난해 못지않은 대규모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실제 이 법이 어떻게 집행될지는 홍콩과 마주하고 있는 광둥(廣東)성에서 지난 몇 년 간 벌어졌던 노동NGO들에 대한 대규모 탄압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2015년 12월 중국 공안당국은 4개의 노동운동 단체를 침탈하고 쩡페이양(曾飛洋), 펑자용(彭家勇) 등 25명의 활동가들을 연행했다. 해외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각종 파업을 유도하고 국가 안전에 커다란 해를 끼치고 사회불안을 조종했다는 것이 이들의 죄목이었다. 2018년 광둥성 선전에 있는 용접기 제조공장 자스커지(佳士科技·Jasic) 노동자들의 투쟁에서는 ‘노학연대’가 새롭게 형성되기도 했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탄압이 자행됐다. 특히 해외로부터의 지원을 계속해서 문제삼는 것은 단순히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력의 간섭을 차단하는 것을 넘어 어떠한 방식의 국제적인 연대활동도 탄압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당국의 홍콩 사회에 대한 통제와 탄압은 좌우를 가리지 않을 것이며,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급진적 본토파는 물론이고 일국양제의 틀에서 민주적 권리 확보와 중국 대륙의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추구하는 민주파들의 활동도 크게 제약될 것이다.

2003년 7월 홍콩의 국가보안법 저지 투쟁은 당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도 50만이 넘는 인파가 모여서 성공을 거뒀다. 현재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지만 홍콩에서는 산발적으로 저항이 지속되고 있으며, 6월4일 천안문 사건 31주기와 6월9일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 1주기를 맞이하여 대규모 시위가 예상된다. 어떻게 해도 국가보안법의 제정을 막아낼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홍콩의 시민 사회는 지속적으로 저항을 조직하고 있으며, ‘옥쇄’라는 구호가 전면에 등장할 정도로 단호하다. 이들이 절망 속에서 고립되고 무력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리고 기나긴 식민의 역사를 극복하고 민주적 권리를 획득할 수 있도록 폭넓은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경향신문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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